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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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마음이 가난한 것이 곧 거룩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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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5-03 ㅣ No.1426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마음이 가난한 것이 곧 거룩함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상이 난리입니다. 세계는 감염병이라는 난제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하늘 아래 모든 시대는 그 나름의 질문과 도전에 직면합니다. 지금의 시대가 가장 어려운 시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21세기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갈라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야기한 질문과 도전은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해, 종교와 신앙의 모습에 대해 다시 성찰해보기를 요청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혼돈의 시기가 지나면, 망각의 습관에 빠져, 우리는 여전히 예전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혼란의 시간이 가져온 강렬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물리적 거리(사회적 거리)라는 말이 조금 무섭습니다. 타자와의 밀접한 접촉이 우리 자신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개인화되고 고립화된 현대의 삶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얼마나 멀어질 것인지. 배타와 배제, 혐오와 분노의 논리가 우리 사회에 더 많이 성행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일시적이지만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중단되었습니다. 본당 공동체 안에서의 모든 활동마저도 중지되었습니다. 물론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공동체가 함께 미사를 할 수 있을 것이고 본당에서의 활동들이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체와 함께 하는 미사와 본당 활동의 일시적 중단 앞에서, 우리는 지난 신앙생활을 잠시 반성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 우리 신앙생활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본당 밖에서의 신앙생활에 대한 토대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미사와 본당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생활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전례 성사와 본당이라는 공간 중심의 신앙생활은 일상 안에서의 신앙생활과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말하면, 전례 성사로서의 미사와 삶의 성사로서의 미사는 늘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최후만찬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사의 은총을 통해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의 제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는 모든 신자들은 세상 안에서 자신의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사회적 삶 속에서 자신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성찰과 교육이 부족했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자기들이 선 자리에서 자율적이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에 교회가 소홀했음을 반성합니다.

전례와 본당을 중심으로 한 신앙생활은 지나치게 성직자 의존적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신자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신자들의 신앙 근육과 면역력을 키우는 데에 교회가 조금 더 관심을 가졌었더라면, 공동체 미사 중단과 본당 공동체 생활의 일시적인 중지라는 어려움의 시기를 조금은 더 쉽게 건너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닮는 방식은 행복 선언 안에 담겨있습니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단순히 미사와 본당 생활에만 충실한 것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미사의 은총을 통해, 공동체 생활이 주는 용기와 격려의 힘을 통해, 삶의 모든 자리에서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거룩함의 길입니다. 모든 신앙인은 “날마다 자신의 삶에서 스승님의 얼굴을 드러내도록 부름을 받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63항)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거룩해진다는 것이 무슨 특별한 종교적 행위를 통해 도달하는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일상의 성인임을 분명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 예수님을 닮는 것인지, 즉 어떤 모습이 거룩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예수님의 행복 선언에 비추어 하나의 제안을 하고 계십니다. “행복 선언은 그리스도인에게 신분증과” 같아서,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에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63항) “‘행복한’ 또는 ‘복된’이라는 말은 ‘거룩한’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64항)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복음 말씀은 “거룩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시적 감흥을 주지만, 이 세상의 통상적인 일처리 방식과 명확히 반대”되기 때문에 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65항)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세 가지 맥락에서 성찰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당연히 물질적 가난을 의미합니다. 물질적인 욕심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소박한 삶”(70항)을 사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16-21)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물질적 부가 우리의 생명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67항) 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 안에서는 돈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됩니다. 이 자본주의 시대에 물질적 자본은 핵심 요소입니다.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은 세상에서 물질적 가난과 소박한 삶을 말한다는 것이 공허한 외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를 뒤흔들고 자극하며 우리 삶에 참변화를 요구할 수 있도록”(66항)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수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끈질기게 노력해야 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끊임없이 구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박한 삶은, 우선 우리의 물질적 부를 향한 우리의 욕망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우리의 이기심과 나약함을 고백하면서 주님 은총의 힘을 구하는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의미는 겸손한 마음과 열린 마음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세속의 욕심과 욕망으로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우리 형제자매들을 향한 사랑을 담을 자리를, 또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누릴 자리를 남겨” 두는 일입니다.(68항) 물질적 부를 향한 탐욕, 자신만 성공하겠다는 공명심, 타인을 배제하고 배척하는 이기심, 기존의 생각과 규율에 사로잡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폐쇄적인 마음에 사로잡혀 있다면, 주님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가난한 마음에 끊임없이 새롭게”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68항)

 

세 번째 의미는 집착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치우치지 않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69항) 살아가면서 우리는 편파적이 되거나 그 어떤 것에 집착하기 쉽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이러한 집착과 편파적인 것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 단순히 기계적인 중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조물에 대해, 즉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것들, 즉 물질과 권력과 명예와 지위와 인정욕망 등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결국, 거룩한 사람이란 물질적 가난과 소박한 삶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겸손하고 열린 마음과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세속의 것들에 집착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집중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5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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