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레지오 단원은 어떤 유혹에도 단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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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3-07 ㅣ No.563

[레지오 영성] 레지오 단원은 어떤 유혹에도 단호해야 합니다

 

 

믿음을 살아내는 일은 힘듭니다. 세상을 살면서 믿음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결코 만만치가 않습니다. 주님의 뜻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주님을 향한 믿음도 어렵고 주님처럼 사랑하는 일도 정말 힘이 듭니다.

 

무엇보다 믿음 인에게 제일 힘든 일은 ‘믿음의 법칙’과 ‘현실의 법칙’이 다르다는 점이라 싶습니다. 영적인 삶을 꿈꾸고 살아내려는 우리와 달리 세상은 결코 영적이지 않으니까요. 그러기에 믿음은 도전입니다. 믿음의 산맥을 넘어 쓰라린 사랑의 아픔을 이겨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영혼을 울리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분을 향한 맹렬한 투신으로써만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특히 레지오 단원들이 어떠한 유혹 앞에서도 당당하게 맞서 이기도록 돕고 싶습니다.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이 죄의 곁에서 얼쩡대며 서성이지 않도록 죄 앞에서 쩔쩔매는 일이 없이, 미련 없이 돌아서는 지혜를 살아내도록 돕고 싶습니다.

 

사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1,15) 유혹에 넘어간 마음은 탐욕에 젖어들기 마련입니다. 탐욕에 물든 영혼은 타락의 늪에 빠져들기 십상입니다. 이것이 악랄한 죄로 이끄는 사탄의 방법이며 수순입니다. 하지만 신앙인들이 당혹하게 하는 많은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일지 모르겠다고, 알쏭달쏭하다며 헷갈려하는 바로 그 일에 대한 간단한 식별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대로’ 말씀에 무엇을 보태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고 덜어내지도 않고 순수하게 복음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요.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되물으십니까?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세밀히 살펴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대번에 파악되지 않나요? 주님의 말씀을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내 생각과 말과 행위로 인하여 갖은 죄에 시달리는 것 아니던가요? 때문에 기도마저 구걸하는 거지처럼 너덜너덜해지지 않던가요? 기껏해야 자신의 모자람에 당신의 이해를 청하기 일쑤이고 겨우겨우 자신의 허약함을 핑계 삼을 궁리만 하고 지내니 말입니다.

 

 

유혹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어서 피하는 게 상책

 

말씀을 통해서 느끼는 하느님의 사랑은 참 감미로운데, 강론을 통해서 듣는 하느님의 약속은 정말 마음에 드는데 하느님께서 내 삶에 개입하여 당신의 뜻에 따라 살도록 시련을 주시는 것이 심히 불만스럽다면 바로 그 마음에 유혹이 자리했다는 징표입니다. 유혹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어서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재빨리 털어내는 것이 제일입니다.

 

명심해야할 점은 우리가 피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털어내는 것만으로 유혹의 질긴 끈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잠깐만 피하면 ‘괜찮을 것’ 같은, 한 순간만 외면하면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야말로 유혹의 가장 찰진 부분이라고 설명 드리고 싶은데요. 미련 없이 돌아서기엔 뭔가 아까운 듯 한 마음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으니까요.

 

물론 복음에 기초한 삶을 살아간다면 사탄의 유혹에서 풍기는 것이 향기가 아니라 악취라는 것을 금세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을 현혹시키는 사탄의 방법은 다양할 뿐 아니라 교묘하며 매력적이기까지 하니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는 것은 언제나 사탄의 공식이 아주 단순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사탄은 늘 주님의 뜻보다 ‘돈’을 계산하게 합니다. 언제나 주님보다 먼저 ‘자식’을 챙기게 합니다. 나아가 좀 더, 그럴듯하고 폼 나는 업적을 이룬 후에 멋지게 주님을 섬기라고 꼬드깁니다. 이렇게 아주 사소한 생각들로 믿음을 흔들어댑니다.

 

그러니 별로 어려울 것도 헷갈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이 흐릿하고 모호한 경계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장본인은 바로 내 의지라는 걸 명심해야겠지요. 그리고 주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온전한 봉헌을 가장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매사가 쉬워집니다. 삶의 아주 소소한 것에서도 믿음으로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니까요.

 

만약에 내가 손해 보는 일이라서 망설이게 된다면, 그야말로 주님께서 주시는 ‘시련’입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러한 상황을 반드시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또한 어떤 문제 앞에서 그분의 방법에 따라서 해결하겠다는 각오가 선다면, 하느님께서 나의 믿음을 테스트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상황에 맞서 도전하기를 원하시며 지켜보고 계신 주님의 사랑에 의탁해야 합니다.

 

반면에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내가 아닌 남에게 손해를 끼칠 것이 짐작되어 망설여진다면 분명한 ‘유혹’입니다. 한편 인간의 방법이나 궁리로 좀 수월하고 덜 힘든 쪽에 마음이 쏠린다면, 이 또한 유혹입니다. 훨씬 달콤할 것 같고 편안할 것 같고 약간 더 이익이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면, 이 또한 100% 사탄의 유혹입니다.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잘라내야 할 일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비춰 선택하고 지향하는 레지오 단원이 많아지시길

 

이러한 지혜의 분별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내가 물러서기보다 주님께서 양보해주시기를 넌지시 바라는 마음을 치우는 게 급선무입니다. 당장에 끊어내지 않고 시간을 끌고 차일피일 미루면서 주님의 눈치를 보느라 급급하는 마음을 잘라내는 단호함이 필수입니다. 주님과 죄에 양다리를 걸치고 서서 그저 무사안일만을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을 조종하려는 오만의 소치인 까닭입니다. 주님께도 사랑은 아팠습니다. 주님께서도 사랑 때문에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이렇듯 사랑은 아픈 것임을 명심해 주십시오.

 

저는 지금, 언제나 무엇에나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선택하고 지향하는 진정한 지혜로운 레지오 단원이 많아지시길 원하며 이 글을 적습니다. 살아계신 말씀의 은혜가 자꾸자꾸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는 우리 걸음을 차단시켜주시기를 바라며 이 글을 적습니다. 밤낮없이 건들거리며 유혹하고 있는 세상에서 얼른 돌려세워주시기를 청하며 이 글을 적습니다.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마음속을 속속들이 들추어 씻어주시기를 소원하는 마음을 봉헌하며 이 글을 적습니다.

 

믿음은 죄의 유혹보다 훨씬 강한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시는 주님 사랑을 기억하는 마음입니다. 희망은 좋은 것으로 섭리하시는 그분의 사랑에 의탁하는 마음입니다. 이 믿음과 희망으로 우리는 주님의 뜻을 위하여 나를 버리는 참 사랑을 살게 됩니다. 어머니 성모님처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마음으로 두루 넉넉해지는 레지오 용사들로 거듭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3월호,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 부산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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