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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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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23 ㅣ No.357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

 

 

- ‘성 스테파노의 순교’, 현대 러시아 이콘.

 

 

성령강림 이후 사도들의 전교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세례자들의 수가 늘고 교회 공동체도 커졌다. 그러자 사도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에만 헌신할 수 있도록 사도들의 사목을 도와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고아와 과부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일 등을 전담할 ‘영혼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사도 4,1-7) 안수와 기도를 통해 품을 줬다. 이들 ‘봉사자’들은 ‘부제’(Diakonos)라고 불리고, 이는 초기교회의 중요 성직 제도의 하나로 정착하게 된다. 이렇게 최초의 부제품을 받은 이들 중의 한 명이 바로 스테파노다. 스테파노는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힘을 가득히 받아 백성들 앞에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많이 행했다. 특히 키레네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유다인들로 구성된 일명 ‘자유인의 회당’에 속한 몇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는데, 그들은 성 스테파노를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사람을 매수해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사도 6,8-15).

스테파노는 체포돼 의회에서 심문을 당하며 자신을 변호하는 설교를 하게 되는데(사도 7,1-53), 의회 의원들은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올라 그를 성 밖으로 끌어내 돌로 치게 했다. 스테파노는 돌에 맞으며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하느님의 영광이 보이노라’라고 말하고 순교했다. 이로 인해 스테파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최초의 순교자가 됐다(사도 7,54-60). 스테파노가 돌로 맞았다고 전해지는 장소인 예루살렘 성벽 밖 다마스커스 성문의 북쪽엔 430~440년경 에우독시아 황후가 스테파노를 기리며 세운 성당이 있다.

사도행전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스테파노를 장사지냈다고 언급돼 있으나, 그의 무덤이 어디인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415년 8월 3일 사제 루치아누스가 예루살렘에서 15km 떨어진 카프르 가말라에서 스테파노의 유해를 발견했는데, 이 유해는 스페인의 메노르카, 아프리카의 히포와 예루살렘, 시온,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로마 등으로 나눠 전해졌다. 그리고 이들 각 도시엔 성 스테파노 기념 성당이 건축됐고, 이 성당들에 보관된 스테파노의 유해를 통해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스테파노의 성화는 서방교회에서는 부제 제의인 달마티카를 입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한다. 동방교회에서는 흰색의 장백의 위에 한쪽 어깨에 영대를 걸치고 그 끝자락을 왼손에 잡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오늘날 동방교회의 예식에서는 부제들이 이와 같은 복장과 이와 같은 자세로 기도를 바친다.

 

*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 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총대주교청 직할 신학교에서 ‘비잔틴 전례와 이콘’ 과정 등을 수학한 후 디플로마를 취득, 이콘 화가로도 활발히 활동해왔다.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가톨릭신문, 2017년 4월 23일,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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