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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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78: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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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25 ㅣ No.871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78)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⑪


‘영광의 찬미’, 성령의 손길 기다리는 조율된 악기

 

 

- ‘영광의 찬미’는 삶의 모든 순간을 통해 천상의 화음을 내고자 자신을 준비하는 가야금과 같다.

 

 

천상 목표를 향한 영적 여정

 

지난 호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영광의 찬미’라는 성녀 엘리사벳의 소명에는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이 다양하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임종하기 석 달 전에 쓴 「마지막 피정」 열넷째 날 36번에서 성녀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3장 14절에 나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통해 영광의 찬미에 대해 설명합니다. “나는 목표를 향해 곧바로 달려갑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를 부르시는 천상 소명의 상을 향해서.” 그리고 이 전망에서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장 11절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이승의 여정을 통해 이룩해야 하는 궁극적인 소명의 내용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자주 이 소명의 위대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앞에서 흠 없고 거룩하게 되도록 창조 이전에 그분 안에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는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예정되었는데, 이는 우리가 그분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순수하고 사심 없는 영혼

 

성녀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영광을 영원히 노래하는 ‘영광의 찬미’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자신의 다른 작품인 「믿음 안에서 천국」 43번에서 보다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로 “영광의 찬미는 하느님 안에 거하는 영혼이며 순수하고 사심 없는 사랑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이 사랑의 감미로움 안에서 자신을 찾지 않는 영혼”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영혼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하느님 안에 머물며 그분과 함께 자신의 삶을 나누고 그분께 빛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 그는 하느님께서 늘 자신 곁에 현존하시며 동반하시고 섭리적으로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빛으로 보고 해석하는 믿음의 눈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묻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상황을 보고 계시다면, 내게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런 영혼이 되려면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심(私心)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만의 이익, 자기 관심에만 몰두한 사람은 결코 아성(我城)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은, 그분이야말로 절대 진리이시라는 것, 그 앞에 선 우리는 허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고, 자신을 찾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심 없이 하느님을 사랑할 줄 알고 그 사랑으로 주위 사람들을 따뜻이 품어줄 줄도 압니다.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영혼입니다. 성녀는 계속 이 주제를 풀어가면서 ‘영광의 찬미’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 하느님의 뜻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영혼이라고 가르칩니다.

 

 

천상의 화음을 연주하는 가야금

 

두 번째로, 성녀는 ‘영광의 찬미’는 성령께서 신비롭게 연주하는 가야금처럼 침묵하는 영혼으로, 성령께서 그 가야금으로부터 신묘한 천상 화음들을 끌어내실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유순한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상의 삶에서 겪게 되는 많은 일들, 심지어 고통마저도 아름다운 천상의 화음을 연주하기 위한 ‘현’(絃)으로 성녀는 보았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늘 즐겁고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지루하고 힘겹고 슬프기도 합니다. 심지어 절망스러운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영혼은 그 모든 순간에 하느님께서 자신을 연주하실 수 있도록, 그래서 모든 순간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간이 되도록 자신을 그분의 연주에 온전히 맡겨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찬미’가 되려는 영혼은 기쁨, 슬픔, 고통, 절망 가운데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감사드림으로써 더욱 아름다운 화음을 내며 그분을 감동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예컨대, 성녀는 매년 겨울이면 동상에 걸려 손이 꽁꽁 얼어붙곤 했는데, 하느님께서 그런 자신을 엿보며 마음 아파하실까봐 자기 수방(修房)의 창문에 예쁜 커튼을 쳐서 가리곤 늘 미소 지으며 겨울을 났습니다.

 

 

하느님께 온전히 고정된 영혼

 

세 번째로, 성녀는 ‘영광의 찬미’는 믿음과 단순함 가운데 하느님께 온전히 고정된 영혼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영혼은 하느님을 온전히 반영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온전히 믿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투명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통해 이를 그대로 살아냄으로써 그분의 영광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은 마치 수정과 같아서 하느님은 이 수정을 통해 빛을 발하시고 당신의 모든 완전함과 광채를 관상하실 수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6년 12월 25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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