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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티츠빈의 성모 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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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11 ㅣ No.1589

[은총의 성모] 티츠빈의 성모 이콘

 

 

티츠빈의 성모 이콘은 성모와 아기예수 모두 정면을 향하고 있는, 길의 인도자이신 성모(호데게트리아)의 변형 중 하나이다.

 

예수님의 얼굴은 정면으로 신자들을 향해 있지 않고 그의 어머니 왼쪽 팔위에 앉아 어머니를 향해 몸을 돌리고 계시며, 오른쪽 다리는 왼쪽 다리 밑에 포개어져 있는데 한 발은 발바닥을 보이고 있고, 나머지 한 발은 앞을 향해 뻗어 있다. 그리고 오른손은 축복의 자세를 취하고 있고 왼손에는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어 요한복음 1장 첫 머리에 나오는 ‘사람이 되신 말씀’, 곧 당신이 모든 말씀의 주인이심을 나타내 주고 있다.

 

성모님의 머리는 아기 예수께로 조금 숙여져 있다. 그러나 시선은 아기 예수가 아닌 우리를  응시하고 있으며, 타락한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당신의 아들 앞에서 중재하고 있는 자비로운 어머니를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전승에 따르면, 이 티츠빈의 성모 이콘은 복음사가 성 루가가 그린 이콘 중 한 개라고 전하며,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로에게 복음서와 함께 전달되었다고 하며, 이후 5세기경에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 블라케르내 성당에 안치되었었다고 한다.

 

 

138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사라진 티즈빈의 성모 이콘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의 손에 넘어가기 70년 전인 1383년 이 성모 이콘이 갑자기 콘스탄티노플에서 사라졌다. 16세기 초 러시아 필사본인 ‘티츠빈의 성모 이콘의 기적 이야기’에 따르면, 성모님께서는 비잔틴 제국의 임박한 몰락을 예견하시고 콘스탄티노플을 떠나시기로 결정했다고 전한다.

 

그 후 이 성화는 발트해 인근, 러시아의 노보고로드 대공의 영지인 라도가 호수에서 밝은 빛에 둘러싸여 호수 위에 기적적으로 떠있는 모습으로 어부들에게 목격되었다. 이후 이 성모 이콘은 티츠빈카 강기슭에 있는 모췌니치 마을을 포함하여, 여러 이웃 고을에서도 목격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티츠빈시 인근에서도 성모 이콘은 눈부신 빛에 둘러 싸여 나타났다.

 

이를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은 티츠빈카 강가 제방에 모여들어 이 이콘이 지상에 내려올 때까지 함께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곧이어 통나무를 잘라 이 이콘을 모실 성당을 세우기 시작하여 그날로 성당 벽이 될 세 면을 세웠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운 벽 주변과 그 근처에서 그 빛에 싸인 이콘을 발견할 수 없었고, 자신들이 성당 공사를 시작한 장소의 강 반대편에 그 이콘이 나타나 있음을 발견했다. 즉 성모님은 스스로 자신이 원하시는 장소를 알려주신 것이다. 이로 인해 강 건너 새로운 부지에 다시금 성당공사가 시작되어 성모승천 대축일에 새 성당은 축성 되었다.

 

7년 후 이 성당에 화재가 나서 전소되었지만 이 성모 이콘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고, 이후 새 성당이 세워졌지만 곧 다시 화재가 났고, 역시 이 성모 이콘은 다시금 기적적으로 손상 없이 살아남았다. 이후 바실 이바노비치 대공은 돌로 새로운 성당을 지었다. 그리고 1560년에는 이반 뇌제의 지시에 따라 이 성모 이콘 성당 부근 티츠빈카 강둑에 에 티츠빈의 성모 이콘의 거룩한 이름으로 남자 수도원이 세워 졌고, 돌로 된 성벽도 그 주위에 쌓았다.

