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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뿌리: 생제 피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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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2-25 ㅣ No.570

[영성의 뿌리] 생제 피에르 신부


빈민 구제 위해 성가소비녀회 설립



성가소비녀회의 설립자 생제 피에르(Singer Pierre, 한국명 성재덕) 신부는 1910년 9월 13일 프랑스 아라스 교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8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해 1935년 7월 7일 사제품을 받고, 같은 해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됐다.

합덕본당과 제물포(현 답동)본당 보좌 신부를 역임한 뒤 1939년 서울 백동(현 혜화동)본당 주임으로 부임했다.

당시 한국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전사자, 부상자, 고아와 무의탁 노인이 수없이 많았다. 생제 신부는 이런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제가 벌인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외국의 수녀회를 초청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기에 그는 자생 수녀회를 계획하게 됐다. 생제 신부는 자신과 뜻을 같이한 두 명의 지원자를 모아 성가소비녀회를 창립하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도록 했다.

생제 신부는 마리아의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는 응답과 성 김효임 골롬바·효주 아녜스 자매가 재판장 앞에서 스스로를 ‘소비녀’(작은 여종)로 칭했던 것에 착안해 수녀회 이름을 정했다.

1943년 12월 25일 예수 성탄대축일에 성가소비녀회가 성가정의 겸손과 가난을 본받아 가난한 자, 환자, 무의탁자들을 돌볼 것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생제 신부는 그리스도가 스스로를 낮춰 이 세상에 내려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참다운 섬김의 모범을 보였던 것처럼,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가난한고 불우한 사람들에게로 내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회가 성탄절에 시작된 데에는 가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회원들도 이웃을 섬겨야 한다는 창설자의 정신이 담겨있다.

1948년 파리외방전교회는 서울교구를 완전히 한국인 사제에게 양도하고 대전에 새 포교지를 창설할 임무를 받았다.

생제 신부 역시 서울을 떠나 대전교구로 이동했다. 생제 신부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주었고, 논산본당에서 14년간 사목하면서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을 세웠다. 또 나환자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성광원을 설립했다.

생제 신부가 설립한 성가소비녀회는 수녀들이 직접 삯바느질이나 궂은 일을 해 생활비를 벌었을 뿐만 아니라 본당일,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도 함께 해왔다. 한국전쟁 중에는 대구, 부산, 제주도 등지에서 고아를 돌보고 부상병을 치료해왔다.

1969년 12월 생제 신부는 자신이 설립한 성가소비녀회의 지도신부로 왔고, 수련소 강의와 영성 강의를 하면서 수녀들을 지도했다. 그는 1992년 2월 26일 선종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5년 12월 20일,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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