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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신심서적 다시 읽기: 그러니, 십계명은 자유의 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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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08 ㅣ No.299

[신심서적 다시 읽기] 그러니, 십계명은 자유의 계명이다

 

 

먼저 이 글이 눈에 띈다. “십계명은 선한 삶과 살아 움직이는 삶의 일부가 되고, 우리를 인간 본성으로 이끄는 길이 된다.” 하느님의 계명을 찬미하는 시편 119장을 보자.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이옵니다. 그분의 계명은 내가 어느 길을 따라야 할지 가리켜 주고, 앞을 밝혀주며, 길잡이가 되어준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내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 누구라도 십계명이란 말을 들으면 아주 이상적인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그리고 보통 사람은 지키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자라면 1년에 의무적으로 최소 두 번의 고해성사를 보지만 십계명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십계명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 아닌가?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 간음, 도둑질을 금하고, 이웃의 아내나 재산을 탐해서는 안 되는 게 종교를 가지지 않더라도 지켜야 할 일들이 아닌가? 지금까지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 중에 넷째 계명의 지향을 음미하며 새 보물을 얻은 희열을 느낀다. 일반적으로 “훗날 편히 지내려면 늙은 부모를 공경하고 봉양하여라. 너희도 자식들에게 그리 될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 계명은 노동력을 상실한 부모를 자식들이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 계명이 되었다. 그 지향은 부모가 자식에게 존중과 공경을 받도록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요즘 신문기사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 부모를 차에 태우고 낯모르는 곳에 가서 버린다는 이야기도 있고, 학대하기도 하며,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폭행하는…. 비록 극소수이지만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다.

 

어느 날 산책길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찾는다.”는 아들이 내건 절절한 호소의 현수막! 그래도 아직은 세상이 살만하다는 한줄기의 희망을 보여준 것 같다. 넷째 계명은 먼저 부모에게 부여된 계명이다. 자식들에게 순종하라고 강요하는 것보다“자식들이 너희를 공경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처신하라.” 참으로 귀기울여 들어야 할 귀한 말씀이 아닌가?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어야 할 과제들은 적지 않다. 부모와 자식 간 평생 변치 않을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식들에게 잊히지 않을 부모의 자리를 굳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식들에게 어떻게 하면 애정과 온정을 느끼도록 배려할까?

 

가끔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TV 프로그램을 본다. 자기를 버린 부모를 찾으려고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인다. “이제 이렇게 잘 컸으니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보고 싶다.”고 한다. 그 절규가 가슴을 파고든다. 과거에 어떤 이유가 있었더라도, 손가락질 받을 일을 저질렀다손 치더라도 두 팔 벌리고 안아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게 부모가 아닌가? 인간의 가치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본연의 장은 바로 가정이 아닌가? 자식을 키우되 훗날 당신이 공경 받을 수 있게 키워야 한다. 아이들을 어디에 떠넘기지 말고 온 마음을 다해 어미 아비가 되어주며 몸과 마음의 안식처를 마련해 주는 것 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학교를 제대로 다니고 졸업을 해서 취직을 하고 제 생활을 꾸려 나간다면 걱정할 일이 없겠지만 어디 다 그런가? 노인들도 젊을 때와 같지 않다는 걸 깊이 느끼고 대처해야 되지 않을까? 경제적 빈곤은 물론 영적 빈곤, 정서적 빈곤이 노년을 위협한다. 노년에 치매로 가족들과 한 집에 살지 않고 요양시설에 모셔도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후배 한 분이 치매를 앓는 아흔이 넘은 어머니를 요양시설에 모시고 있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셨지만….) 자식을 못 알아보셔도 일주일에 서너 번씩 찾아뵈면서 함께하는 노인들에게 간식을 준비해 가는 등 정성을 다했다. 자녀들은 타지에 살지만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쉬시게 하려고 의논도 없이 장기간 성지순례도 보내드린다. 안 계시는 동안 자녀들이 번갈아 어르신들의 간식을 준비해 가서 할머니와 어르신들을 돌보기도 한다. ‘그림동화’에 나오는 나무숟가락 생각이 떠올랐다. “엄마 아빠 늙으면 드리려고 숟가락을 만든다는….” 해법은 없는가? 서로를 용서하는 것이리라. 부모의 의사에 반해 다른 길을 걷는 자식을 용서해야 하고 자식은 부모의 과오와 결점을 용서해야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십계명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올바른 삶을 위한 보편적인 길잡이로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압축한다. 첫째 계명: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을 그 무엇보다도 경외하고 사랑하고 신뢰해야 한다. 둘째 계명: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분께 감사드려야 한다. 셋째 계명: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여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기꺼이 귀 기울여 들으며 배워야 한다. 넷째 계명: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며 복종하고 사랑할 뿐더러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다섯째 계명: 살인해서는 안 된다. 이웃의 몸을 해하거나 고통을 주면 안 된다. 여섯째 계명: 간음해서는 안 된다. 일곱째 계명: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이웃의 돈이나 재산을 손에 넣어서는 안 된다. 여덟째 계명: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배반하거나 중상모략해서는 안 된다. 아홉째 계명: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유산이나 집을 책략을 써서 탐내고 정당한 것처럼 가장하여 우리 것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열째 계명: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와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재산은 무엇이든지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 하인, 그의 가축을 가로채거나 유혹하고 이간질하여 빼앗아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신뢰로 살아갈 때 십계명은 성취된 삶을 위한 계명이자 자유를 위한 계명이며 자기실현을 위한 계명이 된다. 하느님의 보호를 느끼는 사람은 슬퍼하거나 분노할 수 있고 낙담하거나 회의할 수 있다. 또한 실수를 범하거나 죄악을 저지를 수 있고 실패하거나 제자리에 안주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절망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받쳐 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십계명은 구약에서 하느님이 시나이산에서 발현하시어 모세를 통해 계시하신 열 가지 계명을 말한다. 십계명의 내용 중 1계부터 3계까지는 하느님께 대한 것이고, 4계부터 10계까지는 인간에 관한 것으로서 자연법의 본질적 요소를 이루는 내용들이다. 십계명은 참다운 인간생활이 하느님과의 친교에서 이루어진다는 종교적·윤리적 원칙을 기초로 하며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친교의 생활을 하라는 하느님 사랑의 계명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언젠가 정신이 들어 세상의 이치를 깨칠 때에는 사랑의 대상이 함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어떨까? 그러니, 십계명은 자유의 계명이다.

 

- 노트거볼프 마티아스 드로빈스키 지음, 윤선아 옮김, 분도출판사

 

* 약력 :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월간 『수필문학』 천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원. 수필집으로 『내가 선 자리에서』, 『하얀 바다의 명상』, 『느끼며 살며』 등이 있다.

 

[월간빛, 2016년 10월호, 강찬중 바오로(대명성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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