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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프란치스코 영성의 중심이 되는 그리스도 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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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06 ㅣ No.1037

프란치스코 영성의 중심이 되는 그리스도 중심주의

 

 

그리스도 중심주의는 성 베르나르도 이후 알려진 중세 영성의 특징이다. 그의 가르침에 따르면, 교회의 교리와 성사 및 전례 생활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르고자 했던 성 프란치스코의 이상은 성 베르나르도의 그리스도 중심주의에 기초한 사랑이신 하느님 체험에 있다.

 

 

사랑이신 하느님

 

회개 생활을 시작하기 전, 프란치스코는 부모로부터 받은 신앙 안에서 피상적으로나마 하느님을 알고 있었으나,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이후로 그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 하느님께 사로잡힌 사람이 되어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어려운 길을 감미로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이는 단지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에 대해서, 하느님은 존재하시며, 만물의 근원이시라는 추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초기 프란치스칸 사료들이 그토록 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바는 바로 프란치스코가 사랑하올 아버지로서의 인격적이고도 생생한 하느님 체험을 누렸다는 것이다.

 

그는 회개 이후 하느님의 무한하신 선성에 완전히 매혹되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1요한 4, 17), 그 사랑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사랑으로 구원하시고 영광을 주신다. “하느님의 사랑”이야말로 성인을 또다른 그리스도(Alter Christus)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성인의 생각과 행위 전부는 바로 이 사랑에 대한 응답에 바탕을 두었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 성인의 전기를 남긴 토마스 첼라노 형제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참으로 복되신 사부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항상 용감한 행동에 뛰어들려 하였고,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 계명 길을 달렸으며, 완덕의 절정에 이르기를 열망하였다.”(1첼라노 55)

 

따라서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 분위기, 영성의 특징, 형제회의 첫째가는 법은 사랑이고 형제들이 세상에 전해야 할 근본적인 메시지도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이다. 마음을 깨끗이 하여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는 신심의 핵심은 바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모든 선을 내려주시는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게 한다.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을 바치시는 분이 여러분 전부를 받으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것 그 아무것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남겨두지 마십시오.”(형제회에 보낸 편지 26-29)

 

이토록 하느님의 사랑에 매료되었던 프란치스코는 무엇을 강조하고자 할 때 “사랑이신 하느님 앞에서”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1회칙 17,5;22,26) 특히 성인이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빌려서 말할 때, 하느님에의 사랑이 확연히 드러난다.

 

성인이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인간의 모든 지성을 초월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기쁨과 순수하기만 한 열락에 도취되어 마치 딴 세상에서 온 사람 같았다.(1첼라노 82) 또한 성인은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준다.(권고 9,3;1 회칙 16,11;23,3-6)

 

프란치스코는 사랑의 초대에 민감하였다. “그는 대화에서 일상 쓰는 말에 어쩌다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마음 속에서 어떤 변화를 느끼지 않고 들어 본 적이 결코 없었다.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는 마치 밖에서 말하는 사람의 소리의 채가 마음 안에 있는 현을 긁은 듯이 곧 자극을 받아 꿈틀거렸으며 불이 붙었다.

 

…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신 그분의 사랑을 한없이 사랑해야 합니다.’(2첼라노 196)하고 말하곤 하였다.” 이와 같은 사랑의 열정은 그의 신심의 모태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 마리아에 대한 신심, 인간들에 대한 친밀감, 그리고 창조물에 대한 그의 형제적 태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

 

프란치스코의 사랑이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지만 그것이 결코 정적인 성체에 머문 것은 아니다. 그는 예수를 알아뵈온 것이 곧 그분의 아버지, 성부를 뵈온 것임을 자각하고(요한 14, 8),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그리스도께, 그것도 영광과 엄위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 예수 그리고 그분의 수난과 강생, 성체 속에 계시면서 드러내신 그분의 인격적 사랑에 집중되었다.

 

성인은 복음을 묵상할수록 복음 메시지의 핵심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의 신비(kenosis) 안에서 발견하였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께서 육화의 선물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특은을 받으셨기에 성인은 성자의 육화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또한 성모 마리아께 드렸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그리스도의 모친께 대한 깊은 사랑이 되어 흐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또한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음과 같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거룩한 당신의 사랑 때문에, 참 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그분을 영원히 영화로우시고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이시며 거룩하신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사오며, 그분의 십자가와 피와 죽음을 통하여 사로잡힌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셨사오니, 아버지께 감사드리나이다.”(1회칙 23,3)

 

스뽈레토에서의 환시이후 불안한 탐구의 시절을 보내고 있던 프란치스코는 우연히 마주친 나환자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2첼라노 9) 이러한 체험 이후 성인은 복음을 묵상할수록 복음 메시지의 핵심을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비하(kenosis)의 신비 안에서 발견하였다. 성부께로부터 받으신 사명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형제가 되시고 인간의 신분을 취하시며, 당신 자신을 버리고 비우신 그 비하를 말한다.

