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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나태 (2) 교부들이 소개하는 나태와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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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3-19 ㅣ No.909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나태 (2) 교부들이 소개하는 나태와 심리

 

 

교부들이 소개하는 나태

 

교부들은 ‘나태’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을 일찍부터 알고 있어 그 악의 실체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 준다.

 

▶ ‘정오의 악령’

 

사막 교부들의 전통 안에서 나태는 ‘정오의 악령’(시편 91,6 참조)으로 이해되었다. 에바그리오에 따르면 나태의 악령은 제4시(오전 10시) 무렵 수도승을 공격하여 제8시(오후 2시)까지 수도승의 영혼을 포위한다. 수도승들에게 그 시간은 가장 어려운 시간이다. 식사 전 시간(수도승들은 하루 한 끼 식사했는데 그 시간이 현재의 오후 3시 무렵이다.)으로 삶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피폐하고 절박함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악령은 이러한 기회를 이용한다(「프락티코스」, 12항 참조).

 

▶ 나태한 이의 모습

 

에바그리오는 나태한 이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나태한 이들의 눈은 계속해서 창문을 응시하고 그의 정신은 도착할 사람을 상상한다. … 독서를 할 때 자주 실수를 하고 쉽게 잠에 빠져든다. 그들의 눈은 책(성경)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얼굴을 돌려 창문을 응시한다. 잠시 뒤 다시 독서를 시작하지만, 문장의 끝을 반복해서 읽거나 남은 책장의 수를 세며 본문이 끝나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얼굴 밑에 책(성경)을 펼친 채 잠에 빠져들지만 깊이 잠들지는 못한다. 배고픔에 대한 염려가 그를 다시 눈뜨게 하기 때문이다”(「여덟 악령」, 14항).

 

▶ 가벼운 듯 보이지만 끔찍한 악습

 

나태는 삶의 의지를 꺾어 버리는 아주 끔찍한 악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에바그리오는 나태를 모든 악령 가운데서 “가장 사악한 놈” 이라고 불렀다(「프락티코스」, 12항 참조). 나태의 악령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은 성취하기에 어렵고 힘들어진다. 생각과 행동을 멈춘 채 자신만의 고요 속에 머물러 자신 안에 있는 선의 불꽃을 꺼 버린다. 나태는 영혼을 가장 심한 타락과 질병으로 이끈다.

 

▶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삶에 대한 혐오

 

에바그리오는 은수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나태가 그의 거처와 기도와 독서, 손노동, 침묵과 같은 반복되고 단조로운 생활에 혐오를 불러일으킨다고 보았다. 혐오는 게으름으로 나타난다(「프락티코스」, 12항 참조).

 

▶ 선에 대한 슬픔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나태는 선에 대한 슬픔과 혐오다. 이성이 선으로부터 멀어지게 해 육체가 영을 제압하기에 대죄의 특성이 있다. 또 인간 영혼 전체를 약하게 해 행동하는 의지를 사그라지게 만들며 움직임을 혐오하게 만든다(「신학대전」, II-II, q. 35, a. 1 참조).

 

▶ 사랑의 무능력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나태는 하나의 열정으로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다. 하지만, 이 열정이 자신의 의무와 영적 선에 대한 성취를 방해하고 영적인 삶을 마비시키게 될 때 죄가 된다. 나태는 의무를 마주하지 않고 애정에도 영향을 주어 어떠한 것에도 관심과 사랑을 두지 않게 된다. 결국 나태한 이는 사랑하고, 다른 이를 생각하는 열정을 지니는 것에 대해 무능력하게 된다(「신학대전」, II-II, 26, a. 1 참조). 이러한 사랑의 무능력은 자기애가 강해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서 고립시킨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공허함을 우울이나 슬픔을 통해 드러낸다.

 

▶ 영혼의 원수

 

베네딕토는 한가함을 ‘영혼의 원수’로 보았다. 그는 한가함이나 잡담에 빠져 독서에 힘쓰지 않아 자신에게는 무익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방해가 되는 수도자들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들이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독서와 적당한 일을 주는 것을 아빠스(대수도원장)의 역할로 소개한다(「수도 규칙」, 48장 참조).

 

 

나태는 수도승들만의 적?

 

사막의 침묵과 혹독함 속에 하느님과 진정한 인간 실존을 추구하며 영적 투쟁을 하던 은수자, 수도승들에게 나태는 큰 훼방꾼이었다. 나태는 그들의 에너지를 감소시키고 가치의 참맛을 잃게 하며,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부추겨 결국 그들의 자리를 떠나도록 유혹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 또한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가운데 좌절과 지루함, 낙담으로 영적인 기쁨을 누리는 데 방해를 받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일부 그리스도인은 인위적, 일시적 기쁨을 추구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이나 실질적으로는 비그리스도인으로 살 수도 있다. 오늘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강력한 위협이 될 수 있는 나태에 좀 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나태와 심리

 

지난날 교부들이 언급했던 나태의 유형은 사막의 은수자들이나 수도자들의 삶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 나태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 현대의 나태 유형

 

현대인의 나태는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폴 스티븐스와 엘빈 웅의 「일삶구원」 참조).

 

① 한량형 - 특정한 직업 없이 소소한 재미를 쫓아다니며 즐거움을 찾는 유형이다. 축제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겐 스트레스나 걱정거리가 없고 무엇을 먹고 어디서 쉬고 즐겨야 하는지 외에는 결정할 것도 없다. 특정한 직업이 없어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이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모습으로 그들은 이러한 생활방식을 삶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대부분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에서 온다. 이들에게는 신앙생활도 그 즐김의 한 장소일 수 있다.

 

② 분열형 - 심리적인 측면에서 ‘분열’은 사고, 행동, 정체성의 일관성이 떨어져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일터에서는 게으름을 피우고 일에 관심이 없으며, 수동적이다. 하지만 일터에서 나와 교회로 가는 순간 생기가 돈다. 이와 반대로 일터에서만 열심히 일하고 교회에서는 아무런 관심과 흥미도 없는 경우 또한 분열형에 속한다. 이들은 장소에 따라 다른 정체성으로 살아간다.

 

③ 둥지형 - 새끼 새에게 둥지는 가장 안락하고 편안한 곳이다. 둥지형의 사람은 월급을 받으려고 일하지만 일에 대한 특별한 열의는 없다. 따라서 위험하거나 문제가 될 일, 책임지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가정 또한 의무와 책임에서 가장 자유롭다고 여기는 곳이기에 집을 떠나는 행동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신앙생활에서 둥지를 튼 이들 또한 의무와 책임이 없는 삶을 추구하고 자신의 심리적 안정과 개인적인 구원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④ 방관형 - 이들은 긴박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나 이 세상의 요구를 무시한다. 누가 도움을 요청하면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가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 줄 것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특히 자신의 실속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을 마주하게 되면 그들은 더욱 심한 방관자가 된다.

 

⑤ 분주형 - 제 일을 사랑하는 아주 재능 있는 이들이다.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며 그 대가를 즐긴다. 하루의 모든 일을 계획대로 진행하고 순간마다 그것들을 꼼꼼히 챙긴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없거나 여유와 침묵의 시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주어지면 불안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두려워 모든 것을 하려 한다.

 

* 김인호 루카 - 대전교구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가톨릭평화방송 TV ‘김인호 신부의 건강한 그리스도인 되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저서로 「신앙도 레슨이 필요해」,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하기」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9년 3월호, 김인호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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