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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 시대의 그리스도인: 과학주의의 한계 - 확률적 우연성에의 큰 의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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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3-22 ㅣ No.393

[과학 시대의 그리스도인] 과학주의의 한계 (1)


확률적 우연성에의 큰 의존성

 

 

지난 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과학주의는 역사적으로 과학과 신앙 간의 갈등과 긴장 아래에서 성장해 온 하나의 주의요 사상이다. 이 과학주의가 오늘날 대단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여러 종교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과학주의는 과연 완벽한지, 만일 완벽하지 않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한계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두 과학주의자의 주장

 

오늘날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과학주의자로는 리처드 도킨스를 꼽을 수 있다. 그는 1970년대 이래로 현재까지 진화론에 입각한 과학주의를 일관되게 주장해 온 진화 생물학자이다. 그는 특히 2006년에 출판된 저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을 통해 세상의 여러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에 대해 엄청난 공격과 조롱을 가함으로써 대중적으로 지지와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다.

 

도킨스를 포함하여 진화론에 입각한 과학주의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어느 순간 확률적으로 우연히 지구상에 생명체가 출현하였는데 그 뒤 그 생명체의 후손들이 오랜 기간의 진화 과정을 거쳐 지금의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형성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또 한 명의 영향력 있는 과학주의자로는 스티븐 호킹을 들 수 있다. 블랙홀에 관한 연구로 학계에서 널리 주목받는 물리학자인 그는 2010년에 출판된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를 통해 빅뱅은 물리학 법칙만이 작용한 결과로서 이 과정을 통해 우주가 자연스럽게 탄생했으며 유일신과 연관된 우주의 창조 개념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유명하다.

 

 

확률적 우연성에 기반한 과학주의

 

호킹을 포함하여 우주론에 입각한 과학주의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어느 순간 확률적으로 우연히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되었다. 그 뒤 우주가 팽창하면서 별과 행성, 은하계 등이 생겨나는 우주의 진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뒤 확률적으로 우연히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적절한 조건(온도, 압력, 물, 공기 등)이 마침 지구에 형성되어 결국 생명체가 생겨나고 점차 진화하게 된다.’고 정리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진화론자든 우주론자든 이들 과학주의자의 주장은 공통으로 우주와 지구상 생명체의 첫 출발점이 ‘확률적 우연성’에 기반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확률적 우연성’이라는 말은 과학적인 개념으로서 ‘필연적인 어떠한 원인이나 이유 없이 거의 영에 가까운 지극히 낮은 확률을 갖고 어떤 현상이 발생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우주의 탄생과 지구상 생명체의 탄생은 ‘대단히 낮은 확률’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된다.

 

반면에 유신론자들은 확률적 우연성 대신 ‘필연성으로서의 창조주’에 기반해서 우주의 탄생과 지구상 생명체의 탄생, 그 밖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려고 시도하며 현재의 과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또는 초자연적 영역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중 우주론, 진화론과 과학주의

 

현재 과학주의자들은 바로 우주의 탄생과 지구상 생명체의 탄생에서의 우연성을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자 평행 우주론이라고도 불리는 ‘다중 우주론’(multiverse theory)과 진화론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의 전체적 논의를 이 두 가지 과학 이론에 근거해서 전개한다.

 

그는 「만들어진 신」을 통해 창조론적 유신론과 진화론적 유신론의 주요 특징들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에서 강력히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과학주의가 옳다고 설득한다. 무엇보다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운다.

 

먼저 2장에서는 신에 대한 개념이 가설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3장에서는 그동안 존재해 왔던 신 존재 증명 방식들을 엉터리 논증이라 치부한다. 이를 통해 도킨스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강하게 부각하고자 했다.

 

4장에서는 신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세상, 곧 우주와 지구상의 생명체가 현재와 같이 구성되었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진화론과 다중 우주론을 중요한 두 가지 과학적 기반으로서 제시한다. 그는 이 과학 이론들을 통해 신을 ‘더는 이 세상의 존재를 위해 필요하지 않은 개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신은 존재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개념’이라고 충분히 주장한 뒤 5-10장에서는 ‘허구의 신’에 의지하고 있는 세상의 여러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유일신교들의 태생적인 약점과 폐해를 낱낱이 폭로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종교는 사라져야만 한다고 강력히 설파한다.

 

그가 펼치는 이 세 가지 의도를 모두 읽은 독자는 더는 신의 존재와 그 필요성을 주장하지 않고, 나아가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되어 기존의 종교로부터 탈피한 진정한 무신론자로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을 통해 의도한 전략이었다.

 

 

창조주를 거부하고자 하는 과학주의

 

도킨스가 제시한 이러한 전략은 대중에게는 성공적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킨 듯 보이지만, 우주의 탄생과 지구 생명체 탄생에서의 ‘우연성’을 설명하려면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검증되거나 증명되지 않은 이론인 다중 우주론과 진화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명백한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앞으로 다중 우주론과 진화론의 과학적 한계에 대해서도 살펴보려 한다.

 

그가 이토록 다중 우주론과 진화론에 집착하는 이유는 우주의 탄생과 지구 생명체 탄생의 궁극적 원인으로서의 ‘창조주’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반면 유신론자들은 똑같은 문제에 대해 필연성으로서의 창조주를 요청하는 방식을 취한다.

 

결국 이 두 집단은 동일한 과학적 주제 안에서도 신앙과 종교에 관해서도 상반된 입장에 기대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과학의 자립성이 기대하는 만큼 그다지 튼튼하지 못하며 과학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우주의 탄생과 지구 생명체의 탄생에 관한 설명에서는 결국 신앙과 종교의 영향을 받는다는 증거가 된다.

 

이처럼 결정적인 부분에서 신앙과 종교에 의존적인 과학이 신앙과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과연 독립적이고도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까? 또한 과학주의는 과연 성공적인 주의라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좀 더 자세한 논의를 진행해 보도록 하겠다.

 

이 내용에 대해 좀 더 깊은 내용을 알고자 하는 독자는 필자의 글 ‘현대의 과학 시대에서도 신앙은 과연 의미가 있는가? - 과학주의에 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한 신앙의 의미 탐색’(「신학전망」, 204호, 130-170면)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 김도현 바오로 - 예수회 한국관구 소속 신부로 현재 서강대학교에서 통계물리학과 ‘과학과 종교’를 연구, 강의하고 있다.

 

[경향잡지, 2020년 3월호, 김도현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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