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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예수회 회원들의 생애와 영성: 칼 라너 (3) 하느님과 인간 관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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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04 ㅣ No.1105

[예수회 회원들의 생애와 영성] 칼 라너 (3) 하느님과 인간 관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 제기

 

 

칼 라너(가운데)와 제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오른쪽). 가톨릭평화신문 DB.

 


특수 연학 

 

칼 라너는 사제품을 받은 후 다양한 사목적 활동을 하게 된다. 이 사목 활동은 특히 방학 동안 더욱 집중되었다. 그는 1933년 7월 1일 신학 공부를 마치고 그해 가을 제3 수련에 들어간다. 제3 수련을 끝낸 후 그는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시작한다. 그는 예수회 동료인 요한네스 밥티스트 로츠(Johannes Baptist Lotz, 1903~1992)와 함께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세미나를 수강하는 기회를 얻기도 하였다. 당시 저명한 철학자였던 하이데거의 강의나 세미나는 아무나 참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하이데거의 철학적 개념을 수용한다.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과 같은 실존주(實存疇) 개념을 수용함으로써 인간 실존의 수행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즉 인간이 먼저 존재하기에 그다음 인간의 특정한 실존 구조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구조들은 실존주로서 ‘세계 내 존재’(In-der-Welt-Sein), 불안(die Sorge), 두려움(Angst) 등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개념들은 인간을 단지 추상적으로 고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게 한다. 라너에게 중요한 것은 추상적인 개념적 인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존하면서 자신의 제한성을 넘어서려는 인간이었다. 

 

라너는 하이데거의 개념들을 수용하였지만, 박사 학위 논문 지도는 마틴 호네커(Martin Honecker, 1888~1941)에게 받았다. 그의 지도교수는 철학 교수이자 신학 교수로서 하이데거에게서 국가사회주의적인 정서와 반 가톨릭적 정서를 통찰하고 있었다. 

 

1936년 라너의 박사 학위 논문은 거부되었다. 그의 학위 논문 주제는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유한적 인식의 형이상학 - 칸트, 마레샬, 하이데거의 개념을 이용한 해석’이었다. 그의 학위 논문이 거부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그가 하이데거의 표현에 너무 의존하였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의 동료인 로츠에 의하면 지도교수가 라너에게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역사적으로 서술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라너의 학위 논문에서 그의 요구가 실현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또, 지도교수는 하이데거적인 해석에 반대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논문이 통과되지 않았지만 라너의 반응은 너무나도 간결했다. 그는 속으로 “이 양반이 제정신인가?” 하고 생각했다. 

 

논문 탈락이 그에게 큰 정신적 상처를 주지는 않았다. 탈락한 라너의 논문은 1939년 「세계 내 정신(Geist in Welt)」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고 1957년 제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Johann Baptist Metz)가 이를 재편집해 새롭게 펴냈다. 1970년 인스브루크대학에서 라너는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음으로써 이 문제는 일단락됐다. 

 

라너의 철학박사 학위 논문이 거부되자 그의 철학적 경력은 끝났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교의신학 교수가 급히 필요하게 된 상황이 생겼다. 라너가 신학박사 학위를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라너는 1936년 7월 15일 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이 논문은 이미 그가 발켄부르그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작성하였던 소논문들을 취합하여 발전시킨 것들이었다. 논문 제목은 ‘그리스도의 늑방으로부터.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의 늑방에서 나온 두 번째 하와로서의 교회. 요한복음 19장 34절의 예형론적 의미에 대한 고찰’이었다. 이 논문은 총 4장으로 이루어졌고 136쪽에 이른다. 

 

라너는 1936년 12월 19일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듬해인 1937년 7월 1일 교수 임용 자격을 취득한다. 같은 해 여름, 그는 제7회 잘츠부르크 대학 주간에서 15시간 특강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강의의 주제는 ‘종교철학의 기초’였는데 이 강의를 발판으로 나중에 「말씀의 청자」라는 책이 출판된다. 라너는 인스브루크대학에서 1937년 가을 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한다. 그의 첫 강의는 은총론(De gratia)이었다.

 

 

말씀의 청자

 

라너는 잘츠부르크에서 한 특강을 발판으로 1941년 「말씀의 청자」라는 책을 쾨젤 출판사(Ksel Verlag)에서 출판한다. 이 책은 총 229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라너는 이 책에서 종교철학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즉 하느님의 계시에 대하여 인간이 긍정적으로 개방되어 있는지 그는 질문한다. 이를 출발점으로 해서 그는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고찰한다. 인간은 세계 내에 있는 정신이기에 가급적 많은 현상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럴수록 인간 정신의 목표인 존재 그 자체가 그 안에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그 존재는 숨겨진 존재로 드러날 수도 있다.

 

인간의 역사는 하느님이 말씀하는 장소이다. 따라서 인간은 시공간의 한계를 통해 자신의 가장 내적인 본질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 즉 자기 계시에 순종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바로 인간 본연의 존재를 실현한다. 인간은 자신의 정신성을 감수하는 존재자이다. 이 존재자는 자유로운 하느님 앞에서 자유를 실현하면서 하느님의 계시 앞에 서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역사를 통해서 말씀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역사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하느님의 자기 계시, 즉 자유로운 말씀의 사건 앞에 서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그 말씀에 의해 자신을 실현하도록 촉구받고 도전받는 존재다. 「말씀의 청자」는 제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에 의해 새롭게 편집되고 일부 내용이 변경됐다. 특히 계시 개념과 초월 경험에 대해 개념적 보완이 이뤄진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2월 4일, 이규성 신부(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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