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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23: 5세기 (4) 브리타니아 선교와 켈트족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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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09 ㅣ No.938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23) 5세기 ④ 브리타니아 선교와 켈트족 영성


켈트족, 이교도에서 복음 전파의 첨병 되다

 

 

- 2013년 3월 16일 전통 의상과 성 패트릭을 상징하는 복장을 한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3월 17일 ‘성 패트릭의 날’을 기념해 미국 뉴욕 세인트 패트릭대성당을 앞을 행진하는 모습. [CNS]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미국 동북부 지역은 매년 3월 17일이면 온통 초록색 물결로 뒤덮입니다. 아일랜드 국경일이자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아일랜드 주교 파트리키우스(Patricius Hibernorum, 389경~461/92?)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면서 아일랜드 복음화 업적으로 아일랜드 교회의 아버지이자 수호성인으로 존경받았습니다. 그런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 브리타니아 복음화 과정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켈트족(Celts)’을 이해해야 합니다.

 

 

탁월한 종교 심성을 지닌 켈트족

혹시 ‘아스테릭스(Asterix)’라는 만화를 보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마법 물약을 먹으면 힘이 강해지는 아스테릭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며, 기원전 로마군과 싸우는 갈리아 지역 켈트족 이야기를 다룬 20세기 프랑스 만화입니다. 역사적으로 켈트족은 이미 기원전 4세기경 이탈리아를 제외하고 서유럽 대부분을 지배했으며, 로마와 잦은 전쟁으로 교류가 빈번해져 로마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습니다. 따라서 갈리아 및 이베리아 지역 켈트족은 로마 제국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접했으며, 2세기 말에 브리타니아 지역 일부 켈트족도 복음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4세기경 북유럽에서 ‘게르만족(Ger manic Peoples)’이 서유럽 본토로 대이동을 하면서 켈트족 지역은 유럽 대륙의 극히 일부 지역과 브리타니아 지역으로 축소됐습니다. 게다가 5세기경 게르만족의 분파인 ‘앵글족(Angles)’과 ‘색슨족(Saxons)’이 잉글랜드를 점령, 켈트족 지역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등으로 대폭 축소됐습니다. 사실 ‘아서 왕(King Arthur)’의 전설에서 아서 왕은 5세기 잉글랜드를 침략한 게르만족을 막아낸 켈트족의 영웅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켈트족은 종교심이 탁월한 민족이었습니다. 켈트족 사회에는 빛의 신과 저승의 신뿐 아니라, 조상의 신과 보호자의 신이 있었습니다. 또한 켈트족은 신과 인간 사이의 영웅적인 인물들이 왕족을 이루면서 우주적인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며 통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켈트족 여성은 종교 안에서 지도자 반열에 드는 특별한 지위를 지녔습니다. 켈트족 성직자 역시 제사장이기보다 신탁을 전하는 역술가에 가까웠습니다. 켈트족은 영혼 불멸을 믿었으나 인간이 아닌 존재로 환생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인간 영혼이 먼 곳에 있는 신비한 섬들을 여행한다는 많은 전설이 있었습니다.

 

 

금욕적인 수도 생활에 열정을 보인 켈트족 그리스도인

이런 종교 심성을 지닌 켈트족은 개종 이후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열정을 보였습니다. 특히 켈트족 그리스도인은 부족장을 따라 함께 세례를 받았음에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헌신하면서 종교적 열성을 발휘했습니다. 부족장들은 수도원을 설립해 부족 구성원들과 함께 수도 생활을 실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개종 전에 종교 지도자였던 여성도 수도원장이 돼 남녀 공동 수도원을 이끌었습니다.

