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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 성지: 베들레헴, 주님 성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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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3-07 ㅣ No.1755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베들레헴, 주님 성탄 성당

 

 

- 구유광장에서 주님 성탄 성당으로 가는 길. 오른족 종탑 벽이 아르메니아 수도원이고 맞은편 사람들이 있는 곳이 주님 성탄 성당이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작은 도시입니다. 일대는 해발 700m가 넘는 산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산지와 달리 완만한 구릉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빵집’(히브리어, 아람어), 혹은 ‘고기 집’(아랍어)이라는 뜻을 지닌 베들레헴은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임금인 다윗 왕의 고향이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의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는데 예언자 사무엘에 의해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두 번째 왕으로 지목됩니다(1사무 16,1-13).

 

그러나 베들레헴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지가 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마태오복음서는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마태 2,1) 하고 아주 간단히 전하지만, 루카복음서는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지요. “요셉도···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4-7) 

 

초기부터 전해 오는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한 동굴에서 태어나셨다고 합니다. 이 일대에는 지금도 자연 동굴이 군데군데 있는데, 예수님 시대에는 이 동굴들을 주거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목동들이 비나 추위를 피하는 곳으로도 쓰였지요.

 

이렇게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고 전해지는 동굴 위에 주님 성탄을 기념하는 성당이 있습니다.

 

이 성당은 오랜 역사를 지닙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313년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후,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248?~329?)가 베들레헴으로 순례 와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는 동굴을 참배하고 동굴 위에 성당을 짓게 했습니다. 이 첫 번째 성당은 339년에 봉헌됐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름을 딴 이 성당은 불에 타버렸습니다. 510년 대지진 때에 불이 났다는 설도 있고, 529년 사마리아인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에 불에 탔다는 설도 있습니다. 다행히 성당 바닥을 장식했던 모자이크의 일부가 현재의 성당 중앙 바닥에 남아 있어 성당을 순례하면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을 볼 수 있지요.

 

- 주님 성탄 성당 입구 겸손의 문(좌). 주님 성탄 성당 내부. 바닥에 첫 번째 성당의 모자이크 장식이 보인다.

 

 

탄생 동굴 바닥에 백동으로 14각형의 별 있어

 

현재의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재위 527~565) 때에 완공됐습니다. 그래서 유스티니아누스 성당이라고도 하지요. 15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성당은 내부 장식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옵니다. 7세기 초에 페르시아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범해 전역의 성당들을 파괴했는데 베들레헴의 이 성당만은 그냥 두었다고 하지요. 성당 안에 아기 예수를 참배하러 온 동방박사들의 그림이 있었는데 페르시아인 복장을 하고 있어서 페르시아의 장수가 그것을 보고 감동해 오히려 참배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주님 성탄 성당은 베들레헴 중심부에 있습니다. 베들레헴 종합터미널에서 내려 걸어서 5분 남짓 언덕길을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커다란 광장이 나옵니다. 구유광장이라고도 하는 이 광장 왼쪽에 주님 성탄 성당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성벽처럼 보이는 아르메니아 수도원을 끼고 있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면 ‘겸손의 문’이라고 부르는 작은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어서 그렇게 부르지요.

 

성당 안에는 좌우로 두 줄씩 한 줄에 모두 10개씩의 돌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습니다. 이 성당은 그리스 정교회가 관리합니다. 그래서 중앙 제대와 오른쪽 제대는 그리스 정교회 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정교회도 중앙 왼쪽에 제대를 꾸며 사용하고 있지요. 중앙 제대 바로 뒤 오른쪽과 왼쪽에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습니다.

 

- 주님 탄생 동굴 경당의 14각형 별자리로 표시된 예수님 탄생 자리.

 

 

이 계단을 내려가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고 전해지는 동굴이 있습니다. 동굴 대리석 바닥에는 백동으로 된 14각형의 별이 있습니다. 14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14대,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의 14대 그리고 그 이후 그리스도까지 14대를 나타내며(마태 1,17 참조) 또한 십자가의 길 14처를 뜻하기도 합니다. 별에는 “Hic de Virgine Maria Jesus Christus Natus est.”라는 라틴어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라는 뜻입니다. 이 탄생 동굴 역시 그리스 정교회가 관할하고 있습니다.

 

유서 깊은 주님 성탄 성당 순례를 마치고 돌아 나오면 바로 옆에 근대식 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1881년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 수도자들이 세운 가타리나 성당입니다. 해마다 성탄 때면 예루살렘 총대주교가 집전하는 성탄 자정 미사가 전 세계에 중계되는 바로 그 성당입니다.

 

- 가타리나 성당 지하의 예로니모 동굴.

 

 

가타리나 성당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여러 동굴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예로니모 동굴 경당입니다. 이곳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해 34년 동안 지내면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쓰인 신구약 성경을 ‘불가타’라고 하는 대중 라틴어로 완역한 예로니모(347~420) 성인의 이름을 딴 동굴입니다. 이 불가타역 성경은 교회에서 전례용으로 사용하는 공식 성경이지요.

 

 

'목자들의 들판 성당' 주위 동굴에 순례자 위한 경당 조성

 

베들레헴의 중심부인 구유광장에서 동쪽으로 2km 남짓 떨어진 외곽 지역에 ‘목자들의 들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양들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다는 지역인데, 헬레나 성녀 시대에 이미 이곳에는 기념 성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4~6세기 것으로 보이는 모자이크 흔적이 이를 말해 줍니다.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은 1950년대에 이 지역에서 옛 성당과 수도원 유적을 발굴하면서, 베두인 족의 천막형태로 된 현대식 성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자연 동굴 두 곳을 순례자들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경당으로 조성했습니다. 이곳 동굴들을 보면 2000년 전 초라한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 목자들의 들판 성당.

 

 

오늘날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 정부가 관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을 순례하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갈라놓는 거대한 장벽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의 철저한 검문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요.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자신을 내놓으신 평화의 왕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을 순례하는 초입에서부터 대립과 분열, 갈등과 반목이 엄존하는 현장을 본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그 역사의 현장을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낮추어 겸손의 문을 통과해야 하고 거기에서 다시 지하 동굴로 내려가야 하며, 그것도 모자라 다시 고개를 더 숙여야 탄생 자리의 별을 만져볼 수 있다는 사실은 자체가 화해와 일치, 평화를 이루려면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가타리나 성당 지하의 예로니모 동굴 또한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의 삶의 나침반이 바로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임을 새롭게 되새기게 해주지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3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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