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성미술ㅣ교회건축

교회 건축의 영성: 건축은 삶에 대한 이야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19 ㅣ No.323

[교회 건축의 영성] 건축은 삶에 대한 이야기

 

 

건축에 관계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은퇴하신 선배 신부님께 건축 이야기로 뭘 쓰면 좋겠는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일단 제 이야기를 한두 차례 하고, 초기 가정 성당, 카타콤바(지하 무덤), 로마네스크, 비잔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근대주의, 현대 성당 등 성당 건축사에 대해 연재하면 1년이 금방 지나갈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선배 신부님 말씀이 연재는 가능할지 몰라도 아무도 재미있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두 달 역사를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교회 건축양식은 궁금해하지도 않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며, 자기 성당이나 자기 집 짓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당신들 성당 또는 자기 집 짓는 관점에서 글을 써야 하고, 제가 그동안 성전 건축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바를 써야 좋은 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좀 더 어려운 주제를 남겨주셨지요.

 

 

성당 건축은 신학에 대한 이야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은 아산 공세리성당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란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과연 어떤 기준에서 말한 것일까요?

 

우리 머릿속에 있는 서울 명동성당, 중림동성당, 용산 신학교, 성공회 성당, 음성 감곡성당, 전주 전동성당 등 역사가 10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고딕과 로마네스크의 절충양식이 시간의 켜를 가지고 있는 곳일까요? 요즘에도 붉은 치장벽돌이 가득한 높은 종탑을 가진 건물이 도심 한복판에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일까요?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실용성이나 거룩함과 지역 공동체를 만나서 어떤 이름으로 다가오는 것일까요?

 

필자는 본당에서 성당을 건축하기 전에 하는 건축 특강에 초대되어 강의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프리젠테이션(시청각 설명회)을 시작하기 전에 묻습니다. “성당을 건축하게 되면 공동체가 깨집니다. 그래도 건축을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아무 고민도 없이 “건축을 하겠습니다.” 하는 답을 듣습니다. 그리고 새 성당이 다 지어지고 나서 예전에 천막 또는 조립식이었을 때나 상가에 세 들어 살던 성당이었을 때가 더 행복하고 좋았다고 서슴없이 하는 이야기들을 듣게 됩니다.

 

과연 성당을 짓고 나서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걸까요? ‘몇몇 사람의 결정 또는 그 결과가 과연 옳은 방법이었나?’ 하는 물음과, ‘혹시 성당을 다 짓고 나서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가?’ 하는 물음이 떠오릅니다. 새로운 집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몇 평에 얼마의 돈을 들여 마감 재료를 비싼 것으로 하거나 성미술 작품들을 가득 담아서 잘 지었다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건축은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건축은 철학에 대한 이야기이겠지요. 그럼 성전 건축은 신학에 대한 이야기이겠지요. 성당 건축 뒤 그 성당을 통해 어떤 하느님을 체험하고, 신앙을 실천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며, 신앙인의 삶을 얼마나 더 아름답게 살아가는지의 문제인 듯합니다. 혹시 집을 짓거나 대대적인 수리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겠지요. 마감재와 페인트와 가구를 고르고 그 건물이 완성되었을 때,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더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당에 신자가 천 명이면 신자들의 마음속에는 천 가지의 성당이 존재하겠지요. 그런데 지어진 것은 눈에 보이는 성당 하나뿐입니다. 과연 그 하나뿐인 성당이 내 마음에 쏙 드는 경우의 수는 얼마나 될까요? 자기가 주장하려는 성당도 그 천 가지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스위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천재 르코르뷔지에

 

예술에는 천재가 있습니다. 피카소도 천재이고, 음악가들도 천재는 너무 많습니다. 내 눈에는 천재가 아닌 것 같아도, 다른 사람들이 다 천재로 인정하면 나도 묻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축에도 천재가 있습니다. 스위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년)가 등장합니다. 그는 건축가들뿐만 아니라 세계 건축사에도 엄청난 영향을 준 사람입니다. 최근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의 전시회를 하였습니다. 르코르뷔지에 이야기로 성전 건축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1950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르코르뷔지에에게 성당을 설계할 기회가 옵니다. 여러분도 많이 아시는 롱샹 성당입니다. 본디 롱샹 성당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성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 중에 폭격당해 성당을 허물고 새로 짓기로 결정하면서 르코르뷔지에를 설계자로 초청합니다. 성당이 지어진 지 50년이 지나서야 세계 건축가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롱샹 성당(왼쪽 사진)입니다.

