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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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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2-13 ㅣ No.1149

[알아볼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의미

 

 

2013년 봄,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하고 첫 부활절 미사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셨다. 그는 각별하게 한반도의 평화를 사랑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으며, 특별히 남북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표명해오고 있다.

 

그래서 세간에 잘 알려진 대로 지난 가을,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교황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관심이 많으니 김 위원장이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고, 이에 김 위원장은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습니다.”라고 적극적인 환대 의사를 밝혔다. 그 이후 문 대통령이 지난 10월 바티칸을 방문하여 프란치스코 교황과 독대를 하는 자리에서 교황을 북한에 초청하고자 하는 김 위원장의 의사를 밝힌 바 있고,이에 교황은 곧바로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갈 수 있다.”며 사실상 방북 요청을 수락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김정은 위원장이 교황청에 초청장을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역대 교황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성사되지 못했다. 과연 프란치스코 교황이 역대 교황 가운데 최초로 북한 땅을 밟을 수 있을지? 그리고 북한을 방문하게 된다면 그 의미는 무엇일지? 살펴보고자 한다.

 

 

평화의 사도로서 

 

가톨릭교회 역대 교황의 행보에서 볼 수 있듯이 교황은 분쟁이나 평화가 침해를 받는 곳을 방문하여 적극적으로 중재역할을 하면서 평화를 기원하고 지지하며 연대하는 평화의 사도이다. 특히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세 차례 폴란드를 방문하면서 민주화를 지지하였고 마침내 1989년 폴란드가 민주화를 이룬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 영향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이 통일을 이루었고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동구 공산정권이 무너졌다. 마침내 1991년 소련이 붕괴하였다.

 

그래서 소련 공산당정권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아니었다면 동구권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8년 쿠바를 방문하고 “쿠바는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세계는 쿠바를 향해 문을 열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쿠바와 미국이 관계를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2015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쿠바와 미국을 순방하시면서 국교 정상화를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 그는 평화의 사도로서 분쟁이 있는 곳은 어디라도 찾아 갔다. 특히 팔레스타인을 방문하셨을 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분리해 놓은 8m 높이의 분리장벽 앞에서 5분간 멈춰 서서 기도를 올리셨고, 또한 장기간 군부독재가 이어져 온 미얀마를 방문하시기도 하셨다. 그밖에 다양하게 종교간 일치를 위해서 노력을 하셨다.

 

특히 그는 어려운 일들을 직면하면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께 간청하시면서 기도를 하신다. 그래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세계인들이 모두 이 역사적인 만남에 귀 기울 때에도 그분은 “성모 마리아께서 북미정상회담을 인도하시기를!”하며 기도하셨다. 그에게 오랫동안 갈라져서 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있는 한반도는 특별한 곳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은 “평화의 사도”로 종교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서구 사회에서는 여전히 ‘북한이 핵을 포기 할 것인가?’라고 불신하고 있는데 교황의 방북이 이루어진다면 시각이 달라 질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그리고 미국도 북한에 대해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교황의 방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루어 평화를 앞당기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위로의 사도로서

 

교황청은 한국전쟁 이후 비록 북한 천주교회의 교계제도가 부재의 상태였지만 북한과 교류를 가지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1987년 평양에서 개최되는 비동맹각료특별회의에 제네바 유엔기구 교황청사절단 고문으로 있던 주세페 베르텔로 몬시뇰과 서울대교구 사목연구실장을 맡고 있던 장익 신부를 옵서버 자격으로 보내게 되었다. 교황청은 그 답례로 다음해 4월 부활대축일에 이진철 모이세와 홍도숙 데레사 두 명의 북한 교우들을 바티칸에 초대하였다. 그들은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에 참석하였는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직접 그들의 발을 씻겨 주었으며, 미사 후에 그들은 교황과 개인적으로 만남을 가지고 특별한 교황축복을 받았다. 그 사진은 오랫동안 장충성당 제의실에 걸려 있었다.

 

1988년 북한은 ‘조선천주교인협회(1999년 초 조선카톨릭교협회로 변경)’라는 천주교 단체를 결성하고 10월에 평양에 장충성당을 건립하였다. 신자들이 20만원을 모금하고 정부에서 10만원을 보조해 약 500평이 넘는 부지에 장충성당을 건립하였다. 1988년 10월31일 서울대교구 장익 신부와 로마에서 유학 중이던 정의철 신부가 교황 특사로 파견되어 장충성당에서 최초의 미사를 봉헌하였다. 장익 신부 일행은 미사 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북한 신자들에게 선물한 성작, 성합, 제의와 본인들이 준비한 전례서와 성가집을 전달했다.

 

현재 북한에는 공식적으로 약 3000명의 신자가 있고 평양 장충성당 신자들은 800명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북한 천주교 신자들은 매주 주일 10시 장충성당에서 공소회장이 주례하는 공소예절에 참여 하고 있으며, 이 예절에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외교관들이 참석하고 있다. 드물게 외부에서 사제나 주교가 장충성당을 방문하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북한 천주교신자들은 공소회장이 대리 세례를 주고 있으며, 1992년 일본 나고야교구의 소마 주교와 중국 주교회의 의장 종화이더 주교가 장충성당을 방문해 견진성사를 주었다. 그리고 이기헌 주교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평화의 길’이라는 책에서 2015년 12월 한국주교회의 민화위특별회원회 주교 5명과 사제 4명, 주교회의 실무진을 포함하여 17명이 장충성당을 방문하였는데, “주교단은 장충성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대리 세례를 완성하는 도유와 안수 예식을 하면서 보례예식을 거행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북쪽에 남아있던 약 4만 여명의 신자들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없이 65년이 넘는 동안 힘들고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한국전쟁 시 많은 성직자들, 수도자들, 신자들을 잃었는데 우리의 무관심 속에 4만 여명을 소외 시키면서 더 많은 피해를 낳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보편교회와 단절되어 고아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천주교회에서 발행한 교리서에는 “교우들은 천주께 어린양들을 위하여 하루 빨리 훌륭한 사제를 보내주시기를 간절히 빌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기다리면서 고령화되어 가고 있으며 많은 이들은 이미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은 북한 신자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전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2월호, 김연수 스테파노 신부(예수회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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