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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목] 교회와 노동7: 여성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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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1-28 ㅣ No.1059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ㆍ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교회와 노동 (7) 여성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


‘슈퍼우먼’ 권하는 사회…미래가 없다

 

 

-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등 여성 단체가 “가사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보호 특별법을 제정하라”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제공.

 

 

여성이 남성처럼 대학 교육을 받고 당당하게 취직을 하고 은퇴를 꿈꾼 지 불과 50년도 되지 않았다. 여성 고용률은 1963년 34.3%에서 2014년 49.5%로, 압축적인 경제성장에 한몫을 담당하며 여성의 삶도 파격적인 변화를 맞았다. 이젠 시골에서 상경해 공장 노동을 하며 집안의 기둥인 아들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공순이’가 일하는 여성의 전형이 아니며, 사회 각계에서 여성 참여와 기여가 도드라지고 있다. 여성 노동을 중산층 여성의 한가로운 ‘자아실현’으로 치부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남성 가장의 평생직장이 사실상 사라진 요즘, 단란한 중산층 가족의 삶의 여유와 노후의 편안함을 위해서나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삶을 위해서 여성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그러나 여성이 노동을 자신의 삶과 정체성의 일부로 끌어안는 대가는 혹독하다. 여성은 전통적으로 해 왔던 가사와 돌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돈도 잘 벌어야 하고, 아이도 잘 키워야 하는 ‘슈퍼우먼’으로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피곤한 일상을 버티다 못해 직장을 그만둔다. 여성이 시장 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시하면서 성실하게 가사와 자녀를 돌보는 전업주부를 ‘백수’나 ‘맘충’으로 비난하기도 한다. ‘슈퍼우먼’이나 ‘맘충’이 되기 싫은 여성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대책 없는 비혼, 저출산 문제

 

‘비혼’ 인구의 증가와 ‘저출산’은 해답을 찾기 어려운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다.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부모ㆍ국가ㆍ사회가 공동으로 육아를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슈퍼우먼 방지법’을 제안했었다. 이 공약은 가사ㆍ돌봄 노동의 책임과 시장 노동의 필요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여성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가족과 노동시장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여성을 밖으로 내모는 것은 결국 여성에게 가사ㆍ돌봄 노동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고 대가를 치르게 하는 현실이다. 지난 10여 년간 정부는 여성 고용률을 높이고자 많은 관심과 예산을 쓰며 장려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일ㆍ가정 양립 정책은 남성이 가사와 돌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도록 하기보다는 여성이 가사ㆍ돌봄과 시장 노동을 병행하도록 만들었다. 일하는 부모가 자녀를 돌볼 수 있게 하려는 산전산후 휴가나 육아휴직 같은 휴가 제도의 주된 이용자는 아빠보다는 엄마가 압도적으로 많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에 돌아왔다 해도 야근이 빈번할 뿐 아니라 자녀가 아플 때 외출이나 반차, 연차 사용이 어려운 현실에서 일과 가사를 병행하기는 어렵다.

 

 

남녀 임금격차 OECD 1위

 

2014년 기준으로 육아휴직을 마치고 1년 후 같은 직장에 남아 있는 여성은 56.6%, 절반을 조금 넘을 뿐이다. 1년의 육아휴직 제도조차 활용하지 못하는 여성 근로자도 많다. 고용이 불안정한 기간제 근로자와 학습지 교사 같은 특수고용 형태 종사자에게 휴가 제도는 그림의 떡이다. 

 

여성에게 육아를 떠넘기는 남성을 무조건 비난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를 보고는 놀거나 이직을 준비하려는 것이라 단정해 버리고 조직과 직업적 성공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의심하는 사회와 직장 분위기는 사회적으로 극복해야 할 숙제다.

 

소수 여성을 제외하고 여성 노동자의 노동은 정당한 보상과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17년 우리나라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크다.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은 64만 원밖에 벌지 못한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늘었지만 보건복지업, 교육, 문화 등 저부가가치 분야에 종사하거나 기간제나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한다. 입사 경쟁을 어렵게 뚫고 들어간 회사에서 유리 천장은 높기만 하다. 유리 천장을 뚫기 위해서는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인생에서 유예하면서 ‘남성처럼’ 밤낮없이 일해야 한다. 일부 성공한 고소득 중산층 여성이 시장노동에 참여해 남성과 동일한 수준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부를 쌓는 동안, 저소득층과 이주 여성은 저임금의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을 떠안는다.

 

 

고통을 사랑으로 미화하는 사회

 

봉사와 헌신이라는 미명 아래 저임금 불안정 고용 상태의 보육교사, 방과 후 교사, 장애인 활동보조인, 간호사, 간병인들은 정서의 소진 상태를 부르는 ‘감정노동’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직업을 가졌지만 정작 자기 가족을 위하거나 돌볼 권리는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가족을 위해 수행하는 돌봄 노동의 가치를 온전히 존중하지 않는다. 어르신 봉양과 자녀 양육이라는 돌봄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그런 노동을 ‘사랑’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당연시한다. 하루 24시간이라는 주어진 제약 속에서 경제 성장을 위해 노동시장 참여를 독려하면 할수록 돌보는 노동을 할 시간은 줄어든다. 돌봄 노동이 근로자와 사회를 재생산하는 활동에 꼭 필요한 생산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보상과 인정은 하지 않는다. 시장노동에 참여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사회안전망을 꼼꼼히 구축하지만, 돌봄 노동에 대부분 시간을 할애했던 사람은 ‘피부양자’로서 최소한의 복지만 제공받으며 빈곤 위험에 노출된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여성의 참다운 지위 향상이 이루어지려면 그 지위 향상을 위해 여성 본래의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노동이 조직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성 본래의 것’인 임신과 출산은 여성에게 생물학적으로 부여된 기능일 뿐이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1년의 기간이 소요되는 생물학적 기능이 여성의 일생을 좌우하는 가사ㆍ돌봄의 책임으로 둔갑한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공고화된 가부장제 실천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쟁사회는 그러한 책임에 억눌린 여성이 ‘여성 본래의 것’, 나아가 생명과 돌봄을 포기하도록 만든다. 사회교리는 생명과 돌봄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동을 조직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가정의 남성과 여성이 가사ㆍ돌봄 노동을 함께 나누고, 직장은 노동자에게 돌봄의 시간과 권리를 보장하며, 국가는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과 격차를 해소할 수 있도록 노동을 재조직해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1월 26일, 윤자영 교수(스텔라, 충남대학교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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