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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모든 이를 위한 경제, E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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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25 ㅣ No.1388

[2017 새로봄] '모든 이를 위한 경제', EoC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신학생들에게 사회교리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필자가 신학생이었을 때는 사회교리가 신학교 교과 과목이 아니었기 때문에(1988년에서야 신학교에서 사회교리를 가르치라는 교황청 훈령이 발표되었다), 새롭게 사회교리를 배워서 학생들을 가르쳐야만 했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복음화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사제로서 늘 품고 살았지만, 사회교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 고민은 조금 더 구체화되었다.

 

‘왜 세상에는 빈부격차가 있을까’ 부유한 이든, 가난한 이든, 모두가 하느님께서 당신 모상(Imago Dei)대로 창조하신 존엄한 인간인데, 소수의 부자는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수많은 가난한 이들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런 고민과 안타까움 가운데,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부의 불균형 문제의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모든 이를 위한 경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경제적 신자유주의’에서 ‘모든 이를 위한 경제’로

 

경제적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이것은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본을 획득하는 것이 가장 궁극적인 목표인 경제정책이다. 이윤 창출을 위한 무한 경쟁은 더 커질 수밖에 없고, 그 가운데 개인 간의 빈부격차는 물론이고, 지역 간, 계층 간, 국가 간의 빈부격차도 매우 심각해진다.

 

물론,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경쟁력을 키우도록 개인과 국가를 자극하여 좀 더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경제적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경쟁력이 있는 이들에게만 유리한 것이다. 경쟁력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 인간 존엄성마저 상실하게 되고, 실업과빈부 격차의 확대로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성까지도 파괴하는 경제적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무엇일까? ‘모든 이를 위한 경제’(Economy of Communion, 이하 EoC)라는 새로운 경제 모델이 그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EoC는 재화의 ‘나눔’,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면서 선을 베푸는 ‘무상성’, 그리고 인간 사이의 ‘상호성’, 이 세 가지를 기본 개념으로 한다. 무엇보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서로 간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시장경제 안에서도 조건 없는 사랑의 정신이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EoC기업가는 이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일을 통해 개인의 이익과 사회 이익을 동시에 창출할 수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EoC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안에서 형제애와 상호성을 구현하고자 하며, 기업가가 시장경제의 구조 안에서 공동선을 지향하는 것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기업가와 노동자, 경영자와 중간관리자, 생산자와 소비자, 경제학자와 활동가 및 일반 시민이 다양한 차원에서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지금까지 EoC를 ‘공유경제’, ‘나눔의 경제’, ‘친교의 경제’라고 불러오고 있는데, 아직 용어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여기서는 ‘모든 이를 위한 경제’라고 한다.

 

 

EoC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사실 ‘EoC’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백주년》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이 회칙에서 지상 재화와 노동의 가치와 경제에 대한 전통적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가 재천명되었고, 제3세계와 관련된 국제 시장의 문제도 제기됐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장과 기업의 긍정적 가치를 인정하는 동시에 공동선을 지향할 것을 요구하였다(《백주년》, 43항 참조).

 

이 회칙은 현대 세계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교회의 사명에 대해 말하면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구축할 것을 제안하였다(《백주년》, 58항 참조). 이러한 새로운 제안을 계기로, 포콜라레 운동을 창시한 키아라 루빅(Chiara Lubich) 여사가 1991년에 ‘EoC’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EoC의 정신은 성경과 교회문헌, 특히 역대 교황들의 사회회칙을 근거로 한다. 성경은 탈렌트의 비유(마태 25,14-30)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탈렌트는 올바르게 보존되고, 활용되며, 증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도행전에서는 예루살렘의 첫 그리스도 공동체가 재물을 공유하였다고 소개한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사도 2,44-45).

 

초대 공동체는 이처럼 사회적 이상을 실현하였고, 아무도 자기 재산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회개한 신자들은 성령을 받고 성체성사의 신비를 깊이 깨달아 친교와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초대교회 공동체처럼, EoC는 성경과 가톨릭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하여 복음정신으로 경제 활동을 쇄신하고자 한다.

 

 

우리 곁에 하나둘 늘어가는 EoC

 

2017년 현재 전 세계의 EoC 기업은 811개다. 유럽이 가장 많고 남미, 아프리카, 북미, 아시아 순으로 분포돼 있다. 우리나라에도 EoC가 선포됐던 1991년부터 이 정신을 실천해 온 기업들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튀김 소보로로 유명한 대전의 ‘성심당’이다.

 

사훈이자 경영이념인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라’(로마12,17)는 말씀 아래 EoC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또 이로써 교회와 사회에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교황청이 평신도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기사 훈장’도 받았다.

 

소유보다는 나눔을, 경제적 이익보다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있는 성심당은 기업이 공동선을 추구할 때 사회가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는 ‘착한 기업’이다. 성심당과 같은 EoC 기업이 점차 늘어날 때 ‘모두를 위한 경제’(EoC)가 모두를 위한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EoC의 이러한 점이 주목받으면서 EoC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2016년에는 이탈리아 로마-룸사 국립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루이지노 브르니 교수(Luigino Bruni, 철학·신학에 조예가 깊은 경제학자이며 EoC와 시민경제의 대표적인 학자)가 방한해 EoC에 관해 강연하였다. 국회에서 주관한 이 초청 강연에 사회적 경제에 관련된 정치인, 지방자치 단체 공무원, 경제학 교수, 시민 단체 활동가는 물론 매괴고등학교 학생들도 참여하였고, 《모든 이를 위한 경제》,《익명의 너를 신뢰하라》 등의 EoC 관련 도서들도 출판되는 등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17년 2월에는 이탈리아의 카스텔 간돌포에서 ‘EOC 결성25주년 국제회의’가 열렸다. 전 세계에서 800명이 모인 이 회의에 우리나라에선 33명이 참석하였다. 바티칸 성당 바오로 6세 홀에서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기업이 친교와 나눔을 기초할 때 아름다운 경제가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EoC회의에 참석한 이들에게 세 가지를 힘주어 말씀하셨다.

 

첫째, 돈이 우상화되지 않도록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도록하고, 

둘째, 자본주의의 희생자들을 돌볼 뿐만 아니라 더 이상 희생자들이 없도록 구조 악에 맞서 싸우고 행동할 필요가 있으며, 

셋째, 이윤을 선물로 내어 줌으로써 앞으로 더 큰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모두를 위한 경제’인 EoC는 현대의 소비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의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사회교리의 정신에 충실한 새로운 시대를 위한 복음적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결국 교회의 사명은 세상의 복음화이며 무엇보다 인간의 복음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의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 인간의 영적인 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사회적인 차원까지도 관심을 둬야 하며,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해야 할 것이다.

 

* 박영봉 신부는 청주교구 소속으로 1988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사회교리를 가르쳤고, 현재는 충북 음성군 감곡면에 있는 매괴중·고등학교 교장이다.

 

[성서와함께, 2017년 4월호, 박영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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