 

하지만 1955년 성당이 완공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고전주의 양식의 성당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건물의 성당이 눈앞에 지어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콘크리트 무덤 같다고 했고, 어떤 이는 전쟁 방공호 또는 동물 모양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도대체 성당 같다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르코르뷔지에 또한 사람들의 그러한 반응에 적지 않은 상처를 받고 성당 설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뒤에 몇 개의 성당을 더 설계하였지만 그때는 설계를 변경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다고 합니다. 더 이상 르코르뷔지에는 천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사람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성당이 불과 50년의 세월 동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어떤 변화 때문일까요?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예전보다 아파트 평면이 많이 바뀌었지요? 유행에 민감하신 분들이라면, 모델하우스에서 최신식 평면을 보았는데, 2-3년 사이에 유행이 바뀌어서 입주할 때쯤 되면 좀 시대에 뒤떨어진 집이 된 것은 아닌지 느끼신 분들도 계시지요?

 

어떤 면에서 보자면, 성당 건축은 역사 안에서 최고의 건축물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당시의 손꼽히는 건축가와 기술자에다 많은 자본이 모여 기도로 이루어낸 결과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도 그런지에 대한 답은 불분명합니다. 모든 본당에서 성전 건축이 가장 큰 사업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최고의 걸작은 아닌 경우도 많지요.

 

롱샹 성당 내부.

 

 

다시 롱샹 성당 이야기입니다. 독특한 입면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평면을 르코르뷔지에는 시도합니다. 자신이 그림도 그리고, 모든 성물이나 제단도 디자인하게 됩니다. 완공되는 순간 숱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세월이 지나자 그 작은 동네에 있는 그 성당 하나를 보려고 수만 명의 사람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모여듭니다. 50년 전과 후, 사실 성전 건축은 앞날을 위한 삶의 고백 같습니다.

 

 

르코르뷔지에의 현대 건축의 원칙

 

르코르뷔지에는 ‘현대 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을 이야기합니다. 요즘은 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지만 당시 3층짜리 박공지붕이 주택 대부분의 모습이었던 시기에 요즘으로 말하면 슬라브 평지붕으로 세계의 집들이 바뀌게 되는 일대 혁신으로 다가옵니다.

 

1) 필로티 : 건물의 1층을 필로티로 들어올립니다. 요즘은 많은 건물이 1층을 비워두는 필로티 구조인데, 이것이 바로 르코르뷔지에가 제안한 방식입니다.

 

2) 자유로운 파사드(입면) : 기둥들이 건물 하중을 받침으로써 기능 면에서 자유로워진 입면을 설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전에는 벽이 건물의 하중을 지지하였지요. 요즘 건물에 유리나 새로운 재료들이 외관을 장식하는 것도 새로운 기술의 발달입니다.

 

3) 자유로운 평면 : 건물 하중을 벽이 아닌 기둥이 받침으로써 건축물의 벽이 자유로워져 새로운 공간의 창출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4) 수평 창 : 수평으로 길게 연속 창을 내어 로마네스크나 고딕의 수직 창보다 창문을 자유로운 모습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옥상 정원 : 요즘은 옥상을 여러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지만, 박공지붕이 대부분이었던 시대에 새로운 시도로 사람들이 옥상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이 다섯 가지 원칙은 그리 놀랄 만한 게 아니지만, 모든 집을 벽돌이나 돌로 쌓아서 짓기만 하던 시대에는 거의 혁명에 가까운 발상이었습니다. 그는 초기에 고안한 ‘도미노 주택’ 방식에다 이 다섯 가지 원칙을 더해 건축 설계에 적용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물로 르코르뷔지에는 고전주의 양식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건축기술을 적용한 건물을 짓게 된 것입니다.

 

성당을 지을 때에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과연 30년이나 50년 뒤에도 우리가 지은 이 성당을 후대의 사람들이 정말 편안하고 거룩한 건물로 인지하고 자랑스러워할 삶이 담긴 건물인지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이호 요셉 - 광주대교구 운남동본당 주임신부. 경희대학교 건축대학원과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 계획과 설계를 공부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함평 하상성당, 군산 축동성당, 한성대성당 등의 설계에 함께하였다.

 

[경향잡지, 2017년 1월호, 이호 요셉]



3,79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