따라서 켈트족 수도자들은 민족의 종교적 열정에 힘입어 남다른 열성으로 수도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수도 생활 안에서 육체노동을 중요한 요소로 여겼으며, 글을 모르던 자들도 성경을 읽기 위해 라틴어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켈트족 수도자들은 개종 전 금식 전통의 확장 선에서 엄격한 금욕 생활을 실천하며 ‘백색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영성 생활은 개인적인 참회의 삶이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켈트족이 실천한 고해성사 규정에서는 아무리 작은 죄라도 죄의 경중에 따라 상응하는 속죄 행위를 상세하게 구분했습니다.

켈트족 영성에서 또 하나의 특징은 마치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한 것처럼 고향을 떠나는 용기였습니다. 켈트족은 개종 전에 이미 낯선 곳을 여행하는 유랑 생활에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켈트족 수도자들은 자신이 속한 수도원에만 머물지 않고 또 다른 곳으로 과감하게 선교 여행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켈트족 그리스도인의 열정은 많은 이교인들을 복음화시킬 수 있었고, 심지어 유럽 대륙에까지 건너가 나태했던 그곳 그리스도인들에게 종교적인 열정을 불어넣었습니다. 다만 5세기 게르만족의 침략 전쟁을 잊을 수 없었던지, 이후 켈트족 그리스도인은 유독 잉글랜드에 거주하게 된 앵글로-색슨족의 복음화에는 야박했습니다.

 

 

복음화에 박차를 가한 아일랜드 선교사들

브리타니아 지역은 이단설 창시자 펠라기우스(Pelagius Britannus, 350/54경~418 이후)의 고향이며, 켈트족 수도자들이 능동적으로 금욕 생활을 철저히 실천했던 토양 때문에 이단 펠라기우스주의에 쉽게 오염됐습니다. 이에 브리타니아 교회는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때 로마에 머물던 팔라디우스(Palladius Hibernorum, ?~432)는 교황 코일레스티누스(Coelestinus PP. I, 재임 422~432)에게 공동체 수도원을 설립해 엄격한 수도 생활을 실천하던 오세르 주교 게르마누스(Germanus Autissidorensis, 375경~437/48)를 펠라기우스주의를 평정할 특사로 추천했습니다. 교황은 429년 게르마누스를 브리타니아에 파견했습니다. 게르마누스는 브리타니아에서 신앙 성숙을 위해 노력하면서 여러 이단들을 평정했습니다.

한편 431년 교황 코일레스티누스는 팔라디우스에게 주교품을 주고, 그를 아일랜드 지역 선교사로 파견했습니다. 아일랜드 초대 주교로서 팔라디우스는 아일랜드 지역 이교도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함으로써 많은 이들이 개종했습니다. 이후 팔라디우스는 스코틀랜드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픽트족(Picts)에게도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스코틀랜드 그리스도교 가정 출신이었던 파트리키우스는 10대 후반에 해적에게 잡혀 아일랜드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경험을 오히려 회개의 시간으로 여기며, 아일랜드 복음화를 결심했습니다. 먼저 파트리키우스는 게르마누스에게 사제품을 받았고, 432년 주교까지 됐습니다. 마침 아일랜드 복음화를 염려하던 교황 코일레스티누스는 파트리키우스를 아일랜드 선교사로 파견해 아일랜드 초대 주교 팔라디우스의 뒤를 잇게 했습니다. 435년 아일랜드에 도착한 파트리키우스는 아일랜드 이교도들에게 적극적으로 교리를 가르침으로써 많은 사람을 개종시킬 수 있었습니다. 파트리키우스가 세 잎 토끼풀로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한 일화 때문에, 세 잎 토끼풀은 파트리키우스의 상징물이 됐습니다.

 

파트리키우스는 40년 동안 아일랜드를 복음화하면서 여러 지역에 수도원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파트리키우스는 그곳 수도자들과 함께 다시 아일랜드를 거점으로 외국으로까지 선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열성적인 켈트족 종교 심성을 바탕으로 아일랜드 그리스도인들은 훗날까지 선교사로서 열정을 발휘하며 오히려 유럽 대륙에 나태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경종을 울렸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5월 7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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