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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 홀로 문화의 시대: 나 홀로 문화의 시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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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9-17 ㅣ No.1424

[경향 돋보기 - 나 홀로 문화의 시대] 나 홀로 문화의 시대가 오고 있다

 

 

혼족의 시대가 열리다

 

모둠별 과제를 요구하는 수업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협력하며 배운다는 기대감보다는 낯선 관계에서 비롯되는 불편함과 불확실함이 두렵기 때문이다. 바쁘고 각기 다른 일정으로 함께 모이기도 어렵고, 무책임한 팀원을 만나면 한 학기가 고생으로 점철될 수 있다.

 

학기말이 되면 무임승차한 수강생을 고발하는 투서가 담당 교수에게 전달되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혼자 공부하고 혼자 답하는 시험을 통해 평가받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편하고 익숙하다.

 

‘밥터디’라는 모임이 있다. ‘밥 먹을 때만 만나는 스터디 그룹(공부 모임)’을 뜻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임의 목적이 함께 어울려 공부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공부는 혼자 알아서 하고 밥 먹을 때만 잠시 만날 뿐이다. 누군가 시험에 합격하거나 취직을 하면 이 모임은 자연스레 해체되거나 다른 사람이 충원된다.

 

공부와 상관없이 그냥 밥을 먹으려는 밥터디도 흔하게 만들어진다. 어울릴 친구가 없어서, 혼자 식사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밥터디에 가입하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정기적으로 함께 식사하지만 밥터디 사람들과 친밀한 친구로 발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삶은 20대 대학생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과 ‘혼술족’(혼자 술 마시는 사람)의 증가는 한국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변화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혼족’(혼자 사는 사람)에 대한 오해와 논쟁도 적지 않다.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피하는 혼족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비사교적이고 비사회적인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인간적인 공동체의 모습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제기된다. 그 반면, 복잡한 대인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어서 좋겠다는 부러운 시선도 동시에 존재한다.

 

 

혼족이 늘어난 배경을 찾아서

 

주거와 일상을 먼저 살펴보자. 2015년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의 비율은 전체 가구의 27.2%(520만 가구)를 차지한다. 한국인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혼자서 취식과 취침을 하면서 살아가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가파른 증가 추세이다. 1980년 4.5%, 1990년 9%에 불과했던 1인 가구는, 2000년 15.5%, 2010년 23.9%로 급격히 증가했다. 1990년 이후 25년 사이에 18.2%가 증가한 셈이다. 급격하게 증가한 1인 가구를 통해 홀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혼족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혼족의 삶은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일까, 아니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적 원인이 존재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이 경험하는 사회적 단절과 고립은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심각한 수준일까?

 

우리가 거주하는 건물의 구조와 배치는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류에 영향을 준다. 집과 가옥의 변화를 통해서도 사회적 단절이 증대하는 배경을 찾을 수 있다. 2015년 한국의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이른다. 1980년대 10%이던 아파트는 지난 30년 동안 가장 지배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인들의 사회적 단절을 증대시켰다.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듯이 한국의 아파트는 이웃과의 만남과 교류를 어렵게 하는 폐쇄형 구조다. 현관문을 닫고 집 안에 들어오는 순간 누군가 집에 찾아오기 전까지 외부와의 교류는 단절된다. 아파트 단지에 살아 본 사람이라면 경험했을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이 사실은 이웃 주민이었던 경우도 있다. 그만큼 한국의 아파트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살더라도 출입구나 동, 단지가 다르면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형태로 설계되어 있다.

 

 

시간 빈곤이 문제다

 

1인 가구로 살거나 아파트에 살더라도 여유 시간이 충분하다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시간 빈곤’ 국가이다. 시간의 부족은 타인과의 교류나 교제를 가로막는 주요인이다. 2014년 한국 고용정보원과 미국 레비경제연구소와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42%는 시간 빈곤을 경험한다고 한다. 시간 빈곤이란 일주일의 168시간 가운데 생존에 필요한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이 주당 근로 시간보다 적은 경우를 말한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시간 빈곤을 경험하는 주된 이유는 장시간 노동과 장거리 통근 때문이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의 평균 근로 시간은 1년에 1,770시간인 반면, 한국은 2,163시간으로 멕시코 다음으로 최장의 노동 시간을 가진 나라다. 통근에 사용하는 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길다.

