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79: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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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01 ㅣ No.873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79)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⑫


하느님의 빛으로, 순수한 눈으로 세상 바라봐야

 

 

하느님의 은총 활동에 개방적인 영혼

 

성녀 엘리사벳은 ‘영광의 찬미’를 사는 영혼은 언제나 은총의 활동 속에 있는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삶의 주인이 아님을 잘 알기에 하느님께 삶의 주도권을 넘겨드리고 그분 친히 자신을 인도하도록 맡겨드립니다. 그리고 그분의 은총이 자신의 삶에 쉽게 스며들도록 자신을 온전히 개방하며 살아갑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계획을 온전히 이루시고자 섭리적으로 이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하는 매번의 행동과 움직임 그리고 생각과 열망은 그를 더 깊이 사랑 안에 뿌리내리게 하며 그럼으로써 그는 영원한 지성소의 메아리처럼 드러납니다.”

 

 

영광의 찬미와 침묵 간의 관계

 

또한 성녀는 「마지막 피정」 둘째 날에서 ‘영광의 찬미’와 ‘침묵’ 간의 관계를 더욱 상세히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시편 118편 109절에 보면 “내 영혼은 언제나 내 손안에 있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성녀는 이 구절을 바탕으로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내 영혼은 언제나 내 손안에 있습니다.” 성녀에 따르면 이 말은 평화 자체이신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조율하고 통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성녀는 수도회 규칙 중에 “여러분의 힘은 침묵 가운데 있습니다”라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보기에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힘을 보존한다 함은 내적인 침묵을 통해서 자기 전 존재를 온전히 하나로 통일함을 일컫는 것이며 모든 능력이 오직 사랑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하나로 모으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성녀는 우리 영혼의 모든 능력을 하나로 모아 사랑하는 데 집중하도록 하는 것을 침묵의 역할로 보았습니다.

 

 

‘순수한 눈’을 갖는 영혼

 

계속해서 성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한 그것은 하느님의 빛으로 우리를 비추어주는 ‘순수한 눈’을 갖는 것이기도 합니다.” 영광의 찬미를 지향하는 영혼은 침묵하는 영혼이고, 무엇보다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모든 사건과 사물, 사람을 바라보는 영혼의 ‘순수한 눈’을 갖는 사람이라고 성녀는 보았습니다. 

 

그러면 성녀가 말하는 ‘순수한 눈’이란 무엇일까? 성녀는 「믿음 안에서 천국」 21번에서 ‘순수한 눈’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가져야 하는 ‘지향의 순수함’이라고 말합니다. 사람과 사물, 사건을 대함에 있어 하느님의 빛 안에서 순수한 지향으로 그것을 대할 때, 그 사람과 사물 그리고 나는 서로에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실현하며 서로의 성화를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되고, 그렇게 쓰일 때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영혼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순수함은 하느님께 영예와 찬미를 드리며 동시에 덕을 소개하고 전해줍니다. 그리고 자신과 모든 피조물을 관통하고 초월하는 가운데 자신의 심연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이 순수함은 덕들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며 이 덕들의 광채이자 영광입니다. 저는 모든 사물을 하느님과 연관 짓는 가운데 하느님만 바라보는 것을 순수한 지향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단순하고 통일된 영혼

 

그래서 성녀는 ‘침묵’하는 영혼이 갖는 특징으로 ‘단순함’과 ‘통일성’을 제시했습니다. 영혼이 침묵하게 되면 단순해지고 영혼의 모든 현(絃)이 고르게 정돈돼서 하느님이 언제든 연주하기 위해 그 줄을 건드리시면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도록 정돈됩니다. 초대 교회 당시 광야에 나가서 은수생활을 하던 수도자들은 완덕에 이른 특징들을 꼽으며 그중에 대표적으로 ‘단순함’에 대해 말하곤 했습니다. 

 

쉽게 말해, 어떤 사람이 완덕에 이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에 대한 지표를 ‘단순함’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심(私心)이 있는 사람은 생각이 많고 복잡합니다. 반면,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생각과 원의 그리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는 사람은 존재 전체가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삶이 단순하고 생각도 단순 명료합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자신과 논쟁하는 영혼은 자신의 감각에 묶여 있으며 무익한 생각들을 비롯해서 별의별 원의를 다 뒤쫓습니다. 그런 영혼은 자기 힘을 흩어버릴 뿐, 결코 하느님을 향해 모든 것을 정돈하지 못합니다. 그의 가야금은 조화로운 화음을 연주할 수 없을뿐더러 스승님께서 그 가야금을 타고자 하실 때 신적인 하모니가 울려 퍼지게 할 수도 없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월 1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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