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8-07-08.....연중 제14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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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7-06 ㅣ No.2252

연중 제14주일 (나해)

에제키엘 2,2-5          2코린토 12,7-10         마르코 6,1-6

2018. 7. 8. 이태원.

주제 : 세상의 삶을 대하는 자세

사람의 삶에 들려오는 소리의 종류는 많습니다. 그 내용을 구별하면, 내 마음에 드는 소리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로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소리는 내가 좋아하고 기대하던 내용일 테니,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일입니다. 이와는 달리 문제라고 한다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를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를 나더러 들으라고 누군가가 옆에서 말한다고 해서, 곧바로 내 감정을 드러내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단세포동물이나 인내력이 없는 동물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이기에 더 그러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라면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맞춰 즉시 반응하지 말고, 한 단계를 늦추어서 반응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내가 늦게 반응하고 늦게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당연히 나에게 좋은 결과로 다가와야 만족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선포를 시작하실 때, 당신의 고향이었던, 갈릴래아의 나자렛에서 예수님은 특별하고도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고향동네에 살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모습과 행동 또 가족에 관련된 여러 가지 사정을 잘 알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좋게 판단하지 않았고, 좋게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마도 네가 이 동네에서 자라며 한 행동을 다 알아서 하는 소리인데, 네가 하는 일은 우리를 놀라게 할 만한 새로운 내용은 아무것도 없어!’ 하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이런 데서 생깁니다.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이 듣고 판단한 일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이 진리에 얼마나 가까운지 보장은 없는 것인데, 사람은 자신이 세운 삶의 기준을 거의 맹신(盲信)에 가까울 만큼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가 하는 행동이 세상의 변화에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보통 그렇게 경직되게 생각하고 그 기준에 따라 움직입니다. 우리가 하는 이 주장은 얼마나 옳겠습니까?

 

질투로 가득 찬 사람의 소리를 들은 예수님께서는 아무 기적도 일으킬 수 없었다고 마르코복음사가는 기록합니다. 이 상황에서 더 이상 기적을 베풀지 않으신 예수님을 얼마나 탓하겠습니까? 우리라면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행동하든지 그들을 위해서 좋고도 좋은 결과가 생길 행동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시대와 상황이 다르니, 우리가 하는 생각과 행동이 예수님이 하신 것과 다를 수는 있습니다만, 어떤 일이 구체적으로 다르겠습니까?

 

에제키엘예언자가 파견되어 하느님의 뜻을 말한 곳은 유대인들이 처음에 살던 고향이 아니라, 유배로 붙잡혀 간 바빌론이었습니다. 유배생활에 빠졌던 사람들이 가졌을 희망이나 간절한 바람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들과 다른 시대에 사는 우리는 여러 가지로 상상할 수 있습니다만, 시간의 간격이 워낙 커서, 그들이 가졌을 마음을 상상할 재간은 없습니다. 우리의 처지에서는 에제키엘예언자의 선포를 들었던 사람들의 마음과 상황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2600년 가까운 시간의 차이가 있는 그들의 사정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에게 선포됐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어떻게 사는 사람들이냐는 것입니다.

 

에제키엘예언자는 유배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삶의 태도를 고쳐 현실을 변화하고 희망을 갖기를 외쳤겠지만, 예언자의 그 소리를 참된 희망으로 알아들은 사람은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사람은 듣는 소리와 그 소리를 해석하는 자세에 따라서 삶의 행동을 다르게 합니다. 어떤 것이 옳거나 그르다는 얘기는 이 자리에서 의미는 없는 일입니다.

 

세상의 삶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서 겪어야만 지나가는 일들을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삶에는 누구에게나 고통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서 사람은 행동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살면서, 우리의 삶에 찾아온 그 다양한 일들을 어떻게 해석하는 사람이겠습니까?

 

무더워지는 여름, 습도가 높아지면 감정을 드러내기가 쉽겠지만, 올바른 삶의 자세를 생각하고 드러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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