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8-09-23.....한국순교성인기념일.....0920에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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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9-22 ㅣ No.2268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대축일 [0920]

 

지혜서 3,1-9 로마서 8,31-39 루카 9,23-26

2018. 9. 23. (주일). 이태원.

주제 : 이 시대에 생각할 순교(!)

추석명절을 앞두고 맞이하는 주일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향해 움직이는 때가 되었습니다. 즐겁게 움직이시는 분들이 명절을 대하고 즐기는 만큼, 신앙의 정신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마음대로만 될 수 있으면, 좋을 일이지만, 바람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안타까울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신앙역사에서, 신앙을 드러내느라 목숨을 내놓고 신앙을 증거한 순교성인들을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전례일로 정해진 날짜는 920일이고, 올해는 이미 지난 날짜가 되었습니다만, 신앙인들이 더 많이 기억하고 영향을 입을 수 있도록 기념일을 주일로 옮겨서 지냅니다.

 

우리나라역사에서 103위 성인을 기억하고 기념하게 된 것은 1984년부터입니다. 지금은 성인으로 공경하는 요한바오로2세교황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셨고, 복자로 공경하던 분들의 순교기록을 근거로 기적심사를 면제하면서 우리나라는 103위 성인을 모신 나라가 되었습니다. 단체로 103위 성인을 기억합니다만, 그분들이 순교하셨다는 사실을 빼고, 우리가 그분들의 삶에서 무엇을 본받으려고 하는지 배울 시간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정치권력의 폭력으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순교가 가능한 때는 아닙니다. 요즘은 피를 흘려야 하는 순교가 가능한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생각할 순교의 의미는 다양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성인들의 영광을 기억하는 오늘, 복음은 십자가와 관련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라서 듣기에 부담스러울 내용입니다. 하지만 똑같이 부담스러운 내용이라고 해도, 우리가 대하는 자세에 따라 현상은 달라집니다. 복음에서 만난 십자가가 고통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고, 십자가가 힘겨운 대상이라고만 안다면 십자가를 대하는 일에 기꺼운 마음자세이기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생각하여 십자가를 좋은 것이라고 여기고, 세상의 삶을 빨리 끝내고, 성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순교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삶의 방편이 아니라 결과를 말하는 것이니, 우리가 생각을 먼저 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할 순서는 정성을 담은 행동을 어떻게 현실에서 드러내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의 삶에는 만나기가 싫은 대상은 언제나 있습니다. 흔히 그 대상을 우리가 십자가라고 표현합니다만, 그 대상을 내가 싫다고 하면 그가 내게서 사라지거나 떠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게 찾아온 대상을 내가 어떻게 다독거리느냐에 따라서 내 삶의 모습과 결과는 달라집니다.

 

누구나 힘겨운 것으로 말하는 십자가를 잘 대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요? 누가 알려주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대답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대답에서 얻는 지혜는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더 그렇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이미 대답을 알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결국 내가 선택해야 할 일은 아는 것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이왕이면 하느님의 도우심을 입어, 우리가 현실에서 옳은 모습을 드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얻으려고 하는 그 도우심의 약속을 우리가 어떻게 기대하겠습니까?

 

지혜서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의인에게는 고통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이 말씀이 내게 실현되기를 바라려면, 현실에서 내가 정말로 의인으로 살고 있는지 봐야 합니다. 하느님의 앞에서 나는 의인일까요? 다른 사람과 하는 비교, 내가 저 사람보다는 의인이라는 소리는 의미가 없는 표현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하는 이 말은 여러분이 의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사는 일이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현실에서는 내가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질투해서 내리시는 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하느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위의 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 하느님은 인간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시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뜻을 이해하는 사람이라야만, 사람은 신앙인으로서 바르게 살 수 있을 것이고, 피를 흘리는 순교가 가능하지 않은 세상에서 순교의 의미를 올바르게 실천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성인들을 기억하는 축일에 내가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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