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가톨릭 교리

신앙교리: 하느님을 신앙하는 사람의 삶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06 ㅣ No.1723

[공부합시다! 신앙교리] 하느님을 신앙하는 사람의 삶

 

 

참 주인이신 주님을 섬기는 삶

 

예수님은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자유롭고 자신을 속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 있어서 정작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인지 잘 모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아프리카의 꽃’ ‘요세피나 바키타’(Josephina Bakhita, 1869~1947, 축일 2월8일) 성녀의 삶을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바키타는 9살 때 아랍 노예상인에게 납치되어 수단의 노예시장에서 5번이나 팔려 다녔습니다. 바키타라는 이름은 납치 당시 공포에 질려 이름을 대지 못하자 노예상들이 ‘운명아’라는 뜻으로 지어준 것입니다. 바키타는 한 장군의 어머니와 부인의 몸종으로 일하는 동안 매일 피가 나도록 매를 맞아 그 몸에 144개나 되는 흉터를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이탈리아 공사(公使)의 소유가 되어서는 그 가족들로부터 따뜻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후에 그 공사의 친구의 손에 넘겨진 바키타는 이탈리아에서 지내다가, 그가 근무지를 옮기게 되자, 큰딸의 유모로 베니스에 있는 카노싸(Canossa)수녀원에 맡겨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수녀원에서 바키타는 그동안 섬겨왔던 주인들보다 더 높은 주인, 즉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으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태양, 달, 별들을 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홀로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그분을 보고파했고, 알고파했으며, 그분께 나의 모든 찬사를 드리고 싶은 갈망을 느꼈습니다!” 매일매일 하느님을 새롭게 알아갔던 바키타는 마침내 1896년 수녀가 되었습니다.

 

학식이 없었던 바키타 수녀는 주로 부엌과 빨래방, 수녀원 문지기와 같은 일들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녀는 언제나 겸손과 단순함, 한결같은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오히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당신은 하느님으로부터 분명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 사랑이 당신을 기다려줄 것이고, 그래서 당신은 행복합니다!” 이런 말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때에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주인님이 원하시는 대로”라는 자세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세로 1947년에 선종하시고, 2000년에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바키타는 절망인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 주인’을 만나 구원을 받고 성인이 되었습니다. 성녀 바키타는 자신이 바뀐 주인으로 믿고 따르는 하느님이 참으로 자신의 주인이심을, 그리고 그 주인을 섬기고 사는 삶이 자신의 운명이고 그러한 삶이야말로 참으로 행복한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주 하느님을 말 그대로 주님으로 섬기고 따른 분이 바로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천사의 말씀에 응답하셨습니다. 이러한 성모 마리아에게서 우리는 하느님을 참으로 주인으로 섬기고 따르셨던 겸손하고 성실한 종의 모범을 보게 됩니다. 마리아는 일생을 주님의 종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르며, 주님께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도 어머니 마리아의 모범을 본받아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야겠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질문에 따르는 나에 대한 질문

 

“하느님은 정말 계신가?” “하느님은 정말 나를 만드신 창조주시고, 나의 주인이신가?” 이런 질문은, 자연히 “나는 정녕 누구란 말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치에 항거하던 행동주의 독일 신학자(개신교)인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는 베를린 감옥에서 숨을 거두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글을 썼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오늘은 이런 인간이고 내일은 다른 인간인가?

아니면 동시에 둘 다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자기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든, 신은 안다. 

내가 그의 것임을!

 

이 글에서 본회퍼는 ‘나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느님을 알면 알수록 나는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나를 더 알면 알수록 하느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자세

 

사랑의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당신의 모상에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자유의지를 우리 인간에게 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 자유를 가지고 책임 있게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결국 하느님께 종속된 존재이며, 동시에 자유의지와 이성을 갖추고 하느님과 담화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가치를 지닌 존재로 하느님의 동반자가 되고, 하느님의 본성에까지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존재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어야 하느님의 창조물다울 수 있는 존재이며, 하느님 앞에서 사랑으로 응답하는 과제를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삶은 하느님의 축복인 동시에 하느님으로부터 과제를 안은 채 이 지상 위에 던져져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과 관계하여 (수직적인 관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 속에 (곧 수평적인 관계 속에) 살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정확히는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면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을 사랑으로 만드셨기에, 우리는 본성적으로 사랑을 갈망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사랑을 받길 원하고, 또 그 누군가를 사랑하길 원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대로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2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성당 주임, 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4,29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