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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한국교회 무명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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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02 ㅣ No.1779

[순교자 성월 기획] 한국교회 무명순교자


목숨 버리고 이름조차 잊혔어도 믿음만은 굳게 지켜

 

 

9월은 가톨릭교회에서 ‘순교자 성월’로 보낸다. 한국교회의 반석인 순교자들을 어느 때보다 더 깊이 묵상하고 공경하는 시기다.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며 순교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에 대해 신자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새삼 고민하게 된다. 특히 이름도 없이, 세례명도 없이 오직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어간 ‘무명(無名) 순교자’의 존재를 되새길 필요를 느낀다.

 

 

순교자란 누구인가

 

‘순교’(殉敎)는 종교를 위한 죽음을 의미한다. ‘순교자’(殉敎者)는 종교를 위해 죽은 이다. 과거에는 순교라는 말보다 ‘목숨을 바침에 이른다’는 의미를 지닌 ‘치명’(致命), ‘치명자’(致命者)라는 용어가 더 보편적으로 쓰이던 시절도 있었다. 

 

교회법적으로 순교자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순교자 측의 ‘질료적 사실’로 실제로 죽어야 하고 ‘형상적 사실’로 그 죽음이 신앙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증명돼야 한다. 또한 박해자 측의 질료적 사실로 죽인 행위 또는 죽음의 직접 동기가 된 가해행위가 있어야 한다. 형상적 사실로는 신앙에 대한 증오(in odium fidei), 적어도 이러한 증오가 주된 동기가 돼 죽게 한 것이 인정돼야 한다.

 

교회에서 말하는 순교자는 순교자 측과 박해자 측의 질료적, 형상적 순교 사실이 모두 증명된 이들을 지칭한다. 이 중에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무명순교자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순교자는 증거자와는 구별된다. 신앙을 증거하다 죽었다 해도 꼭 순교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경자 최양업 신부를 비유적으로 ‘땀의 순교자’나 ‘백색 순교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교회법적으로 말하는 순교자와는 다르다. 박해자 측의 질료적, 형상적 사실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순교자, 무명순교자 몇 명인가

 

교회사학자들은 한국교회 순교자 수에 대해 흔히 “1만 명이 순교했다”고 말한다. “1만 명이 넘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1만 명 순교’는 통설처럼 굳어져 있지만 “1만 명보다는 적다고 봐야 한다”는 견해도 유력하다. 

 

한국 순교자 수를 1만 명 선으로 보는 근거는 파리외방전교회 달레 신부가 지은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찾는 것이 보통이다. 내포교회사연구소 연구위원 방상근(석문 가롤로) 박사는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 병인박해 기간(1866~1870년 무렵)에 8000명이 순교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 병인박해 이전인 신유·기해·병오박해 등의 순교자를 고려하면 전체 순교자는 1만 명으로 통상 받아들여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방상근 박사는 “순교자 1만 명 설은 다소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며 “관변자료와 교회자료로 ‘확인되는’ 병인박해 당시 체포된 신자가 1800여 명 정도여서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병인박해 순교자는 3000~4000명, 전체 순교자는 5000명 수준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방 박사 견해에 의하면 신분이 확인된 순교자에 비해 무명순교자의 비중이 더 높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천주교회 상장례 어제와 오늘」 저자이면서 박해시기 옹기장이 교우촌과 무명순교자를 연구하고 있는 박명진(시몬) 서울대교구 연령회연합회 강사는 이와 관련해 “초기 박해인 신유·기해·병오박해 시기에는 비교적 순교자에 대한 재판절차가 충실히 지켜졌지만 병인박해에 가면 재판절차나 기록을 무시하고 무자비하게 신자들을 죽이게 되면서 무수한 무명순교자가 나오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잊힌 성지’로 불렸던 서울 광희문순교성지에 버려지거나 묻힌 순교자들 794위 명단이 지난해 11월 발굴, 공개됐다. 무명순교자의 행적을 찾는 노력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순교자 시복시성과 무명순교자 공경

 

순교자들 중 교회에서 정한 시복시성 절차를 거쳐 복자와 성인반열에 올라 신자들의 공경을 받는 사례가 있다. 그렇다면 시복시성되지 못한 순교자들, 시복시성 절차를 진행할 자료조차 찾을 수 없는 무명순교자들은 성인이 아니거나, 신자들의 공경을 받을 이유가 약한 것일지 의문이 든다. 

