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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앙과 정치: 데레사와 로메로 - 마더 데레사, 자비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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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19 ㅣ No.1341

[신앙과 정치] 데레사와 로메로


마더 데레사, 자비의 아이콘(?)

 

 

지난 9월 4일 ‘마더 데레사’가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바티칸 베드로 광장에는 10만여 명의 순례자들이 시성식을 보려 모였다고 한다. 데레사 수녀가 살아있을 때 세상은 이미 그녀를 ‘빈자의 성녀’라 부르며 존경하였지만, 교회는 그녀가 죽은 뒤에 성녀로 불렀다. 시성준비위에서는 데레사 수녀를 “자비의 희년에 걸맞은 완전한 성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기희생의 총체이자 이웃사랑의 모범으로 알려진 마더 데레사의 시성을 두고 여러 말이 있었다.

 

15년간 진행된 시성과정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1997년 데레사 수녀가 선종한 뒤 6년이 지난 2003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녀를 복자의 반열에 올렸다. 교회법 관례에 따르면, 시복시성 추진은 죽은 지 5년이 지나야 시작하는데, 데레사 수녀는 2년이 지나 시복절차가 진행되었다. 데레사 수녀와 친분이 두터웠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녀의 헌신과 사랑을 높이 평가해 되도록 빨리 성인의 자리에 올리고 싶었다고 한다.

 

데레사 수녀에게는 찬사와 혹평이 공존한다. ‘빈자의 천사’, ‘지옥의 천사’, ‘자비의 아이콘’, ‘경건을 가장한 위선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 광신도이자 근본주의자…. 자비의 아이콘이라는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바티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혼란스러워 보인다.

 

 

수녀의 ‘어두운 밤’은 세상의 어둠인가

 

파키스탄 출신의 영국의 저술가 타리크 알리는 이번 시성식을 두고 ‘우습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자비를 팔다」란 책을 써서 마더 데레사의 비리를 폭로했던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함께 ‘지옥의 천사’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데레사 수녀를 공격했다. 알리와 히친스는 무신론자와 반종교주의자라는 측면이 있지만, 그들의 쓴소리는 세계종교로서 가톨릭교회를 돌아보게 한다.

 

데레사 수녀를 둘러싼 엄청난 금액의 기부금 의혹, 아이티 독재자 뒤발리에와의 친분 과시, 1990년대 자신의 조국 알바니아가 포함된 발칸의 민족전쟁에 대한 침묵,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에 대한 훈계, 이웃사랑의 명목으로 힌두교도들에게 개종을 강요하고 개종하지 않을 경우 임종자에 대해 도움을 주지 않거나 아이들의 세례를 주지 않았다는 것,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수난에 인내하라며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진통제만 제공한 채 정작 본인은 심장질환 치료를 위해 좋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것 등이다.

 

히친스는 자비를 상품화한 다국적 선교 사업체의 수장이 데레사 수녀가 아니냐며 그녀와 관련된 신화와 환상을 경계하라고 주문했다.

 

게다가 데레사 수녀가 선종하고 10년 뒤 발표된 그녀의 편지 중에서 ‘하느님의 부재’ 고백은 신자들에게 충격이었다. 데레사 수녀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하지만, 어둠과 냉혹, 공허의 실재가 나를 엄습했다.”고 고백했다. “어둠이 내 주위를 맴돈다. 그래서 내 영혼은 고통받고 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안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데 하느님의 상실 체험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신비주의 영성가들이 표현한 신앙의 ‘어두운 밤’이었고,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선행의 실천으로 대체되었다. 다시 말해 데레사는 하느님 부재 체험으로 고통받을수록, 가난한 이웃의 모습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려 했다는 평가다.

 

그녀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하는 일은 커다란 바다의 물방울 하나와 같다. 하지만 그 바다는 물방울 하나로 말미암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데레사 수녀는 자신의 고통을 숨기고 자신을 은총의 도구로 내놓았다. “그녀의 미소는 예수님과 세상에 보내는 그녀의 선물”이었다고 사랑의 선교회 프레마 총장 수녀는 말했다.