 

2016년 OECD 회원국의 직장인들이 통근에 사용하는 시간은 평균 28분에 불과했지만 한국은 58분으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긴 시간을 통근하는 데 할애한다. 장시간 노동에 장거리 통근은 시간 빈곤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높여서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우려는 경험적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2014년 한국인들의 여가 시간은 하루 평균 4시간가량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어떤 활동을 하며 여가 시간을 보낼까? 여가 시간 가운데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한국인의 여가 시간은 대부분 텔레비전 시청(51%)과 인터넷 검색(12%)에 사용하고 있다.

 

반면 타인과 함께 사용하는 시간은 43분에 지나지 않으며, 교제 시간도 최근 들어 감소하는 추세이다. 2007년에 여가 활동을 친구나 지인과 함께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35%였지만, 2014년에는 8%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기간 혼자서 여가 활동을 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44%에서 57%로 증가하였다.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 활동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보내는 시간도 감소했다. 이와 같이 시간 사용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도 사회적 단절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는

 

자발적 결사체와 단체 활동에 대한 장기간 연구를 통해서도 사회적 고립이 관찰된다. 지난 30년 간 진행된 조사에서 한국인의 사회 결사체 참여는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1980년대 초반부터 실시된 조사에서 노동조합, 정당, 시민 단체, 전문가 협회 등과 같은 결사체에 가입한 한국인의 비율은 10%를 넘어서지 않았다.

 

결사체 참여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더욱 낮아지고 있다. 비슷한 기간에 진행된 다른 국가와 비교해 보면 한국인의 자발적 결사체 참여는 상당히 낮은 편이다. 결사체와 단체 참여라는 지표를 통해서도 한국인의 사회적 단절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사체는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류 이상의 의미와 결과를 가져온다. 결사체에 가입하고 참여를 통해 사람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정보를 교류하고, 공동의 행동을 기획한다. 때로는 갈등을 해결하고, 타협하는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과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형성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인들의 자발적 결사체 참여는 매우 낮고, 타인과의 교류도 감소하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향은 한국인들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신뢰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

 

1980년대 초부터 전 세계 100개국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 Survey)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사람을 대할 때 조심하는가?”라는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1982년에 처음 실시된 조사에서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한 한국인의 비율은 38%였지만, 1990년 34%, 1996년 30%, 2010년에는 26%로 꾸준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0년 현재 한국인 4명 가운데 3명은 타인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한다. 타인에 대한 한국인의 신뢰는 매우 낮은 편이다.

 

그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신뢰는 지난 30년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한국 사회의 신뢰가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같은 기간 동안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한 노르웨이 국민은 74%였고, 스웨덴 국민은 68%였다. 동일한 시기에 일본과 미국의 국민 40% 정도도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응답하였다.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타인에 대한 신뢰가 아주 낮은 편이다.

 

이웃과 교류가 적고, 결사체에 가입하지 않으며, 타인을 신뢰할 수 없는 사회에서 이어 가는 삶은 어떠할까? 2015년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평소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한국인이 18%이고, 몸이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없는 경우는 23%라고 한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에 놓여 급하게 돈을 빌릴 사람이 없는 경우는 50%에 달한다. OECD 주요 국가들은 응급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는 경우가 10% 내외에 불과하다. 이러한 국가 간의 차이는 한국 사람들의 삶이 그만큼 외롭고, 서글프며, 절박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한국인들은 고립된 삶을 이어 간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저소득층, 노인, 학력 수준이 낮은 계층에 속할수록 더욱 심한 사회적 단절에 놓여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지난 15년 동안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를 차지한다. 전체 OECD 회원국 평균의 두 배를 상회하는 자살률은 한국인들의 삶이 그만큼 외롭고 절박하며 이를 해결할 제도적 장치가 취약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취약 계층일수록 자살을 택할 위험이 훨씬 높아진다. 혼밥과 혼술을 개인적 삶의 취향으로만 바라보기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상황은 너무나 심각하다. 각자도생하여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하루하루는 외롭고 고달프다.

 

* 김수한 -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울산과학기술원 경영학부 교수를 지냈다. 사회 조직, 기업, 불평등에 관심이 있으며, 현재 장시간 통근이 직장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9월호, 김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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