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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

생활 속의 교회법43: 보속을 했는데 왜 잠벌이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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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21 ㅣ No.400

생활 속의 교회법 (43) 보속을 했는데 왜 잠벌이 남아요?

 

 

가끔 “잠벌이 무엇입니까?” 또는 “고해성사 후에 보속을 충실히 했는데 왜 잠벌이 남나요?” 하고 물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하고 사죄경을 받은 후에 보속까지 충실히 마쳤음에도 무엇인가 벌이 남아 있다는 느낌은 우리에게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미워하는 마음에 고의로 악의를 품고 어떤 사람을 밀어서 넘어트렸는데 그 사람이 넘어지면서 팔을 잘못 짚어서 뼈가 부러져 큰 수술을 받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가 깊이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피해자에게 용서를 청하여 용서를 받고, 이후 병원치료비를 포함하여 충분한 보상을 하였어도 결코 나는 그 사람을 넘어트려 뼈가 부러지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없습니다.

 

결국 어떤 악행이 일단 한번 저질러지게 되면, 그로 인해 단절된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그리고 나와 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여도, 또한 정의의 회복을 위해 합당한 보상을 하고 보속을 하여도, 우리는 결코 악행이 발생하기 이전의 완전한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고해성사를 하고 보속을 하여도 악행을 통해 세상을 어둡게 한 만큼 선행과 공덕으로 세상을 다시 밝혀야 하는 책임(벌)을 지니게 되는데 이를 잠벌(暫罰, poena temporalis)이라 합니다. 잠벌은 지옥에서 받는 영원한 벌이 아니라 현세나 연옥에서 받는 잠시의 벌입니다.

 

세례성사는 물과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새로 태어나는 성사이기 때문에 세례성사를 받게 되면 그 자체로 세례 받기 이전의 죄의 상태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지은 죄로 인해 짊어지게 되는 책임인 모든 벌까지도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세례 받은 신자는 세례 받기 이전에 지은 모든 죄에서 기인하는 잠벌이 남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례 받은 이후부터는 악행을 통해 죄의 상태에 빠지게 되면 고해성사를 통해 지옥 벌(영원히 하느님과 단절된 상태)을 용서받게 됩니다. 그리고 고해성사에서 부여받은 보속을 하여도 이미 저질러진 악행에 대한 잠벌(잠시의 벌)은 남게 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보다 세례를 늦게 받은 사람이 잠벌이 적어서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죽기 직전에 대세를 받은 사람은 아예 잠벌이 없기 때문에 천국에 바로 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세례를 받아서 죄에 대한 잠벌이 쌓이기 시작하였어도 쌓아놓은 잠벌을 한 방에 없애 주는 대사(大赦, indulgentia)가 있고, 더구나 죽을 위험 중에 있는 신자에게는 병자성사 중에 언제든 사제가 전대사를 베풀어 모든 잠벌을 면해줄 수 있기 때문에 고해성사 이후에 잠벌이 남는 것을 불편해 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잠벌은 적어도 연옥이 아니라 현세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고통이나 괴로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를 지어 세상을 어둡게 한 만큼 기도와 선행과 자선으로 세상을 밝혀야 할 책임이 주어진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자녀가 죄를 지었다고 아픈 매를 드시거나 고통스러운 벌을 세우시는 분이 아니라, 자녀가 죄를 지은 만큼 기도와 선행과 자선 등을 통해 세상을 밝히라고 타이르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참 좋은 아버지를 두었습니다.

 

[2018년 7월 22일 연중 제16주일 가톨릭제주 4면, 황태종 요셉 신부(제주교구 사법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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