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아카데미: 함께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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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9-23 ㅣ No.1910

[사회교리 아카데미] 함께할 수 없는 것


영원한 생명의 길, 하느님만 따르렵니다

 

 

영원한 생명을 찾던 사람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젊고(마태 19,22) 권력도 있고(루카 18,18) 재물도 많은(마태 19,22; 마르10,22; 18,23) 사람입니다.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그런 사람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가진 것을 누리기만 해도 마냥 행복했을 텐데 영원한 생명을 찾다니, 재물과 권력의 노예가 아니라 참 자유인입니다. 오늘의 탐욕에 게걸들린 짐승 같은 사람이 아니라, 오늘을 넘어 오늘을 완성하는 영원을 꿈꾸는 참 사람입니다.

 

 

선하게 살던 사람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려무나. 한 마디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란다.” “그건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혹시 아직 부족한 것이 있는지요?” 자신 있게 대답하는 이 사람, 더욱이 겸손하게 부족한 것이 있는지 묻는 이 사람,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르십니다. “너에게 모자란 것이 하나 있단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거라. 그리고 나를 따라오렴.”

 

 

마침내 알게 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포기한 사람

 

드디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어려울 것 같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가진 것에 집착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찾아 나섰으니까요.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길고 힘겨운 깨달음의 여정 끝에 온 환희의 표정을 이 사람에게서 보고 싶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슬픕니다. 절망적입니다. 이미 놓아버린 것 같았던 것들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떠납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포기합니다.

 

 

함께할 수 없는 것을 움켜쥐지 않는 사람

 

이미 자신의 길을 떠난 이의 뒷자리에서 그를 봅니다. 예수님 가르침대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 걸으며 마침내 찬란한 부활의 영광을 입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짐’과 ‘나눔’, ‘홀로’와 ‘더불어’, ‘자신의 길’과 ‘예수님 따름의 길’, 함께할 수 없는 것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했을 따름일 뿐이니까요. 오히려 예수님을 떠난 그 사람, 자신과 예수님께 솔직한 사람이지 않을까요. ‘함께할 수 없는 것’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인 양 제멋대로 생각하여 둘 다 움켜쥐려는 것이 탐욕이고, ‘함께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교묘히 줄타기를 하는 것이 위선이 아닐까요.

 

 

함께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결단해야 하는 나

 

‘주님께서 전해주신 기쁜 소식의 책’에 담긴 ‘슬픈 이야기’를 곱씹으며 나를 봅니다.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다가 마침내 그 길을 알고서도, 그 길이 아닌 제 길을 떠난 이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를 돌아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참 잘 살아왔구나. 고맙구나. 사랑스럽구나. 그런데 너에게 아직 모자란 것이 하나 있단다. 아니 네가 정녕 추구해야 할 단 한 가지가 있단다.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려무나.” 예수님께서 애틋하게 간절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럼요. 그렇게 할게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저는 그리스도인이니까요.” 머리로는 언제나 기꺼이 대답합니다. 그러나 몸은 더딥니다. ‘빛’과 ‘어둠’, ‘사랑’과 ‘미움’, ‘믿음’과 ‘불신’, ‘희망’과 ‘절망’, ‘섬김’과 ‘군림’, ‘포용’과 ‘배척’,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 ‘하느님’과 ‘우상’,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오가기도 하고, 적당히 타협하기도 합니다. ‘저는 사람이잖아요. 언제나 한결같을 수 없잖아요. 도저히 안 되겠어요.’ ‘힘내렴, 사랑하는 아들아,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라도 하느님께는 가능하단다. 그러니 하느님을 믿고 다시 한 걸음 내딛으렴.’ 이제 또 다시 시작입니다.

 

*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 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의정부교구 파주 교하본당 주임 및 8지구장으로 사목하고 있다. 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9월 24일, 상지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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