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5일 (화)
(백)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 미사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구석구석 로마 구경: 성 사바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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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4-19 ㅣ No.1810

[구석구석 로마 구경] 성 사바 성당

 

 

고대 로마가 세워진 일곱 언덕 가운데 하나인 아벤띠노 동쪽 편에는 작은 구릉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작은 아벤띠노’(Piccolo Aventino)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은 당시 로마의 교외로 가난한 이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네로 황제 시대에 발생한 로마 대화재(大火災) 이후 한적하던 이곳은 깨끗한 공기와 풍부한 물로 인해 부유한 귀족들의 주거지로 새롭게 떠올랐다. 그 결과 가난한 이들의 보금자리에는 귀족들의 사치스런 빌라가 들어서고 공중목욕탕 같은 편의시설들이 생겨났다.

 

이처럼 귀족들이 자신들의 부와 명성을 과시하기 위해 호화스러운 집들을 앞다퉈 지었던 도심 한가운데에 역설적이게도 세상의 가치를 등지고 하느님을 찾기 위한 삶을 살았던 수도승들의 집이 있었다면 믿어지겠는가? 오늘은 작은 아벤띠노에 자리한 성 사바 성당(Chiesa di San Saba)을 둘러보기로 한다. 성 사바 성당은 로마에서 오래되기로 손꼽히는 수도원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 기원은 8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승에 따르면 수도승들이 살기 시작한 곳은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어머니인 성녀 실비아 가문이 소유한 저택이었다. 원래 이곳은 로마의 방어를 위한 도시 경비병들의 막사 가운데 하나로 쓰였다. 그러다 성녀 실비아 가문이 이곳을 소유하면서 병사들이 묵던 막사는 부유한 귀족의 저택으로 그 모습을 탈바꿈하게 된다. 그러한 귀족 저택이 동방에서 온 수도승들에게 제공되면서 유서 깊은 수도원이 귀족들의 빌라 한가운데에 생겨난 것이다. 처음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한 동방 수도승들은 이곳을 새 암자, 첼라 노바(Cella Nova)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성 사바(San Saba in Palestina, 439-532)에게 봉헌된 예루살렘 수도원의 명칭인 ‘larum novum’에서 그 명칭을 가져왔다.

 

이후 이 수도원의 주인은 역사의 흐름과 함께 여러 차례 바뀌게 된다. 처음 수도생활을 시작했던 동방 수도승들이 떠난 뒤, 10세기경부터 베네딕도회 수도승들이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였는데 이들은 기존에 잇던 기도소(Oratorio)를 성당으로 바꾸었다. 그 후 클뤼니(Cluny) 수도승들이 이곳을 증축한다. 이들은 하나의 회랑(Navata)이던 옛 기도소에 새로운 건물을 세우면서 초세기 그리스도교 성당을 따라서 회랑을 세 부분으로 만들고 각 회랑들 사이에 기둥을 세워서 각 회랑들을 명확히 구분했다. 그리고 각 회랑의 끝부분에 압시데(Abside)를 만들었다. 또한 이들은 왼쪽 회랑의 외부에 종탑을 세웠는데 이는 중세시대 탑의 전형을 보여준다. 클뤼니 수도승들 이후 시토회, 정규 참사회(Canonici Regolari) 그리고 예수회 공동체가 이 수도원을 사용하다가 지금은 예수회가 사목하는 본당(Parrocchia di San Saba)으로 쓰인다.

 

비록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긴 했지만 이곳 성 사바 성당은 늘 같은 자리에서 하느님을 만나고자 찾아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성당을 찾았는지는 성당으로 안내하는 아치형 대문의 문지방을 통해 알 수 있는데, 돌로 된 문지방이 많은 이들의 발길에 닳고 닳아 움푹 패여 있을 정도이다. 비록 돌로 된 문지방은 닳고 닳았지만 그 문지방을 넘어 성당을 찾았던 이들의 믿음은 점점 더 커져갔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 이 문지방을 넘어 성당을 향하는 나의 신앙도 조금 더 커지길 기대하게 된다.

 

수많은 이들이 걸었던 신앙의 발자국을 따라 들어선 성당 정면은 그간 많이 보아온 여느 성당의 모습과 달랐다. 이 성당은 15세기 중엽 재건되면서 사바 성인과 안사노 성인(San Ansano)에게 봉헌되었는데, 성당 정면은 그때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붉은 색 벽돌로 쌓아올린 하부기둥 여섯 개와 중심부의 붉은 벽돌부, 그리고 성당의 지붕을 지탱하는 상층부의 돌로 된 작은 기둥은 화려함을 강조하는 대신 단순함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도하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서는 수도승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미사여구로 꾸민 기도가 아닌 단순한 기도, 그 단순함이 수도승들이 바쳐야 하는 기도의 본질임을 성당 입구에서부터 알려주는 듯하다.

 

 

 

성당 대문과 출입구 사이에는 이곳과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돌판이 있는데, 거기엔 라틴어로 ‘ex qua domo cotidie pia mater mittebat ad clivum Scauri scutellam leguminum’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는 ‘여기 이집에서부터 매일 경건한 어머니가 음식을 끌리보 디 스카우로(Clivo di Scauro)로 가져갔다’란 뜻으로 성녀 실비아가 자신의 집에서부터 아들인 그레고리오 대교황이 수도생활을 하던 끌리보 디 스카우로에 있던 성 안드레아 수도원으로 음식을 가져다주었음을 증언한다.

 

세 부분의 회랑으로 나누어진 성당의 내부에 들어서면 중심 회랑의 압시데가 눈에 들어온다. 중앙 제대와 제대 위에 설치된 천개(baldacchino)는 다른 성당들에 비해 크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성당의 중심에 위치해 그 중심을 잡아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제대가 성당에서 가장 주목받는 느낌이다. 미술에 문외한이라 그런지 몰라도 사실 압시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눈길을 확 사로잡을 만큼의 작품이 아니기에 오히려 제대와 천개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듯하다. 오히려 눈을 사로잡은 프레스코화는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한 왼쪽 회랑에 있는 13세기의 프레스코화였다.

 

성 사바 성당을 둘러보면서 이곳에서 수행하던 고대 수도승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들이 부유함이 가득한 도시의 한복판에서도 하느님을 찾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저 단순한 삶을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린 세리의 기도에서 단순한 기도가 가진 힘을 성 사바 성당에서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단지 자신이 하느님 앞에 죄인이라 사실을 인정하면 그걸로 족할 뿐이기 때문이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9년 봄(Vol. 45), 글 · 사진제공 강찬규 포에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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