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우리 사이에 계시는 하느님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05 ㅣ No.889

[민범식 신부의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우리 사이에 계시는 하느님


내 삶 속 경험과 기도로… 보이지 않는 주님을 생생하게 체험

 

 

찬미 예수님.

 

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연휴 동안 가족과 함께 또 하느님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 시시콜콜하게 잘 나누셨어요?

 

지금까지 기도에 대해서, 하느님과의 만남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있지요. 그런데 오늘은 잠깐 다른 이야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미 눈치를 채신 독자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를 드립니다. 신학교에서 학생들과 있었던 일이나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체험들을 종종 예로 들지요. 그런데 이런 모습에 대해서,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왜 자꾸 사람들 사이의 일을 이야기할까?’라는 의문을 갖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라고 하더라도 하느님은 하느님,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왜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인간의 이야기도 같이하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또 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을 통해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듣고 배웁니다. 하지만 그게 참 쉽지가 않죠.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부터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 시간을 정해 놓고 성당에 가서 성체 조배를 하거나 아니면 집에서라도 성경을 읽고 매일 기도를 시작하지만, 얼마 못 가서 그런 결심을 못 지키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신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종종 말하지요. ‘매일 기도를 하겠다고 기도방에 앉아있기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것 같고 그럼 그 시간이 무료하게 느껴져서 자꾸 기도 시간을 줄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기도를 빼먹는 날도 생기고 그러다가 끝내는 기도를 안 하게 됩니다.’ 우리는 왜 그럴까요?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러한 어려움은 사실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시지 않고 또 우리 손에 만져지지도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귀로 들을 수 없고 그분의 움직임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감각 경험, 곧 오감을 통해서 자신 앞에 있는 상대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존재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 내 눈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죠? 부모님이든 배우자든, 자녀든 연인이든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은 그 사람의 따스한 눈빛, 다정한 말투, 나를 안아주고 등을 어루만져 주는 움직임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이나 그 사랑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다른 무언가를 통해서만 상대방의 마음과 사랑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상대방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거나 그 말투가 무심하다거나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우리는 금세 그 사랑을 의심하게 됩니다. ‘어,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 맞나?’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내가 뭘 잘못했나?’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금세 그 사랑을 모르게 되는 우리의 모습이죠. 이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서 관계를 맺을 때 그 사람과 나를 이어주는 어떤 매개체, 곧 우리 오감을 통해서 중개되는 감각 경험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어떨까요? 하느님과 만나는 데에도 이런 매개체가 필요할까요? 답은 ‘그렇습니다’와 ‘아닙니다’ 둘 다입니다. 먼저 이런 매개체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순수하게 영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감각 경험을 통하지 않고서도 우리를 만날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성인들의 삶에서 보게 되는 아주 깊은 영적 체험들, 곧 탈혼 상태나 관상의 상태가 그러한 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태는 하느님과의 만남이 아주 깊어졌을 때, 다시 말해 우리가 영적으로 아주 많이 성장한 단계에서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 일상에서 쉽게 일어나지는 않죠.

 

기도 생활의 맛을 느끼면서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사실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느님과 대화하겠다고 성체 앞에 자리 잡고 앉아보지만, 하느님은 보이시지 않죠. 일상의 삶 안에서 예수님과 시시콜콜히 얘기한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도 들려주시지 않고 그저 나 혼자서만 떠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매개체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입니다. 일상에서 겪는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아, 하느님이 이런 분이시구나.’ ‘하느님이 이렇게 나에게 말씀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직접적인 영적 체험은 아니지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힌트를 우리에게 주는 체험들입니다. 그래서 저도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며 계속해서 우리들의 인간적인 체험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경험들에 비추어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듣는 데 있어서 이런 인간적인 경험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보다 먼저 알고 계셨던 분이 계십니다. 누구실까요? 네.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려고 끊임없이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하느님을 잘 알아듣지 못했죠. 그래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셨죠? 우리 신자분들께서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몸소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가 하느님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질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 성탄의 신비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제는 우리 곁에 보이는 모습으로 계시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우리는 일상 안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 예수님을 나의 일상, 내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것!

 

오늘 내가 겪게 되는 하루, 그 안에서의 체험들을 통해 하느님을 어떻게 만나게 될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 민범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영성신학 박사와 심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신문, 2017년 2월 5일, 민범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1,597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