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8-09-16.....연중 제24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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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9-15 ㅣ No.2267

연중 제24주일 (나해)

이사야 50,5-9ㄱ         야고보 2,14-18        마르코 8,27-35

2018. 9. 16. (주일).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뜻을 해석하는 인간의 자세

사람은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일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만나는 일들에 대하여 개인적인 판단이나 행동에 일정한 규범은 있겠지만, 다른 사람이 내가 하는 행동에서 일정한 규칙을 찾고 올바르게 해석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규칙을 어김이 없이 지키며 사는 존재도 아니기에 그 해석이 쉽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 행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나름대로 일정한 원칙을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 내용을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익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규정을 이렇게 하면,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상당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겨도 실제로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지난 주간 목요일의 아침 뉴스시간에 들은 얘기입니다만, 해마다 그랬고 올해로 19년 연속, 19번째라고 했습니다만, 전주시에 있는 어느 주민센터에 10Kg짜리 쌀이 수백포대와 라면이 배달됐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처음 시작한 어른은 세상을 떠나셨는데, 이제는 그 어른의 후손들이 여전히 이름을 밝히지 않는 청원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이라고 헸습니다.

 

두 번째로 사람은 자기 목숨의 중요성을 최고로 생각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집값과 월세가 올라서 오로지 나만 귀중한 존재이고, 다른 사람에게서 더 받아 내가 가져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모든 것을 투신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상대적인 얘기와 자기 목숨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 있다는 소식은 내 목숨만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생각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알게 합니다.

 

내가 나를 알고, 내가 다른 상대방을 아는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 모습이 어떤지 아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앞에서 내가 어깨를 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주고, 내가 상대방을 잘 안다는 얘기는 적어도 다른 사람의 거짓에 내가 속지 않을 지혜의 바탕이 된다고 하겠습니다만, 이런 차원이 아니라면, 내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향해서라도 좋은 일을 하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던 길에서, ‘다른 사람들과 제자들은 당신,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지물으셨습니다. 왜 물으셨을까요? 예수님은 그들의 대답에서 어떤 것을 바라셨을까요? 우리 가운데에 예수님이 계시지는 않으니, 예수님의 의도를 우리가 물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런 질문에 어떤 의도를 말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대답에서 만족하셨을 거라고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가 대답한 말에 칭찬을 하시지는 않고, 오히려 다음 순간에는 그 대답을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세상의 우리가 사는 방식과 달라도 한참 다른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라면, 예수님과 비슷하게 행동할까요?

 

만족할(!) 대답을 얻으셨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는 다음 순간에, 예수님은 세상을 향해서 당신이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그 알의 의미는 무엇인지 뜻을 밝히십니다.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한 다음에, 예수님은 어찌하여 그에게 청천벽력(靑天霹靂)과도 같은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 역시 말씀의 본뜻을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말씀에 부정적으로 도전(!)하는 베드로에게 이전 순간에 했던 말에 수긍했던 것과는 다르게 혼쭐내십니다. 베드로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실천하면, 좋다고 하겠지만, 그런 바람이 항상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하는 말과 대답이 언제나 하느님의 뜻에 꼭 맞는 것이기를 우리가 바랄 수는 있겠지만, 그 대답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황스럽고 놀라운 일입니다.

 

삶의 지식은 행동과 결합돼야 합니다, 야고보사도가 쓴 편지에 나오는 내용을 이해한다면, 믿음과 실천은 한 길로 가야합니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면서, 아는 일은 올바른 것이었으니, 행동이 비록 잘못됐더라도 너그러이 나를 이해하시라고 하느님께 요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대답을 들으면 만족하겠습니까? 하느님은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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