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강론자료

마태오복음 4,1-11 악마의 유혹 (2017. 3. 5. 사순 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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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7-03-01 ㅣ No.2165

그러자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인도하여 악마의 유혹을 받게 하였다. 음식을 먹지 않고 사십 주야를 보낸 후 예수는 배가 고팠다.

 

예수가 세례와 함께 받아들인 성령은 그를 광야로 인도한다. ‘광야는 자아의 내면을 가리킨다. 요한의 광야는 회개의 장소이며 예수의 광야는 영적 투쟁과 쇄신의 장소이다. 영적 자아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意識)의 내면에서는 아직도 육적 자아가 잠복하여 준동의 때를 노리고 있다. 육적 자아는 거짓 자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인격체인 것처럼 행세한다. ‘악마(devil)’는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단식은 육적인 갈망을 영적인 갈망으로 전환시켜서 망덕(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강화하는 수련법이다. 40은 시련, 정화, 기다림, 인내라는 상징하는 수이다. (예컨대,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를 여행하였으며,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의 계보는 40대이다.)

 

예수와 하늘나라의 제자는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 성령을 따른다. 하늘나라의 제자는 악마의 유혹을 받지만 그에 굴복하지는 않는다. 사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예수는 무려 40일 동안이나 단식하며 영적 투쟁을 준비한 것이다. 한편 세상 사람들은 늘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악마의 유혹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자 악마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아라.” 그러나 예수는 대답하였다. “성서에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으며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이 필요하다고 쓰여 있다.”

 

예수는 40일 동안이나 단식하였으므로 배가 고프다.’ 이때 악마는 세례자 요한이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 사람들 앞에서 집어 들었던 바로 그 돌들을 손가락질 하며 예수를 조롱한다.(마태오복음 3:9) ‘은 성령을 상징한다. 성령은 하늘나라의 제자에게 필수불가결의 음식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땅바닥에서 굴러다나는 돌처럼 쓸모없는 것이다. 악마의 물음인즉, 굶어 죽을 정도로 배가 고픈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빵인가 성령인가?

 

예수는 빵보다 성령을 선택한다. 그는 지금 자신이 성령의 힘으로 살아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영적 자아의 깨달음을 주는 성령을 가리킨다. 예수가 성서를 인용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오신 바로 그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사람에게 육신의 음식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먼저하느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육신이 죽어도 영(자아)은 살지만 영이 죽으면(자아를 상실하면) 육신이 살아 있더라도 이미 죽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서 성전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 그를 올려놓고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아래로 몸을 던져라. 성서에 하느님께서 천사들에게 너를 보살피도록 명령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끝조차 돌에 상하지 않게 하리라.’라고 쓰여 있다.” 예수가 대답하였다. “그러나 성서에는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라고도 쓰여 있다.

 

예수가 성서를 들어 대답하니 악마도 성서를 들어서 두 번째로 얄궂은 유혹을 던진다. 악마가 인용한 성서 구절은 시편 91:11-12이다. 만일 예수가 악마의 말대로 행동하면 죽는다. 그런데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영원히 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바리사이파, 율법학자, 사두가이파와 같은 거짓 스승들이다. 그들은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 건물로 백성을 압도하면서 권력을 휘두른다. 성전은 백성의 세금과 노역으로 이루어졌는데도 그들은 마치 자신이 성전을 지은 것처럼 우쭐거리면서 성전의 주인 행세를 한다. 이때 어리석은 백성은 그들을 추종하면서 그들의 지도자가 행여 궂은일을 당할 새라 떠받들고 아첨한다. 거짓 스승들에게는 자신을 떠받드는 어리석은 백성이 바로 천사이다.

 

거짓 스승의 발은 구름 위를 걷지만 참된 스승의 발은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는다. 참된 스승은 백성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해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으며 까닭 없는 모욕과 고통까지 감수한다. 예수(=참된 스승)의 성전은 자신의 몸이다.(요한복음 2:21) ‘은 스승의 구체적인 삶을 강조하는 상징어이다. 예수는 백성을 가르치기에 앞서 성전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귀를 기울인다, , 온몸으로 기도한다. 그래야만 가시밭길을 걸으며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영적 지혜와 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악마의 요점은 이것이다. 너는 큰 깨달음을 얻은 하느님의 귀한 아들이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하느님께서 너를 어련히 보호해 주실 것이 아닌가? 세상의 수많은 스승들은 권력과 재물을 누리면서도 백성에게는 하느님을 잘 섬기는 지도자로 추앙을 받고 있지 않은가?

 

예수의 대답은 신명기 6:7절을 인용한 것이다. “너희들이 마싸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 너희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 이집트를 떠나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은 목이 마르다고 모세에게 불평하였다.(출애굽기 17:1-7) 그들은 하느님의 뜻에 목말라 하는 대신에 육신의 목이 마른 것을 불평하였다. 신명기는 이것을 하느님을 시험한 사건으로 거론한다. ‘하느님을 시험한다.’는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보다 앞세우는 것, 육적인 자아를 영적인 자아보다 앞세우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느님을 시험하면 죽는다.

 

거짓 스승들은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앞세우고, 자신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인 양 백성을 가르친다. 그들은 건물, 예술, 전례, , 윤리, 지식, 재물, 행정, 정치, 이단 심문, 마녀사냥, 전쟁 등의 수단으로 사람의 행동을 다스리지만 참된 스승인 예수는 오직 성령의 힘으로 사람의 속마음을 다스린다. 성령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기도함으로써) 얻어진다. 악마가 성서를 인용한 것은 예수가 이스라엘 백성의 스승(=종교지도자)으로서 위선(僞善, hypocrite)의 유혹을 겪고 있음을 가리킨다. (위선이란 겉모습은 선하되 실제로는 악한 것이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아주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그에게 세상 모든 왕국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말하였다. “네가 무릎을 꿇고 나를 경배하면 나는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하였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겨라!’라고 쓰여 있다.” 그러자 사탄은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와서 그를 도왔다.

 

아주 높은 산은 권력을 상징한다. ‘세상 모든 왕국들은 민족, 국가, 가문, 정당, 종교 등 권력과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모인 집단들을 가리킨다. 세상의 권력자는 건물, 의복, 장식, 신분, 의식, 집회 등의 화려한 겉치레로 자신을 과시한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겸손한 사람들의 공동체이므로 꾸밈이 없고 조용하다. 악마의 왕국은 눈이 번쩍 뜨이도록 매력적인데 하느님의 왕국은 겉모습이 보잘 것 없다.

 

오직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늘나라만이 생명이 있는 실체이며 악마의 왕국은 모두 허상이다. 두 종류의 왕국은 이 세상에 함께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사탄은 유혹자라는 뜻이다. ‘사탄아 물러가라.’는 악마가 욕망이라는 허상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심리적 콤플렉스임을 꿰뚫어 보았다는 뜻이다. 악마는 허상이므로 상대하지 않으면 저절로 사라진다.

 

경배는 하느님을 최상의 존재로 존경하는 것이며 섬김은 그분의 뜻을 따라 사람을 사랑하되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만을 경배하고 섬기는 사람에게 성령을 더욱 풍성하게 내려주신다.

 

천사는 구체적인 유혹 하나하나를 이겨내도록 돕는 성령의 활동을 가리킨다. ‘사탄-악마’, ‘성령-천사로 대응한다. 예수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천사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하늘나라 제자는 누구나 천사의 도움으로 삶을 영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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