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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밀정 - 어느 역사에 이름을 올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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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12 ㅣ No.967

[영화 속 신앙 찾기] 밀정 - 어느 역사에 이름을 올릴 것인가

 

 

올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잇달아 등장하여 눈길을 끈다. ‘암살’(최동훈 감독), ‘대호’(박훈정 감독), ‘동주’(이준익 감독), ‘귀향’(조정래 감독), ‘해어화’(박흥식 감독), ‘아가씨’(박찬욱 감독), ‘덕혜옹주’(허진호 감독), 그리고 ‘밀정’(김지운 감독)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영화들이 부쩍 많아졌다.

 

일제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과 질곡을 안겨준 시기였던 만큼 시대의 분위기가 주는 엄혹함과 비장함이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다양하고 비극적인 행보 또한 극적인 요소가 큰 편이어서 여러 매체의 작품에서 다루어졌다.

 

영화 ‘밀정’은 일제강점기, 그중에서도 삼일운동 뒤인 1920년대를 시간적 배경에 두고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의 활동을 되짚으며 당시 사람들의 믿음과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황옥 경부 폭탄사건이 토대

 

영화에는 이정출(송강호)이라는 일본 경찰이 등장한다. 이정출은 조선인으로서 독립운동하는 동족을 잡아내는 일을 한다. 영화의 시작 장면은 일본 경찰에 쫓기는 조선인 의열단원 김장옥(박희순)의 체포 작전에 나선 이정출을 등장시켜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군상들을 보여준다.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내부의 밀정과 외부의 또 다른 밀정, 의열단과 일본 경찰 등 여러 겹의 갈등과 긴장관계가 이 영화 속에 함축되어 있다. 특히 의열단 단장 정채산을 체포하고 의열단을 붕괴시키려는 계획을 세운 일본 경찰 수뇌부가 또 다른 조선인 경찰 하시모토(엄태구)를 투입하여 경쟁시킴으로써 살아남으려는 이정출의 안간힘과 불안 그리고 선택이 영화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밀정’은 1923년 실제로 있었던 ‘황옥 경부 폭탄사건’을 바탕으로 당시 의열단에 일어났던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엮어 만든 영화이다. 상해에서 경성으로 일제의 심장부인 총독부 등의 주요 시설을 타격할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방해하고 파괴하려 들어온 조선인 일본 경찰 간의 암투와 회유와 교란작전이 주요 줄거리를 이룬다.

 

여기에 “친일 또는 항일의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어느 한쪽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인물이 그 경계 위에서 줄타기하는 모습들이 흥미로웠다. 시대가 사람들을 어떻게 압박했는지, 어디로 몰고 가는지 시대의 가속을 받는 인물들의 감정적 과정과 어두운 내면의 행로를 시대적인 공기와 함께 다루고 있다”(김지운, ‘밀정’ 보도자료).

 

‘밀정’은 제목 그대로 스파이 영화다. 따라서 스파이 영화의 특성상 분열적 정체성, 가면(거짓)과 진실, 공작과 역공작 등의 구성이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특히 밀정이라는 드러나지 않은 존재(일종의 그림자)는 관객에게 긴장의 밀도를 높인다. 영화에서 의열단을 정탐하고 파괴할 목적으로 들어온 이정출 외에도 의열단 내부의 또 다른 밀정에 의해 조직이 위험에 빠지는 상황은 관객을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아울러 액션 장면의 기민함과 화려함이 김지운 감독 특유의 연출과 잘 어우러져 인상 깊은 장면들을 제공한다. 영화의 시작에서 한옥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총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나, 기차에서의 격렬한 싸움 장면은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밀정’의 영어 제목은 ‘그림자들의 시대(The Age of Shadows)’이다. 김지운 감독은 드러나지 않는 또는 드러낼 수 없는, 그러나 존재하는 그림자와 같은 이들이 살아가는 시대를 그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의 언급처럼 그 시대는 “어느 한쪽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이고, 그림자들은 그런 ‘칼날 위의 삶’이 계속되었다. 그림자들의 삶이 지니는 본질적인 어둠과 위험, 또한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시대의 공기가 지속적으로 영화에 긴장의 밀도를 더해가는 요소로 작용한다.

