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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4: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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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8-12 ㅣ No.463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4)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


우주의 통치자이며 전능한 구세주의 모습

 

 

4세기 로마 코모딜라 카타콤바 천장에 그려진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 프레스코화.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에 교회를 세우고 성미술로 장식했습니다. 그들은 제단 앱스(돌출형 반원형 공간)와 천장을 모자이크화로 장식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그 도상은 주로 우주의 통치자로 하느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옥좌에 앉아 계신 전능하신 구세주의 모습을 새겨 놓았습니다. <본지 1422호 7월 9일 자 참조>

 

우주의 통치자인 영광의 그리스도는 단지 제단 모자이크화로만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이콘과 회화를 통해서도 최후의 심판 때 우리에게 오실 전능하신 구세주를 한결같이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도상을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라 부릅니다. 그리스도께서 옥좌에 앉아 계시는 모습뿐 아니라 복음서를 들고 있는 상반신의 모습, 또 얼굴 형상만 있는 모습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 따로 있으나 여기서는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라 통칭하겠습니다. 헬라어 ‘판토크라토르’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는 우리말로 ‘전능하신 그리스도’로 옮길 수 있겠습니다.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는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른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왼손으로 보석이 장식된 복음서를 왼 가슴 쪽에 들고 계십니다. 오른손으로는 강복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손 손가락 중 굽혀진 세 손가락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펴진 두 손가락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상징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늘과 땅의 결합’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 의미가 어떠하든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구세주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권능이 하늘에서부터 땅끝까지 펼쳐져 세상 모든 민족이 그 은총을 누리고 구원을 받을 것임을 드러내고 고백하는 성화라 하겠습니다.

 

- 6세기에 제작된 시나이 산 성 가타리나수도원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

 

 

이 도상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4세기 때부터 등장합니다. 제일 먼저 선종한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이나 석관에 이 성화가 장식되었습니다. 아마도 죽은 이가 최후의 심판 때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길 희망한 가족들의 염원이 이 성화에 담겨 있을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4세기쯤 조성된 로마의 코모딜라 카타콤바 천장 프레스코화입니다. 이전의 카타콤바 프레스코화에는 착한 목자를 상징하는 도상들이 많았는데 이 무덤에는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른 그리스도의 형상에 후광이 있으며 후광 좌우에 알파(Α)와 오메가(Ω)가 새겨져 있습니다. 

 

판토크라토르 형식은 그리스ㆍ로마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포세이돈, 플루토스의 이미지와 로마 황제의 초상에서 많이 빌려왔습니다. 그리스도의 권위와 존엄을 드러내기 위해 굳은 표정의 군림하는 모습의 로마 황제 초상처럼 그려졌습니다. 풍성한 머리카락과 수염에서 남성성의 충만함이 드러난다는 고대인들의 생각을 반영해 긴 머리에 수염이 난 얼굴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표현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콘이 이집트 시나이 산 성 가타리나수도원에 있는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와 그리스 테살로니키 오시오스 다비드 성당에 있는 ‘영광의 그리스도’입니다.

 

시나이 산 성 가타리나수도원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는 6세기쯤 그려진 성화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이콘입니다. ‘시나이 산의 예수 그리스도’ 또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이 이콘은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후원으로 제작된 성화입니다. 84x45.5㎝ 크기로 거의 등신대입니다. 그리스도의 얼굴 좌우가 심하게 비대칭이고 눈 주변의 살점이 두툼하고 상대를 응시하는 듯한 강력한 눈빛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수도복 차림을 하고 있지만 복원된 것이어서 원래 옷 모양새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이 도상의 기본 형태에 비추어 황제의 복식을 하지 않았나 조심스레 짐작할 뿐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 화풍의 대가인 벨리니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한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를 그렸다.

 

 

시나이 산의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처럼 초기에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젊은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8~9세기에는 원숙한 중년의 얼굴로 표현됩니다. 적지 않은 미술사학자와 도상학자들은 이 시기의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는 천주 성부와 성자를 동시에 연상시킨다고 해석합니다. 학자들은 그 이유로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요한 12,45)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성자를 통한 성부의 형상을 시각화한 판토크라토르 성화가 비잔틴 미술의 핵심이 되어 제단을 장식하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에 신학과 교회사 관점을 덧붙이면 325년에 개막한 니케아 공의회부터 870년에 폐막한 제4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까지 열린 8차례 세계 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믿을 교리와 신앙 고백 내용이 정리됨에 따라 성부의 천주성을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해 형상화할 만큼 성화의 내용도 성숙해진 것이라고 감히 표현해 봅니다. 

 

843년 성화상논쟁이 종식되면서 성미술은 전성기를 누립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도상의 표현 방법도 자유로워졌습니다.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의 형상도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모습으로 표현됐습니다. 그 대표적 특징은 위엄있는 권위적 모습을 벗고 수염이 없는 청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필사본 「밤베르크 묵시록」의 ‘최후의 심판’과 1030년에 제작된 「아드 그라두스의 기도서」의 ‘심판자 그리스도, 에제키엘서의 네 짐승과 예언자’ 그림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인본주의가 강조되는 르네상스 시대에는 더없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조반니 벨리니(1431?~1516)가 1460~1470년쯤에 그린 ‘강복하는 그리스도’가 대표적 작품입니다. 빛과 화려한 색채를 중시하는 베네치아 화풍의 대가인 벨리니의 이 작품에서 비잔틴 이콘에서 드러나는 신성의 위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벨리니보다 한 세대 앞선 인물인 플랑드르(현 네덜란드) 화파의 얀 반 에이크(1390?~1441) 형제가 1432년 그린 벨기에 겐트 성 바보대성당 제대화의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는 교황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교황의 삼중관을 머리에 쓰고 복음서 대신 십자가 왕홀을 쥐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기만 합니다. 아마도 이 제대화가 그려질 당시 유럽 교회에서는 교황의 수위권과 공의회 우위설이 한창 대립할 때여서 교황의 수위권을 지지하는 의미로 이러한 모습의 판토크라토르를 그리지 않았나 추정해 봅니다.

 

교황 수위권과 공의회 우위설이 한창 대립할 때인 15세기 중엽 반 에이크 형제는 교황의 모습으로 표현된 판토크라토르를 그렸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8월 13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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