 

 

도대체 성인이란

 

성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복잡한 시성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교황이 직접 시성 선언을 하는 것으로 성인이 탄생한다. 첫 번째 시성 선언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오른편에 있던 죄수였다는 말이 있다. 예수님께서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함께 들어갈 것’이라는 선언이 바로 시성 선언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디스마스로 알려져 있으며 가톨릭교회의 공식 성인은 아니지만, 동방교회의 아이콘에도 등장하며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이탈리아 속담에 “성인들도 흠집이 있다(Tutti i santi hanno i loro defetti).”라는 말이 있다. 성인은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함께 있으나 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인은 ‘천상에서 확인된 기적’을 동반해야 한다고 한다. 성인으로 선포되기까지는 참으로 어렵다.

 

 

로메로 주교, 신앙과 정치 사이에서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를 복자의 반열에 올렸다. 로메로 대주교는 1980년 엘살바도르 군부독재 정권에게 암살당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당시 로메로 대주교를 비판했다. 급진적으로 정치에 참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로메로 대주교는 지상의 마지막 미사에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성경 말씀으로 강론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타인에게 헌신하며 ‘살 것’이라고 했다. 그의 장례식은 비극이었다. 대성당 앞에서 폭탄이 터져 4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해방신학을 불신했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을 정치적 죽음으로 이해했다. 로메로 대주교는 사제로서의 삶 대부분을 보수적 종교인으로 살았지만, 가난한 엘살바도르 민중이 그를 압박했다. 그는 대지주들에게 기부할 것을 요청했지만, 교회의 정치화는 반대했다.

 

로메로 대주교는 가톨릭 방송의 강론을 통해 희생자와 살인자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군부정권의 학살을 경고하며 인권 옹호에 앞장섰다. 또 그는 커다란 주교관을 떠나 병원에 마련된 숙소에 머물렀다. 로메로는 가톨릭 교리에 근거해서 행동했지만, 1979년 선출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1996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로메로 대주교의 무덤 앞에 섰다. 그리고 뒤늦게 ‘목소리 없는 이들의 대변자’였던 로메로 대주교를 인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등장하자 남미에서 로메로 대주교가 가톨릭 신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물었다. ‘독재와 가난을 위해 투쟁한 성직자를 복자의 반열에 올릴 수 있겠는가?’라는 신학적 물음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신앙에 대한 증거로 죽어야만’ 순교자로 이해했던 것에서, ‘이웃사랑 실천에 헌신하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한 바와 같이 행동하다 죽었다’면 이 또한 순교로 이해한다는 해석이 내려졌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령

 

사람들은 더러 묻는다. ‘아직도 중세의 유산인 성인이 필요한가? 성인은 바티칸의 권력 강화를 위한 정치적 수단이 아닌가? 진정한 신앙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데레사 수녀와 로메로 대주교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신념이 아닌 그리스도교 신앙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사람이다. 최상의 본보기로 삼아야 할 분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사람의 아들로 사셨던 예수님이시다.

 

뜨거운 여름날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보름 동안의 종조 단식을 마친 나승구 신부가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믿지 않는 것 같다.”라고 한 말은 신앙의 본령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잘 알려준다.

 

데레사 수녀의 공적에는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존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더 데레사의 삶과 책에서 드러난 논쟁을 덮어주었다. 어쩌면 데레사 수녀는 자비를 강조하는 교황에게 맞는 형상을 지녔을지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보프의 말처럼, 로메로 대주교를 통해서 불평등과 불의한 시대에 ‘정치적 성인’을 얻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무튼, 우리 시대는 ‘자비의 아이콘’도 필요하지만, 자비는 더욱 요청된다. 자비는 정의와 다른 말이 아니다.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선 가난한 교회가 더욱 요청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 오민환 바오로 - 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기초신학을 공부하였다. 현재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연구실장으로 있으며, 신앙의 희망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10월호, 오민환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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