 

 

마음의 빚, 그것의 무게

 

이 영화의 볼거리는 이정출이라는 인물의 변화이다. 독립운동에 몸담았다 변절한 뒤 일본 경찰이 되고, 다시 이중 스파이가 되어 의열단을 돕다가 마지막에는 독립운동가로 변모하는 이정출의 모습은 영화에서 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실제 인물인 황옥은 경기도 경찰부 소속 경부로 의열단원 김시현(영화에서는 김우진 : 배우 공유)의 설득으로 상하이에 건너가 의열단에 가입한 뒤 경찰의 지위를 이용하여 거사용 폭탄을 국내로 들여왔다.

 

그러나 동료의 배신으로 검거되자 자신이 일제의 밀정이었다고 법정에서 고백함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켰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은, 논란의 인물이다. 이처럼 실제 인물에 대한 논란은 있으나, 영화에서는 이정출의 변화를 꽤 설득력 있게 그려나간다.

 

영화는 이정출의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요소로 ‘마음의 빚’을 거론한다. 그는 지난날 김장옥과 함께한 친구이자 동지였으나, 일본 경찰이 됨으로써 그를 등지고 급기야 친구가 자신 앞에서 자결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인물이다. 이정출의 마음의 빚을 알고 이를 끌어내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의열단 단장 정채산(이병헌 : 실제 인물은 김원봉)이다.

 

정채산은 “밀정에게도 조국은 하나다. 그에게도 분명 마음의 빚이 있을 것이며, 마음의 움직임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정출에게 “누구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어느 역사에 이름을 올릴 것인지 선택하라.”고 한다.

 

정채산의 지적처럼 이정출은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니 ‘마음의 움직임’이 이정출이라는 인물의 표면 밖으로 조금씩 새어나온다.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은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잡혀온 연계순(한지민)을 직접 고문하고 급기야 거적에 덮여 수레에 실려나가는 그녀의 주검을 대했을 때 터져나온다.

 

배우 송강호는 이정출을 극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억누르고 힘을 덜어냄으로써 인물에 대한 신뢰감을 확보하였고, 감정의 완급을 효과적으로 조절하였다. 스파이 영화에 나오는 냉혹하고 주도면밀한 인물을 연기하기에는 어딘가 허술하고 능글맞으며 굼뜬 중년의 송강호가 돋보이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믿음의 힘

 

‘밀정’은 믿음에 대한 영화이다. 이정출을 비롯한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믿음에 관하여 확신하거나 의심한다. 그들의 믿음은 조국의 독립이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사람이 일본제국의 강건한 힘을 믿었고 그래서 친일파로 돌아섰다.

 

이정출도 처음에는 조국의 독립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독립운동을 하는 친구 김장옥에게 투항을 권하며 이렇게 말한다. “넌 이 나라가 독립될 거 같냐? 어차피 기울어진 배야!” 그러나 김장옥은 이정출 앞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다.

 

일본의 압제에서 독립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한 이들은 독립의 그날을 기다리며 고난을 견디거나 스스로 고난의 길로 들어섰다.

 

정채산의 말처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믿으면서 실패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실패가 쌓여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앞으로 전진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 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아마 순교의 시대에 우리 신앙의 선조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순교를 요구하지 않는 시대, 신앙에 대한 박해가 없는 이 시대에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가? 간절함이나 굳건함은 사라진 채 신자로서 최소한의 의무만을 치러내는 안이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머물러있는 것은 아닐까?

 

* 조혜정 가타리나 -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이다.

 

[경향잡지, 2016년 11월호, 조혜정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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