 

육화의 신비야말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체험할 수 있는 길이기에 성인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성부의 선물로 여겨 감사했으며 운명하기 3년 전(1223년) 그렉치오 동굴 속에서 강생의 신비를 재현하였다. 이에 대해 첼라노는 “프란치스코의 가장 높은 지향과 주된 바람과 최고의 결심은 복음을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통하여 실행하는 것이었고, 온전한 정신과 온전한 마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발자취를 따르는 것’(1회칙 1,1)으로 증언하였다.

 

성인은 끊임없는 묵상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새겼고, 예리한 사고력으로 그리스도의 행적을 되새겼다.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이 특히 그를 사로잡았으므로 그는 다른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1첼라노 84)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한 걸음 한 걸음은 성인에게 그분을 더 가깝게 따르고, 모방하게 하는 초대였다. 성인은 자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성인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강생에서 시작되어 수난으로 완성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대하여 가장 놀라워한 것은 주님의 고통과 수난에서였다. 수난을 통하여 당신 아들을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까지 낮추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자 성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 있어서 당해야 하는 고통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성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지식 이상의 것이었다. “나는 묵상을 하고 마음에 되새겨 보기에 충분할 만큼 이미 성경의 많은 부분을 나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아들이여, 나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불쌍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다.”(2첼라노 105)

 

또한 성인은 주님의 수난의 신비를 묵상하다가 자주 우셨다는 기록(2첼라노 11)이 있을 만큼 수난의 기억이 마음속 깊이 박혀,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갈라 6,14)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십자가에서 수난 하신 그리스도는 그분 삶의 중심에 초연히 자리 잡고 있었다. 십자가는 그에게 자기 비하를 말해주고 있었으며, 자기 포기와 내적 가난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구세주의 오상 속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1첼라노 71)

 

이리하여 성인의 생활은 점차 십자가의 크고 심오한 신비 안에 완성되었다. 1224년 9월 17일, 성인의 무아경 중에 그의 손, 발, 옆구리에 나타난 오상은 이미 내적으로 마음에 형성된 상태의 외적 표시일 뿐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도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에 매료되어 그리스도 중심적인 삶을 산 성인에 대해 교황 비오 11세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모상과 복음적 생활의 이상을 실천한 사람들 가운데 아직 프란치스코보다 충실하고 엄격하게 실행에 옮긴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분은 ‘위대한 임금님의 사자’라고 자신을 불렀으며 또다른 그리스도(Alter Christus)처럼 사셨다. 그분은 오늘날에도 만인의 눈앞에 살아 계시며, 그분은 단지 그 시대 뿐 아니라 그 후대까지도 마치 새로이 탄생하신 그리스도처럼 등장하였다.”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심을 시작한 사람은 성 프란치스코가 아니다. 그 이전에 성 베르나르도와 성 빅토르 학파의 학자들은 신비적인 체험 안에서 이러한 관점을 저술하였으나, 성 프란치스코와 함께 인격적 주관주의가 강하게 발생하자 모든 일에서 자아를 주장하는 당대의 사회는 새로운 종교적 열정으로 그 사상을 받아들였다.

 

모든 형태의 완덕의 목적이 그리스도와 일치되는 것이라면, 이것은 얼핏 정반대로 보이는 다음 두 가지 생활 형태의 통합으로 성취될 것이다. 첫째 모든 것을 버리고 은둔의 고요함 속에 생활하는 형태, 둘째 사도직의 생활 형태인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본 사도는 그 사랑의 힘으로 세상에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랑의 풍요와 힘을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성 프란치스코가 본 그리스도는 신학적이며 또한 신비의 그리스도이시며, 묵상과 신비적 체험을 통해 그분을 알게 된다. 십자가는 그에게 비하를 말해 주고 있었으며 자기 포기와 내적 가난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난에 대한 성인의 묵상은 단지 동정심으로 움직여지는 주관적 묵상은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가져다주는 생명의 은총에 감사한 성인은 기쁨에 넘친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구원의 신비에 관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신학적 사상을 보면 종말론적 요소도 충분히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은 강생과 수난의 은총에 대해 지극히 높으신 성부께 감사드린 다음, 구원사업의 마지막 은총인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도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 김성학 사무엘 -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성모기사회 미주 지역 담당.

 

[성모기사, 2017년 1월호, 김성학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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