 

1613-1614년 스웨덴이 러시아로 쳐들어 왔을 때 노브고로드 주변의 모든 지역이 점령되자 미하일 대공은 침략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티츠빈카 강둑에서 스웨덴 군인들과 교전을 했지만 스웨덴 군이 반격을 해오자 그 지역 사람들과 함께 티츠빈의 성모 수도원 경내로 피신했다. 스웨덴 군대가 수도원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 수도자들은 다른 곳으로 피신하기로 하고, 이 성모 이콘도 함께 가져가려고 했다. 그러나 성소에서 이 성모 이콘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에 수도자들은 이러한 표징은 성모님의 보호를 나타낸다고 생각하고 수도원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 대신에 이 이콘 앞에서 성모님께 자신들과 수도원의 보호를 청하며 간절히 기도를 바치며 수도원의 성벽 주위를 이 성모님 이콘을 모시고 행렬하며 기도를 바쳤다.

 

이때 성모님은 기적을 보여 주셨다. 수도원을 공격하던 스웨덴군은 수많은 러시아군인들이 갑자기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놀랍게도 대규모의 모스크바 군대가 수도원을 보호하기 위해 나타났던 것이다. 이에 스웨덴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완전히 혼란 상태에 빠져 달아났다.

 

 

성모 이콘 앞에서 기도하던 수많은 신자들이 치유의 기적 목격

 

이렇게 기적적으로 수도원은 보존되어 이 성모 성화는 기적을 일으키는 성화로 널리 전해지게 되었고, 이 성모 성화의 여러 사본들이 러시아 전역에 있는 성당들에 안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티츠빈의 성모 이콘 사본 중 하나는 모스크바로 옮겨져 크레믈린의 성모안식(승천) 대성당에도 안치되었다. 이러한 사본들 중의 일부에서도 기적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그 앞에서 기도하던 신자들은 아이들과 병든 이들의 치유를 수없이 목격했다.

 

이 성모 이콘 원화가 안치된 티츠빈 수도원에서는 매년 이 이콘을 모시고 행렬하는 이콘 거동 행사가 24차례 이상 거행되었다. 그 후 성모님의 전구를 통하여 기도의 응답을 받은 많은 신자들이 감사의 표시로 많은 보석과 장신구를 기증하여 그것으로 ‘리자’라고 불리는 장식 덮개를 만들어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의 얼굴과 손만 노출시킨 채 이 이콘에 부착 시켰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며 러시아정교회의 귀중한 성물과 수많은 이콘들은 파괴되거나 해외로 팔려나갔다. 이때 티츠빈 수도원도 볼셰비키에 의해 파괴되고 폐쇄되었지만 이 이콘은 그 수도원에 남아 있었다. 그 후 2차 세계 대전으로 티츠빈시가 히틀러의 군대에 의해 점령되자 그들은 이 성모 이콘을 자신들의 점령지인 프스코프를 거처 라트비아의 리가로 옮겼다. 그러나 이후 독일이 패하게 되면서 그들은 점령지에서 이 기적의 이콘을 가져 갈 수 없었다.

 

이에 당시 리가의 정교회 주교 요한 가르클라브스(Garklavs)는 거룩한 이콘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자신이 간직했다가 1949년 미국으로 가져갔다. 미국에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요한 주교는 정교회 시카고 교구의 대주교로 선출 되었다. 그리고 이콘을 시카고의 거룩한 삼위 일체 성당에 모셨다. 그렇지만 요한 대주교는 러시아가 그리스도교 신앙이 더 이상 핍박 받지 않는 나라가 되어 이 이콘이 되돌아 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 후 요한 대주교의 양자 세르게이 Garklavs 수석사제는 요한 대주교를 계승하여 55년 동안 이 이콘의 보호자가 되었다.

 

러시아에서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러시아정교회가 다시 일어서기 시작하자, 2003년 미국정교회 시노드는 티츠빈의 성모 이콘을 원래 고향인 러시아에 반환하기로 결정하였다. 2004년 6월23일 티츠빈의 성모 이콘은 러시아로 되돌아왔고, 1995년 교회에 반환되어 복원된 티츠빈 수도원의 성모안식(승천) 대성당에 장엄한 예식과 행렬 속에 2004년 7월9일 다시 안치되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11월호, 장긍선 예로니모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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