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자료

루카복음 24,13-35 엠마오의 제자들 2017. 4. 30. 부활 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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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7-04-17 ㅣ No.2172

바로 그날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이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중에 예수가 다가가서 그들 곁에서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예수가 물었다.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나누고 있습니까?” 그들은 슬프고 어두운 표정으로 멈추어 섰다. 그들 가운데 클레오파라는 사람이 예수에게 반문하였다. “요 며칠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당신 혼자만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모른단 말입니까?” 예수가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묻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분은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로서 하느님과 온 백성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잡아 십자가형에 처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른 아침에 무덤으로 갔는데 그분의 시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이 나타나서 그분이 살아 계시다고 일러 주었답니다.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가 그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왜 깨닫지 못합니까?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기가 그렇게도 어렵습니까? 메시아는 영광을 받기 전에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까?” 그러고 나서 예수는 모세를 비롯한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 자신에 관하여 기록된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들이 가려던 마을에 거의 당도하였을 때 예수는 짐짓 그곳을 지나쳐서 가려고 하였다. 그들이 간청하였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때가 늦어서 해가 저물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함께 묵으려고 그들 집에 들어갔다. 예수는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축복한 다음 그것을 쪼개어 그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즉시 예수가 누구인지 알았으나 그는 사라졌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그분이 길에서 우리와 대화를 나누셨을 때와 성서에 관하여 설명해주셨을 때 우리 마음이 얼마나 뜨거워졌던가!”

 

그들은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주님께서 정말로 살아계시며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주님이 빵을 쪼개실 때에 그분을 알아본 일을 들려주었다.

 

 

제자들이 길에서 만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정황을 상상해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예수가 사형당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였다는 것이다. 예수와 비슷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절대로 예수는 아니다. 예수는 이미 죽어서 무덤에 묻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가 지나쳐 가려고 했을 때에 그들은 예수를 붙잡았다. 예수가 빵을 떼어 줄 때에 그들은 그가 예수인 줄을 알아보았다. 이 두 사건을 각각 망덕과 애덕을 가리킨다. 망덕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덕이며 애덕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덕이다. 망덕은 사람의 활동, 애덕은 하느님의 활동이므로 애덕이 망덕보다 더 위대하다.

 

빵은 포도주와 함께 성령(생명의 음식)을 가리키는데 각각 빵은 망덕, 포도주는 애덕을 강조한다. 예수와 두 제자가 빵을 함께 나눈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공동체, 곧 하늘나라를 상징한다. , 두 제자는 하늘나라 안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예수를 알아보았다. 하늘나라에는 죽음이 없다. 이전에 제자들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짐승의 처지에 머물 때에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지만 이제 신의 아들로 격상되고 나니 예수를 저절로 알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는 제자들의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일견 아쉽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예수는 제자들을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게로 이끌고 있다. 그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 머물면서 계속 예수를 만나고 그와 대화를 나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내려왔던 목적이다. 그들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간다. 그들은 늘 생명의 물을 마시고 있으므로 더 이상 엠마오의 집에 머물 필요가 없다. 엠마오는 따뜻한 우물이라는 뜻이다. 한 스타디온은 약 185미터이니 예순 스타디온은 10 km 정도의 거리이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으로서 하늘나라를 상징한다. 참된 예루살렘(하늘나라)에 관한 소식을 들고 예루살렘으로 서둘러 간다. 그런데 거기에 있던 다른 제자들도 예수가 죽음을 이기고 살아있음을 증언한다. 이로서 하늘나라가 이 세상에 나타났다. 이것이 교회의 참된 모습이다.

 

사람은 죽음을 이기는 참된 생명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세상의 평화는 욕망을 만족시킴으로써 얻어진다. 이것은 참된 평화가 아니어서 그 안에 이미 다툼, 질투, 미움, 도둑, 강도, 살인, 전쟁의 씨앗이 싹트고 있다. 오직 하늘나라의 평화만이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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