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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병원사목] 마지막 여정의 길벗 호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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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12 ㅣ No.966

[자비의 희년살이] 마지막 여정의 길벗 호스피스

 

 

‘호스피스’ 하면 죽음을 떠올린다. 천주교 신자들은 해마다 11월이 되면 죽음에 대하여 묵상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준비하지만 실제로 말기 암 진단을 받아 죽음이 가까이 오면 대부분 회피하려 하고 두려워한다.

 

지난해 췌장암 말기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던 70대 개신교 장로의 질문이 생각난다. “수녀님, 수녀님이나 저나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 나라가 좋다는 것도 아는데 왜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할까요?”

 

인간은 태어나서 결국은 죽음으로 향해 가고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목적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인데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할까?

 

오랫동안 죽음을 준비하는 말기환자들과 함께하면서 깨달은 경험으로 장로의 질문에 답했다. “사람들은 죽음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하는 육체적 고통과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혼자 가야하는 슬픔 그리고 내가 살아온 나날에 대한 후회, 하느님 나라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가보지 않은 데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요?”

 

 

평안한 죽음을 위하여

 

호스피스를 통하여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죽음 앞에서는 삶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는 통증을 비롯하여 소화기 증상, 호흡곤란, 소변장애, 욕창 등으로 고통을 받는다. 정신적으로는 죽음 앞에서 무력감과 절망감, 불안감을 느끼며, 사회적으로는 가족 간의 갈등과 경제적 문제 등으로 고통받는다.

 

특별히 영적으로는 죽음을 직접 실감할 때 그동안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던 신자로서의 신앙심마저 흔들리며, 삶과 죽음에 대해 묻게 된다. 이러한 고통과 질문에 대한 답을 환자와 가족 스스로 극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면 가능하다.

 

호스피스는 죽음 앞에서 총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와 가족을 사랑으로 돌봄으로써 육체적·정신적으로 평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호스피스 돌봄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 등이 한 팀이 되어 활동한다.

 

통증이 심해 잠을 자지 못하는 환자에게는 며칠 동안 집중적인 통증치료를 통해 편안히 잘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살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로 가족들과 소원해져 삶의 마지막 여정을 외롭게 보낸 이에게는 삶에 대한 회상과 참회를 통해 가족과 화해할 수 있도록 중재한다. 이처럼 진정한 가족의 사랑을 느끼며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다.

 

어린 자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나 어린 자녀를 두고 떠나야 하는 부모의 아픈 마음에 공감하며 그들을 위해서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여 부모와 그 가족과의 이별 여정에 함께한다.

 

또한 경제적인 부담으로 가족에게 더 이상 짐이 되기 싫다며 빨리 죽기를 바라는 환자에게는 후원회를 통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덜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누구나 겪어야 할 죽음이지만 아무도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두려워하는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갖고 마지막 순간을 평화롭게 맞도록 돕는다.

 

사랑하는 자녀와 배우자 그리고 부모를 떠나보내고 깊은 상실과 슬픔에 빠져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는 가족에게도 마음을 털어놓고 마음껏 울 수 있는 벗이 되어주기도 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모임에서 영적으로 영원히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아빠, 잊지 않았구나. 고마워

 

벌써 2년이 지났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임종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2014년 5월 어느 날, 일반 병동에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뒤 3일 만에 임종한 40대 중반의 췌장암 말기환자가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기에 환자의 이름과 얼굴이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마르고 통증과 식은땀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전형적인 말기 암 환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모든 것을 거부하고 집에 가기를 원했으나 의료진은 패혈증 상태로 위험하기에 집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에게 왜 집에 가기를 원하는지 물었다. 그에게는 다섯 살 늦둥이 아들과 어린이날에 함께 놀러가기로 약속했는데, 5월 4일 갑자기 입원하게 되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치료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주일에 외출하여 아들과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답즙 배액관 시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외출하면 캠핑카를 빌려 서울대공원 캠핑장에서 낚시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는 스무 살의 큰아들이 하나 더 있다. 나는 소중한 추억을 위해 그들의 선물을 준비하였다.

 

외출을 허락한 전날 아침, 그 환자는 밤사이에 급격하게 나빠져 임마누엘 방(임종실)으로 옮겨졌다. 둘째 아들은 휴게실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선물을 서둘러 포장한 뒤 그 아이를 아버지 곁으로 불렀다. “아빠랑 주일에 낚시하기로 했지. 그때 아빠가 주려고 준비하신 선물이야.”라며 선물을 전해주었다.

 

선물을 열어본 아들은 바로 조금 전 선종한 아빠에게 달려가 침대에 누워있는 아빠를 껴안고 “아빠, 잊지 않았구나. 고마워.”라고 외치며 엉엉 울었다. 어린 아들의 울음으로 그곳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조용히 아이에게 다가가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하늘나라에 가셔서 너를 더 많이 사랑하실 거니까 씩씩하게 자라야 해.”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울면서 “네.”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이 아이가 평생 이 시간을 기억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했다. 또 그렇게 살아가리라 믿는다.

 

 

따뜻한 돌봄이 필요하다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지만 호스피스를 통하여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힘으로 환자 자신과 가족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화해하며, 꽉 쥐고 있었던 욕심과 자만심을 벗어던지고 삶이 선물이었음을 깨닫고 감사하게 된다.

 

특히 호스피스 팀원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깊이 체험한다. 얼어붙었던 가슴이 따뜻한 사랑으로 녹아들고 치유되면서 새롭게 태어나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삶을 감사하며 하느님 나라(영원한 생명)를 체험하게 된다.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호스피스를 통한 따뜻한 돌봄이 필요하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굳건하게 믿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의 이동이라는 믿음은 저 너머의 희망을 갖고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다.

 

호스피스는 죽음에 직면한 말기환자와 그의 가족이 마음을 진정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도우미이며, 우리 모두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는 도구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죽는다. 모든 이가 자기 삶을 잘 마무리하여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의 돌봄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는 말기환자들이 너무 늦지 않게 호스피스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 라정란 헨리코 -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 가톨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 자격증을 받았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 의료센터 팀장과 한국 가톨릭 호스피스 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11월호, 글 · 사진 라정란 헨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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