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6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임치백 요셉 성인 (Saint Im, Chibaek Joseph 1804-1846 오전동 성당 주보성인), 김대건을 만나 새 삶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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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규 [choyeung] 쪽지 캡슐

2019-04-29 ㅣ No.626

 

-한국 천주교회의 103명의 성인(聖人)중 한사람.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성당 주보성인

 오전동성당  Site  http://cafe.daum.net/graceo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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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임치백 요셉의 초상화] 캔버스에 유화, 90x75cm, 2011, 조영규작품, 오전동성당 소장

 

임군집(林君執)으로도 불리던 임치백(林致百) 요셉(Joshepus)은 한강변의 한 부유한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830년에 천주교를 알았으나 입교하지는 않았고, 천주교와 천주교인을 호의적으로 대하기만 하였다. 18465월 아들 임성룡이 김대건 신부와 함께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이 갇혀 있는 옹진으로 가서 천주교인이라 속이고 자수하였다. 며칠 뒤 서울로 이송되어 포청에서 김대건 신부를 만나 교리를 배우고 곧 세례를 받아 순교를 결심하였다. 마침내 920일 정오부터 해가 질 때까지 매를 맞고, 6명의 교우와 함께 4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임치백은 어려서부터 신앙을 익히지는 못하였고 결혼 후 그의 아내와 아들이 먼저 입교하였기에 천주교를 접했다. 그들이 그에게도 세례받기를 권했으나 늘 뒷날에 입교하겠다고 말했다. 신자는 아니었으나 교우들을 형제처럼 사랑하여 의지할 곳 없는 교우 4, 5명을 그의 집에서 지내게 할 만큼 물심양면으로 교우들의 신앙 생활을 지지했다  

 

18466월 임치백은 선주였던 아들 임성룡이 김대건 신부를 따라 연평도로 나갔다가 함께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이 갇힌 해주까지 달려가 아들의 석방을 청하였다. 이때 황해도 감사는 그의 요구를 묵살하고 도리어 그를 옥에 가두었다가 서울로 압송하였다.

 

서울로 잡혀온 임치백은 서울 포청의 감옥에서 우연히 김대건 신부를 만나게 되는데 불타는 신부의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어느 날 갇힌 신자들에게 나도 오늘부터는 성교회를 믿겠소. 너무 오랫동안 끌어왔었소.”라고 말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그날부터 기도문을 가르쳐 요셉이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주었다. 전에 임 요셉과 친하게 지내던 포졸들은 그의 목숨을 구하려고 배교하기를 권하였으나 그는 천주는 나의 임금이시며 아버지시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을 결심을 하고 있고, 이미 죽은 사람이니 다시는 그러한 말을 하지 말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며칠 후 형리들은 그의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와서 자식들의 처지를 보아서 배교하라고 말했지만, 인정에 끌려 천주를 버릴 수 없다고 하자 형리들은 노하여 그를 거꾸로 매달고 물매질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형리들에게 당신들은 죽은 사람을 때리니 헛수고만 하는 것 아니오라고 태연히 말하였다. “천주는 나의 임금이시며 아버지이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을 결심을 하고 있고, 이미 죽은 사람이니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며 자신의 신앙을 밝힌다.

 

그 후 3개월이 지나 그는 곧 사형선고를 받으리라는 소문이 들리자 즐거운 마음으로 신자들에게 나는 본래 아무런 공적도 없었는데 천주의 특별한 은혜로 여러분보다 앞서서 천국에 가게 되면 반드시 천국에서 내려와 여러분의 손을 붙잡고 아버지이신 천주의 나라로 안내할 터이니 여러분도 용기를 내시오라고 말했다.

 

무식한 자녀들도 부모에 대한 효도를 하듯이 나는 배운 것은 없으나 천주께서 아버지이신 것은 알고 있다

 

그 후 포장 앞에 끌려가 다음과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네가 천주교를 믿는다니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옥에 온 뒤로부터 경문을 배우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외워보아라.” “아직 모두 외우지 못합니다.” “십계명도 모르면서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느냐? 천국에 가려면 여기 있는 이 마티아처럼 유식해야 한다.” 하고 말하자,

요셉은 머리를 흔들며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자녀가 무식하면 효도할 수 없습니까? 아닙니다. 무식한 자녀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부모께 대한 책임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저는 배운 것은 없으나 천주께서 저의 아버지이신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이에 포장은 그를 고문하라고 명하여 대꼬챙이로 요셉의 살을 찌르게 하고 세 번이나 주리를 틀게 하였다. 이 때 요셉이 신음소리를 내자 포장은 만일 네가 그러한 소리를 내면 그것으로써 배교행위라고 보겠다.”라고 소리치자, 요셉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잔악한 고문을 받아 결국 정신을 잃고 밖으로 끌려나왔다.

 

그 후에도 요셉은 거듭 고문을 받았으나 변함이 없자, 때려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져 정오부터 해질 때까지 물매질을 가하였으나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를 옥안으로 끌고 가서 목을 졸라 죽였다. 이때가 1846920일이요, 그의 나이 43세였다. 그는 192575일 교황 비오 11(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5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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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치백 요셉성인의 초상화 작품], 의왕시 오전동성당의 전합수 주임신부 및 수녀님과 김정순 릿다 전례분과장

-조영화실에서

 

◯  오전동성당은 2001년 1월 30일에 호계동 본당에서 분가하여 설립되었는데 '성 임치백 요셉'을 주보성인으로 모신다.

경기도 의왕시 원골로 42에 위치하여 있다.

 

원문참조 http://blog.daum.net/choyeungart/20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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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치백 요셉 성인, 오전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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