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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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9-08 ㅣ No.536

[레지오 영성]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불편한 진실

 

 

‘불편한 진실’이란 미국의 전직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가 1000회가 넘는 강연에서 사용했던 슬라이드 쇼를 바탕으로 지구 온난화에 대해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을 통해 많이 알려진 표현이긴 하지만, 사전(事典)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는 동의하지만, 대놓고 말하기는 꺼려지는 것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운 경우’를 불편한 진실이라고 표현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불편한 진실은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많은 단원들이 암묵적으로는 동의하지만 대놓고 말하기는 불편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서울 세나뚜스 평의원 연수에서 평의원들과 레지오 마리애의 불편한 진실이 무엇인지 의견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제일 많은 평의원들이 동의한 내용은 우선 레지오 단원으로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교본에 레지오 단원은 활동배당을 받고 일주일에 2시간 그 활동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활동배당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불편한 진실인 것입니다. 실지로 자체 조사한 어떤 꼬미씨움은 전체 쁘레시디움의 25%정도만이 활동을 제대로 배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더 잘하고 있는 곳이나 더 어려운 곳이 있겠지만 분명 대면해야 할 현실인 것은 확실했습니다. 교본에도 ‘실질적이며 적극적인 활동을 수행하지 않는 레지오는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레지오이다.’(교본 431쪽 10)라고 표현되어 있듯이 레지오에서 활동은 매우 중대한 요소인데도 말입니다.

 

두 번째 불편한 진실은 집계로 나온 숫자들입니다. 현재 서울 세나뚜스의 협조단원 수는 21만여 명(2017년 5월 기준)입니다. 과연 이 중에 협조단원이 매일 해야 하는 ‘뗏세라’ 기도문과 묵주기도 5단을 제대로 하고 있는 단원은 얼마나 될까요? 협조단원은 활동을 할 수 없어 기도로 함께하는 레지오 단원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행동단원보다 더 많은 의무기도가 있어 제대로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물론 제대로 열심히 해주시는 단원도 있겠지만 제대로 하고 계신 단원이 과연 이 정도로 많을까요?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협조단원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정작 제대로 하고 있는 숫자가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활동 못하는 레지오, 숫자에 매달려 근본을 잃어가는 레지오

 

우리는 협조단원 숫자의 많고 적음이 왜 레지오의 정체성을 왜곡시키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레지오 쁘레시디움의 숫자도, 활동단원의 숫자도, 활동의 횟수, 기도의 횟수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숫자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본에도 ‘레지오는 단원이 수행한 활동의 결과가 만족스럽다거나 혹은 밖으로 드러나는 성공의 정도가 크다거나 하는 것으로 그 단원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지 않도록 바라고 있다.’(교본 110쪽 27-30)”고 되어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거짓된 숫자에 매달려 근본적인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단 한 명, 단 한 번의 기도와 활동이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 숫자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마지막으로 세속화입니다.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의 순명을 본받아 이루어지는 신심단체입니다. 성모님의 순명은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을 받아들인 순명이 아니라, 처녀가 아이를 낳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신 순명이셨습니다.

 

이런 성모님의 순명을 본받아 살아가야할 단원들이 세속적인 생각으로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일반 평단원이 쁘레시디움 단장에게 대들고, 하급 평의회 간부가 상급 평의회 간부에게 대들고, 심지어는 영적지도자에게 공식적으로 대드는 경우까지 발생되고 있습니다.

 

레지오는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신심단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어놓는 개인의 성화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목적이 있는 단체입니다. 개인의 성화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다수의 의견이나 개인의 지식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단원이 있다면 레지오의 근본을 손상시키는 위험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의 겸손을, ‘자신이 하느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를 인정하고 솔직히 받아들이는 것만이 참된 겸손의 본질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 바로 그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교본 51쪽 16-19)를 배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존재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 레지오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성모님의 모범과 성령의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나아갈 수 없는 아무 가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잘하고 있다” 또 “우리 쁘레시디움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우리 레지오 전체의 불편한 진실,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레지오에게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루카 1,38)라고 하신 성모님의 겸손한 태도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바로 이 겸손이 우리를 이 불편한 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한국 교회에서 레지오는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불편한 진실과 대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 하나씩, 조금씩이라도 바꾸어나갈 때 진정 주님과 성모님의 훌륭한 도구로 쓰일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1,38)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9월호, 정영진 도미니꼬 신부(서울 Se. 전담사제, 월간 레지오 마리애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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