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자료

[신약] 신약 여행25: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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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01 ㅣ No.3535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25)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9)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루카 11,1). 흔히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특징으로 표현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생활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일상을 하느님과 연결시켜 주는,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의 모범을 예수님에게서 찾습니다.

 

 

가장 완전한 기도 ‘주님의 기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가르쳐 주신 것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마태오와 루카 복음에서 전하는 이 기도의 내용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말할 만큼 훌륭한 기도입니다. 또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주님의 기도가 가장 완전한 기도”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주님의 기도 이전에 무엇이 올바른 기도인지 전합니다. “골방에 들어가 하느님께 기도하고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마태오 복음의 가르침은 주님의 기도가 갖는 의미를 더욱 잘 드러냅니다.

 

 

7가지 기도 중 셋은 하느님을 위한 기도

 

주님의 기도는 모두 일곱 가지 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에 셋은 하느님을 위한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고대 사회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이름은 한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 역시 하느님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계시한 이후로(탈출 3,14) 우리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 기도를 통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처럼 우리 가까이에 온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마치 임금처럼 하느님께서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마지막은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도록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비록 영원한 하느님 나라는 미래의 것이겠지만 지금 역시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실현되기를 기도합니다.

 

 

네 가지 기도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

 

후반부의 네 가지 기도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악에서 구하소서.”

 

기도문의 표현처럼 주님의 기도는 “오늘”을 위한 기도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 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용서를 청하는 기도에는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치 이웃들의 잘못을 우리가 용서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보다 이웃들에 대한 우리이 용서가 먼저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예수님 역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유혹은 인간의 창조 때부터 있었습니다. 유혹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그것을 이겨낼 힘도 주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기도는 하느님께 우리가 유혹에 빠지도록 허락하시지 않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유혹이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것에 쉽게 동의하는 우리의 현실이 문제일 것입니다. 악은 하느님을 반대하는,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인들에게 악(惡)의 반대말은 선(善)이 아닌 믿음일 것입니다.

 

루카 복음은 이 주님의 기도 끝에 끊임없이 청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그가 줄곧 졸라대면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루카 11,8). 끊임없이 청하는 올바른 기도를 강조하는 가르침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6년 11월 27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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