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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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알코올 중독: 득이 되는 말(言), 독이 되는 말(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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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06 ㅣ No.1473

[알고 싶어요] 득이 되는 말(言), 독이 되는 말(言)

 

 

“사실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래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로마 7,18-20)

 

말(言)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말조심도 시키는 것이다. 말은 힘이 세다. 하여 득이 되는 말이 있고, 독이 되는 말도 있는 법이다. 단적인 예를 한번 보자. 잘못된 충고가 있을까? 진심을 다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하는 말이 그 사람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무척 난감할 것이다. 이런 난감한 일이 알코올에 관해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바꿔 말하자면, 우리 사이에 알코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편견이 팽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정도 일로 뭘 그렇게 힘들어해! 내가 술 한 잔 사줄 테니 다 털어버리고 힘내!”라고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무척 익숙하다. 그러나 본래 술에는 마음을 위로해주는 성분 따위는 들어 있을 리 없다. 그보다 술은 뇌를 잠시 멈추게 하는 물질에 가깝다. 뇌의 조절 능력이 마비되어 기분이 춤추고, 기억 능력이 마비되면서 잠시 시름을 잊을 뿐이다.

 

마음이 평온할 때 조심히 즐기는 술조차 나쁘다고 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마음이 힘들어 마시는 술은 틀림없이 독이 된다.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극복하고 평상심을 찾는 뇌의 고유한 기능까지 마비되기 때문이다. 마음의 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 곁에는 대부분 빈 술병이 놓여있다. 과음은 우울, 불안, 불면증을 야기하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힘겨운 사람에게는 오히려 술을 멀리하라고 조언해야 한다. 어느 때보다 뇌를 더욱 건강하고 또렷하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지력이 없어서 그래. 술을 흥청망청 마실 생각 말고 적당히 조절해서 마시도록 자제력을 발휘해보라고!” 술을 조절하지 못해 알코올 문제가 반복되는 이들에게 의지로 술을 조절해보라는 식의 조언은 더 치명적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술에 관한 한, 한 없이 관대하면서도, 어느 누군가 조절력을 상실하면 의지문제로 치부하며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술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지력이 없어서 그런 난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한다. 음주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심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이미 숱하게 이를 조절하려는 시도를 해왔고, 또 하고 있다. 술 때문에 가족과 갈등을 겪고, 실수를 하고, 사회생활에 해가 되는데도 원 없이 술을 마시겠다고 우기는 사람은 없다. 다들 적당히 기분 좋게 마시고 조절해 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매번 그것이 잘 안 되니 문제일 뿐이다.

 

 

알코올 중독은 의지력이 아무 소용없는 명백한 질병

 

알코올사용장애(알코올 중독)는 의지가 없어서 술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다. 그보다는 알코올 사용에 있어서는 의지력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명백한 질병이다. 이는 알코올사용장애가 뇌질환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훨씬 쉽게 이해된다. 의지만으로 배고픔이나 갈증, 배뇨욕구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참다 지치면 몸에 이상만 초래할 뿐이다. 알코올 중독이 그렇다. 알코올 중독은 우리 뇌가 술을 꼭 필요한 물질로 인식하게 되는 병이다. 술을 마시는 빈도가 늘어나거나, 한 번 마시면 끝장을 볼 때까지 폭음을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이 때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을 갈망감(craving)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단순히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집착, 강박에 이르는 수준을 보인다.

 

그런 상태에서 술을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하면 뇌는 금단증상을 발동시킨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예민해지거나, 잠이 안 오고, 손이 떨린다. 심한 경우에는 알코올성 간질 발작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헛것을 보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술을 다시 마시면 눈 녹듯 사라지는데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얼마 전 신앙심이 깊은 부부를 만났다. 부부는 오랜 시간 남편의 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왔다. 남편은 뭐하나 버릴 것 없는 신사였다. 사실 술자리에서도 호인이어서 교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그 모든 술자리가 끝난 다음이 문제였다. 술이 부족한지 편의점에 들러 꼭 술을 더 사서 들어왔다. 술자리가 너무 잦다고 아내가 말리면 자신을 중독자 취급한다며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다툼도 생겨났다. 술 냄새를 풍기며 비틀대고 말실수를 하고 기억을 잃는 일도 잦아졌다. 부부는 함께 기도도 해보고, 술을 조절하려고 애썼지만 매번 허사가 되기 일쑤였다. 소주 1병까지만 먹고 말자, 1차가 끝나면 집에 돌아오자, 일주일에 딱 하루만 술을 마시자 등의 모든 약속과 다짐은 그저 공염불로 끝났다.

 

신앙인이 하느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그 길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인지, 사실은 내 아집 때문에 포기하지 못 하는 길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늙고 병들게 하셨지만, 의사도 보내셨다. 신앙인에게 의사들은 우리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주님의 도구이다. 부부에게 희망이 허락된 것은 치료를 결심한 순간이었다.

 

“주님 제가 더 이상 술에게 지지 않기 위해 허락하신 모든 치료 방법에 성실히 참여하겠나이다.” 중독 성향이 생긴 것을 인정하고 병원을 찾는 것은 분명 절망을 끝내고 희망을 찾는 길이다.

 

 

환자에게 치료의 기회 제공하면 충분히 나을 수 있어

 

의지로만 술을 끊는 것과 체계적인 진료와 치료를 받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환자에게 치료의 기회를 제공하면 충분이 나을 수 있고, 관리가 가능한 병이 알코올중독이다. 우선 병원을 찾으면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하는 약물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정신과 약물에는 중독성이 있다거나 장복을 하면 ‘바보’가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알코올 치료제는 중독성이나 부작용이 거의 없다. 약물 자체의 효과만으로도 술을 끊을 수 있는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아진다. 약물은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회복시켜 술 생각을 줄여주고, 뇌를 정상화 시켜 술 없는 삶에 적응하는 데 일조한다.

 

또한 전문 상담과 동기강화치료, 인지행동치료 같은 치료 프로그램도 도움이 된다. 수십 년 이상 많은 회복자들의 경험과 전문적인 연구의 산물인 치료 프로그램은 제대로 술을 끊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인도한다. AA모임처럼 단주를 실천하고 있는 회복자들의 모임 또한 도움이 된다. 술을 갈구했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회복으로 방향을 바뀌면 치료 효과는 배가 된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노력하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수용하면 회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상대의 상태를 깊이 이해하지 못 하고 하는 조언은 안 하니만 못 하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건성으로 하는 조언도 마찬가지이다. 의도치 않았으나, 선악과를 먹으라 유혹하는 뱀의 꼴이 될 수도 있다. 주님의 봉사자인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라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공부한 후 진심을 담은 충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술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에게 “술을 끊어보게. 치료를 받는다면 주님께서 도와주실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참된 용기를 모든 단원들에게 허락하시기를 어머니의 전구를 청하며 함께 기도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2월호, 하종은 테오도시오(정신과 전문의, 카프성모병원 알코올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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