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7성사ㅣ 준성사

[성사] 성사란 정말 칠성사일까?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08 ㅣ No.232

[빛과 소금] 성사란 정말 칠성사일까?

 

 

천주교 신자이면 성사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느 때는 신자가 아닌 정치인들도 성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자신이 고해성사를 보는 심정으로 감추어진 비밀을 말한다고 한다. 성사라는 말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말이다. 그런데 성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성사는 칠성사이다.”라고 대답한다. 칠성사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일곱 가지의 성사에 대해 줄줄이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성사는 세례, 견진, 성체, 고해, 혼인, 성품, 병자 성사라고 말한다. 이 말은 성사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칠성사만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성사라는 말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개신교 신자들은 성사라는 말을 전혀 모르고 쓰지도 않는다. 그런데 천주교에서 성사라는 말은 신앙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성경에 없는 성사라는 말은 어디서 처음 생겨났을까?

 

신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신비(미스테리움, Mysterium)’라는 단어는 하느님의 신비, 그리스도의 신비, 감추어진 신비라는 말로 자주 나온다. 성경에서 신비라는 단어는 감추어진 하느님을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낸다는 뜻이다. 신비라는 그리스 말이 로마의 교부 테르뚤리아누스에 의해 하느님의 거룩한 일이라는 뜻으로 ‘성사(사크라멘뚬, Sacramentum)’라는 단어로 바꾸어 사용되었다. 라틴어로 성사라는 단어는 군인이 군복무 선서를 할 때 하는 맹세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 단어를 테르뚤리아누스가 ‘하느님의 신비’라는 말에서 ‘하느님의 성사’라는 말로 바꾸어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거룩한 일이 성체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여 그리스어 ‘신비’를 라틴어 ‘성사’라고 바꾸었던 것이다.

 

성사(聖事)라는 단어는 ‘거룩한 일’을 뜻한다. 즉 ‘거룩한 일’이다. 이 ‘거룩한 일’이란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결합되었을 때의 거룩함을 말한다. 성사를 하느님의 거룩한 일이라고 함은 하느님의 구원 업적이 우리들 가운데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사에 대한 의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전례적으로 사용되거나 추상적으로 이해되는 하느님 구원행위의 은총이라고 말한다면 그 참된 뜻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느님께서 하신 가장 거룩한 일은 세상 창조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으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하느님께 되돌려 바친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을 넘어서려는 탐욕과 죄 그리고 죽음으로 인해 하느님 사랑을 멀리하게 되었다. 하느님은 당신을 멀리하는 인간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죄와 죽음을 이기기 위해 당신께서 직접적으로 거룩한 일을 드러내셨다. 하느님의 직접적인 거룩한 일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하느님의 거룩한 일 즉 성사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의 인간성, 그의 생애와 활동, 특히 십자가상의 고통과 죽음으로써 자신을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줌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또 우리 구원을 위하여’ 행하신 예수님의 구원 의지를 보여줌과 효과적인 표지인 것이다. 따라서 성사의 원천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강생의 신비를 단지 추상적이고 기복적인 개념의 성사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의 삶, 특히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그리고 교회를 통한 구원행위의 역동성인 성사로 이해해야 한다.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됨으로써 인생의 온갖 일상사와 복잡사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 인생의 온갖 방향을 정해주며, 우리와 더불어 살고 활동하시기 위해서, 우리 인간을 하느님 사랑 안에서 충만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 계신다. 성사는 우리와 함께 숨 쉬는 예수님,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성사는 칠성사라는 말이 우선하는 것이 아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2018년 1월 28일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인천주보 4면, 김일회 빈첸시오 신부(구월1동 본당 주임)]



1,44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