 

주교회의 발행 「시복시성절차 해설」 머리말에는 “교회의 시복시성을 거치지 않은 많은 성인들이 하늘 나라에 무수히 많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복자나 성인들이 이미 하늘 나라에서 누리는 영광을 생각한다면, 지상의 시복시성식은 초라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나온다. 그런데도 교회가 오랜 세월과 인력, 비용이 드는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시복시성식을 여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복시성절차 해설」 은 “시복시성의 이유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성인들을 기리며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이끌기 위함이다”라고 답한다. 

 

실제 가톨릭교회 역사에서 초기 순교자들 공경시대(1~4세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법적 시성 제도가 없었다. 초기 순교자들의 시성을 위한 조사나 선언, 결정을 한 자료도 없다. 시복시성 법제화를 위한 교황과 교황청의 노력은 식스토 5세 교황(재위 1585~1590년)이 교황령 「영원한 하느님의 무한한 은혜」를, 우르바노 8세 교황(재위 1623~1644년)이 「거룩한 이들의 시복과 시성 절차에서 지킬 규칙」을 제정하면서 구체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순교자에 대한 공경은 시복시성 법제화와 관계없이 가톨릭교회의 전통으로 오랫동안 지켜졌다는 의미다. 

 

가톨릭교회에서 모든 성인을 기려 11월 1일에 지내는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에서도 무명순교자 공경의 근거와 취지를 알 수 있다.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에서 말하는 성인이란 시성식이나 전통에 의해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성인으로 인정받는 이들만을 뜻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범을 따라 생활하다 죽은 후 하느님과 일치를 누리는 모든 이를 말한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조) 한국교회의 무명순교자 역시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에서 말하는 성인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다. 

 

박명진 강사는 무명순교자 공경에 대해 “한국교회 103위 성인이나 124위 복자들이 공경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하느님의 종들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은 중요하다”면서도 “이와 다른 차원에서 무명순교자들은 제도권 교회 밖에서 오히려 더 깊은 신앙을 지킨 만큼 하느님 보시기에는 성인이기 때문에 그분들께 전구를 청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어 “무명순교자들을 조명하고 공경하는 노력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한국교회의 마땅한 의무”라고도 덧붙였다. 

 

주교회의 인준 전국성지를 7차례나 완주한 김광식(요셉·63·인천 가좌동본당)·최복순(안나·62)씨 부부도 “우리나라 천주교 성지는 무명순교자의 흔적이 없는 곳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을 확신하고 순교한 분들은 무명과 유명(有名)의 구분 없이 똑같은 공경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학생들이 사제품을 받을 때까지 전국 성지를 순례하는 교육과정을 도입하면 사제들이 한국교회의 뿌리와 한국교회는 하나라는 역사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무명순교자 행적 찾는 노력 기울여야

 

무명순교자는 순교자로 불리긴 하지만 신원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없는 분들이다. 박해시기가 끝난 지 150년 가까이 흘러 이제는 무명순교자들의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무명순교자들의 행적을 발굴하는 노력은 의외의 큰 결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103위 성인 중 한 명인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는 수원교구 미리내 무명 순교자 묘지에 묻혀 있다가 수원교구와 대구대교구, 한국교회사연구소의 협력으로 1986년 실체가 밝혀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잊힌 성지’였던 서울 광희문순교성지에 버려지거나 묻힌 순교자 794위 명단을 전주대 서종태(스테파노) 교수가 최초로 발굴, 공개하기도 했다. 

 

전 수원교회사연구소 고문 하성래(아우구스티노) 박사가 자신의 저서 「무명순교자의 뿌리를 찾아서」에서 밝힌 대로 순교자는 박해로 일시 역사의 암흑 속에 묻힌다 해도 반드시 언젠가는 찬란한 광채로 드러난다.

 

[가톨릭신문, 2018년 9월 2일,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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