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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23: 원죄 없으신 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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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19 ㅣ No.605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23) 원죄 없으신 성모님

요한 세례자와 안나 성녀 등장시켜 성모님의 ‘원죄 없으심’ 표현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암굴의 성모’, 패널유화, 1483~1486년께, 파리 루브르박물관, 프랑스.

 

 

중세에는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대중화되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잉태되셨다’는 이 대중 신심에 관해 당대 신학자들 사이에서 찬반 논란이 심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근거를 성경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베르나르도,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투라 등과 같은 저명한 신학자들도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14세기 프란치스코회 신학자인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는 아담의 후손으로 원죄에 물들어야 하지만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공로를 미리 앞당겨서 마리아를 원죄로부터 보호해 주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로 인해 그리스도의 구원 중재 능력이 더 완전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신학 논쟁에도 불구하고 중세 교회는 11세기부터 12월 8일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을 지냈습니다. 원죄 없으신 성모께서 죄에 물든 자신들을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 전구해 주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염원의 간절함이 성미술 도상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아직 믿을 교리로 선포되지 않은 ‘원죄 없으신 성모님’을 표현하기에 이른 것이죠.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성모자 곁에 성모님의 어머니이신 안나 성녀와 요한 세례자를 등장시켜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표현하였답니다. 이번 호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원죄 없으신 성모’를 표현한 작품을 소개하려 합니다. 바로 ‘암굴의 성모’와 ‘안나 성녀와 성모자’ 입니다.

 

 

암굴의 성모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암굴의 성모’를 제목으로 두 작품을 남깁니다. 1483~1486년께와 1495~1507년께 그린 것들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성모 마리아와 가브리엘 천사의 인도로 어린 요한 세례자를 만나시는 장면입니다. 레오나르도는 두 작품 모두를 원근법과 인체 비례법, 빛의 농담, 황금 비율로 그렸을 뿐 아니라 자신이 개발한 ‘스푸마토’ 화법을 적용해 완벽한 작품으로 남깁니다. 스푸마토(Sfumato)는 ‘연기’라는 뜻으로 그림의 윤곽선을 마치 안개처럼 부드러운 음영으로 처리하는 화법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스푸마토 화법을 1482~1500년 사이에 밀라노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이 시기 작품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 바로 ‘암굴의 성모’입니다.

 

신비한 황혼녘의 바위굴을 배경으로 4명이 등장합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요한 세례자와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성모님을 중심으로 그림 왼편에 어린 요한 세례자, 오른편에 아기 예수와 가브리엘 천사가 삼각 구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안나 성녀와 성모자’, ‘동방박사의 경배’ 등 여러 작품에 즐겨 쓰던 구도입니다.

 

성모님과 요한 세례자, 그리고 예수님과 가브리엘 천사가 서로 한 무리가 되어 마주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과 요한 세례자는 인성을 지닌 존재이며 아기 예수와 천사는 신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푸른 망토를, 가브리엘 천사는 붉은 망토를 걸치고 있습니다. 또 아기 예수께 쏟아져내리는 빛이 그분이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왼손을 들어 요한 세례자에게 아기 예수를 소개합니다. 이에 성모님의 오른팔에 감싸 안긴 어린 요한은 아기 예수께 두 손을 모으고 경배합니다. 예수님은 오른손을 들어 요한을 축복하며 답하십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이 그림을 감상하는 우리를 바라보며 오른 손가락으로 요한 세례자를 가리키며 그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안나 성녀와 요한 세례자와 함께 있는 성모자’, 소묘, 1501~1507년께, 런던 내셔널갤러리, 영국.

 

 

바로 이 장면이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세주의 선구자인 요한 세례자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태어났듯이 구세주의 어머니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원죄에 물들지 않고 태어나실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성모님의 얼굴은 1495~1497년께 그린 ‘최후의 만찬’ 작품의 요한 사도 얼굴과 흡사합니다. 또 가브리엘 천사는 눈물을 머금고 있습니다. 십자가 수난을 당하실 아기 예수의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죠.

 

레오나르도의 두 번째 ‘암굴의 성모’는 이전 작품보다 더 종교적입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요한 세례자의 머리에 후광이 그려져 있고, 어린 요한은 십자가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 가브리엘 천사는 더는 눈물을 보이지도 않고 요한을 가리키지도 않으며 담당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안나 성녀와 성모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510년 ‘안나 성녀와 성모자’ 작품을 피렌체에서 그렸습니다. 또 이 그림의 밑그림으로 보고 있는 소묘를 1501~1507년께 남깁니다. ‘안나 성녀와 요한 세례자와 함께 있는 성모자’라고도 불리는 소묘는 목탄과 흑백 분필로 그려졌습니다. 제목처럼 어린 요한 세례자가 등장해 미술사학자들 사이에서 1510년 ‘안나 성녀와 성모자’의 밑그림이 아니라 별개 작품이라는 논란도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안고 어머니인 안나 성녀의 무릎 위에 앉아 계십니다. 3대가 한 핏줄로, 한 뿌리로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안나 성녀가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를 잉태하셨고, 원죄에 물들지 않은 마리아께서 평생 동정의 몸으로 구세주를 낳으셨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안나 성녀와 함께 있는 성모자 도상은 ‘원죄 없으신 성모’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안나 성녀와 성모자’, 1510년, 패널유화, 파리 루브르박물관, 프랑스.

 

 

아기 예수께서는 요한 세례자에게 축복하고 있으며 안나 성녀는 왼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이 축복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510년께 그려진 작품에서 안나 성녀와 성모님께서 머금은 미소는 마치 모나리자의 미소를 보는 듯합니다. 배경도 비슷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청순한 얼굴과 우아한 미소는 평생 동정녀이시며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당신의 품위와 존엄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를 감싸 안고 있는 두 손은 성모님의 자애로운 모성을 표현합니다. 아기 예수는 새끼 양과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평화로운 장면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양은 ‘속죄의 희생 제물’을 상징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암시하고 있죠.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본능으로 아들에게 닥칠 운명을 직감하고 이를 막아내려고 허리를 숙여 아기 예수를 감싸 안고 양에서 떼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슬픔과 체념 가득한 성모님 눈빛이 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그러나 안나 성녀는 딸의 이러한 행동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습니다. 딸과 외손자에게 닥칠 수난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처럼 3대의 성가족의 단란함을 보여주면서 이 평화로움 속에 내재된 주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구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처럼 15세기 후반 르네상스 화가들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어린 요한 세례자와 안나 성녀를 표징으로 고백하였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월 20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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