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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보복이 아닌 회복을 위한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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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1-16 ㅣ No.774

[생명을 주는 가족] 보복이 아닌 회복을 위한 대처

 

 

청소년 무리가 또래 친구를 폭행하는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폭력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도 너무 잦다. 폭행 사건이 실제로 전보다 많아진 것인지, 언론 보도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폭력 가해자의 연령은 더 낮아지고, 피해자가 보호를 요청할 여지는 더 줄어들고 있음이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덩어리로 얽혀 있는 대표적인 곳이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으로 이루어졌으나 폭력으로 멍드는 가정이다. 필자는 성인 여성을 위한 가정폭력쉼터 여러 곳과 유대를 맺고 있는데, 한 기관과의 인연은 10년이 훌쩍 넘었다. 해마다 상반기/하반기 한 번씩 쉼터로 피해 온 여성들과 집단상담을 진행하고, 그 가운데 상담이 필요한 분과 8~10회기 정도의 상담을 이어 간다.

 

얼마 전부터 쉼터에 온 지 한 달쯤 된 여성(박영희 안나, 가명)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혼인 30년째인 영희 씨는 아내의 노동에 의탁해 온갖 유희를 즐기고, 외도하고 착취하는 남편과 살면서 두 아들을 잘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남편의 폭력을 참아 왔다. 그런데 4년 전 큰아들이 삶을 비관해 세상을 등지고, 작은아들마저 매 맞는 엄마를 외면하는 걸 보면서 그동안 잘못 살아왔음을 깨달았다고 한참이나 오열했다.

 

상담자 : 혼인 초부터 폭력이 지속되었다고 하셨는데, 이번에 쉼터로 나오게 된 계기는요?

 

내담자 : 남편은 아들들이 없는 곳에서 저를 때렸어요. 충동적으로 때릴 때는 아들들이 나서서 말리곤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작은아들이 말리기는커녕, 얼굴을 돌려 버리더군요. 큰아들이 떠나고 작은아들의 이런 모습까지 보니 내가 잘못 살아왔구나 싶고, 작은아들까지 망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편과 끝내야겠다 싶었어요.

 

상담자 : 남편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내담자 : 쉼터에 있는 다른 엄마들은 남편이 원수 같다느니, 이런저런 험담도 많이 해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남편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저 먼저 간 큰아들에게 엄마로서 잘해 주지 못한 것이 죄스럽고 억울한 생각만 들어요.

 

상담자 : 따지고 보면 남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하면서 즐겁고 만족스럽게 살았고, 어머니는 아들들 뒷바라지를 위해서라지만, 어머니 자신을 위해서는 별로 하신 게 없네요.

 

내담자 : 맞아요. 하루도 쉬어 본 적이 없어요. 애들 잘 키워 보겠다는 생각으로 돈벌이를 한 건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결국 남편이 돈 쓰기 좋게만 만든 것 같아요. 일 안 하면 윽박지르고 때리고 그랬으니까 그런 거지만.

 

상담자 : 작은아들과는 어떤 관계이신가요?

 

내담자 : 큰아들 잘못되고는 제가 거의 넋이 나가 있었고, 작은 애도 형에 대한 아픔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해서, 요 몇 년 사이에는 작은 애와 변변히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어요. 남편과 관계가 정리되면 내 입장도 말하고, 아들의 속 이야기도 듣고,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겠지요.

 

이혼 소송을 통해 분할할 재산도 어느 정도 있고, 생활력과 자존감도 높은 편이어서 영희 씨의 태도는 당당하고 합리적이었다. 다만 큰아들에 대한 연민과 죄의식에서 비롯되는 우울감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찬가지 상태였다. 아들마저 앞세웠는데 두려울 게 무엇이냐는 듯, 남편에 대해서도 별다른 분노나 공포, 또는 앙갚음을 해야겠다는 태도 등은 드러내지 않았다.

 

또래 친구를 잔인하게 가해하고 일말의 죄의식조차 드러내지 않는다며 미성년 범죄자의 형량을 높이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되는 일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성인에 버금가는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만이 해결책일까? 법으로 처리하면 시간도 에너지도 덜 든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벌 받으면 끝나지 않느냐는 생각만 할 뿐, 자기 행동의 어느 부분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그렇게 성인이 되면 또 대물림되는 후대를 만들 뿐이다. 그러니 시간과 에너지가 들더라도 보복적인 힘을 치유와 관계회복을 지향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갈등전환학의 세계적인 학자, 하워드 제어(Howard Zehr)는 현 사법제도의 기초인 ‘응보적(retributive) 접근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회복적(restorative) 접근법’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사실 성경에서 예수님의 태도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회복적 접근은 응보적(보복적) 접근에 비해 훨씬 보편적이고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워드 제어 교수가 말하는 갈등 또는 범죄 가해자/피해자에 대한 두 접근법의 차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하워드 제어 지음,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 KAP 출판사, 2010, 참조).

 

회복적 접근은 갈등과 범죄 당사자들에게 던지는 질문부터 다르다. 피해자에게는 문제 해결의 중심적인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요구와 권리를 밝히게 하고, 가해자에게는 자신이 요구한 피해를 수용하고 책임을 지도록 요청한다. 이때 공동체가 나서서 당사자들의 참여와 소통을 장려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보복이 아니라 피해자의 바람에 초점을 맞추므로, 피해자 개인과 공동체의 치유를 촉진한다.

 

단언컨대 동등한 대화나 공감, 정의 등은 다른 세상의 일이라는 듯, 오로지 물리력이든 재력이든 ‘힘(power)’ 있는 사람이 되면 된다는 논리가 지배해 온 지난 10년의 세월이 우리 사회와 가정을 더 깊이 병들게 했을 터다. 또 어른들의 세계에서 ‘힘 있는’ 사람은 문제를 일으켜도 온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 일도 다반사다 보니, 어린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을지 생각하면 참담한 심경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보복적 사법과 정의’가 더 우세하다. 하지만 보복적인 힘은 반드시 파괴적인 힘을 낳는다. 30여 년 동안 가정폭력의 덫에 매여 있었지만 앙갚음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대신 독립적인 존재가 되려는 시도에 나선 박영희 씨처럼, 폭력을 저지른 어린 학생들도 자기가 한 행동이 무슨 결과를 낳았는지 깨닫게 하고 반성하도록 어른들이 나서서 도와주면 좋겠다. 통제는 또 다른 통제를 부를 뿐이기 때문이다.

 

[살레시오 가족, 2017년 11월호(147호), 박은미 원장(품 심리상담센터, empark9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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