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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장기 기증: 내 생애 마지막 선행이 생명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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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12 ㅣ No.1344

[위령 성월 특집] 장기 기증 - 내 생애 마지막 선행이 생명 살린다

 

① 장기 기증, 왜 참여해야 하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인 죽음, 그 죽음을 묵상하며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 성월. 

 

2009년 2월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각막 기증을 통해 모범을 보였고, 이후 교회의 장기 기증은 한동안 붐을 이뤘다. 하지만 이제 김 추기경의 삶과 모범은 잊히고,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도도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셨듯이 우리도 내어주고 이웃과 나눔으로써 그리스도를 본받자는 뜻에서 시작된 한마음한몸운동은 기도와 헌혈(장기 기증), 입양ㆍ결연, 헌미, 봉사 등 다섯 가지 실천 사항으로 구체화돼 28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를 기억하며 오는 2018년 30주년을 맞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장기기증센터와 공동 기획으로 성체성사의 삶을 실천하기 위한 장기기증운동에 교회가 왜 참여해야 하는지, 교회 내 장기기증운동의 현황은 어떠한지, 장기 기증 참여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희망을 주는지 살핀다.

 

 

세상 떠난 자녀, 이웃에게 새 생명 선사

 

2013년 3월 30일. 송종빈(61)씨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당시 36세의 딸 아신씨가 교통사고를 당한 날이어서다. 사고 연락을 받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딸은 이미 상태가 아주 나빴다. 아이를 살리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지 나흘 만에 딸은 ‘뇌사’ 판정을 받았다. 조심스럽게 다가온 장기 기증 코디네이터의 장기 기증 안내에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특수교육학을 전공한 데다 평소에도 늘 유기견을 돌보고 친구들을 배려하는 삶을 살면서 장기 기증을 하겠다고 말해왔던 딸의 의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 딸의 신장은 만성신부전으로 고생하던 20대 여성에게 이식됐다. 다행히 이식 수술은 성공했고, 그 뒤로 그는 한국장기기증원이 주선하는 행사나 인터뷰에 유족 대표로 적극 참여했다. 생명의 소리 합창단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장기 기증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자식을 앞세우고 나서 ‘아버지, 정말 보람있게 여생을 살다 오셔야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그래서 저도 장기 기증을 하겠다는 서약을 했습니다. 장기 기증이 꼭 성사되도록 술을 끊고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니다. 요즘 제 기도는 뇌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아울러 딸을 기억하며 강원도 정선 여량고등학교에 만든 아신문고에 책을 보내는 일, 지난 10월 설립한 아신장학회를 통한 장학금 전달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지난 2014년 7월, 지주막하 출혈로 입원했다가 열흘 만에 뇌사 판정을 받고 장기를 기증한 아들 박준이씨의 엄마 임귀녀씨도 “생전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장기 기증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떠올려 그 약속을 지켜주기 위해 장기 기증을 실천했다”며 “우리 아들이 그랬듯이 저도 아들의 장기를 기증받은 분이 건강하기만을 매일 아침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분도 받은 생명을 잘 쓰다가 이 세상 떠나는 날, 또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덧붙였다.

 

 

대기 환자 2만 7000여 명, 기증자 2500여 명

 

그러나 장기 기증자 수는 대기자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대기 환자는 2만 7000여 명에 이르지만, 장기 기증자는 2500여 명에 그친다. 기증자 1명이 최대 9명을 구할 수 있는 뇌사 기증자는 전체 대기자의 2%, 400여 명 안팎에 그친다. “장기 기증은 아주 축복받은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죽은 뒤의 장기 기증은 훌륭하고 칭찬받을 일이며 헌신적 연대의 표징으로 장려돼야 한다”(2296항)고 권고한다. 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회칙 「생명의 복음」 86항에서 “특히 칭찬할 만한 예는 윤리적으로 합당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장기 기증”이라며, 장기 기증은 사랑과 친교에 대한 우리의 본질적 소명을 표현하는 자기 증여의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평화신문, 2016년 11월 13일, 오세택 기자]

 

 

② 교회 안팎 장기 기증, 어떻게 되고 있나

 

 

벼랑 끝 삶의 희망된 장기 기증

 

8년간 신부전증으로 투병했던 최순복(55)씨는 지난 2일 새로 태어났다. 뇌사한 48세 여성의 신장을 이식받아 건강을 되찾았다. 하루 4차례씩 해야 했던 약물 투석도, 투석 중 감염돼 복막염으로, 때론 더 악화돼 혈액 투석을 해야 했던 고통에서 벗어났다. 아무리 투석을 해도 피곤했던 일상도 이제는 활력이 넘친다. 올해 1월 사랑했던 남편을 암으로 여의고 세 자녀가 혼인할 때까지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일도 꿈만 같다. 고통을 견디며 희망을 잃지 않았던 8년간의 기다림이 가져다준 축복이다.

 

“두 번이나 죽었다가 살아났지요. 심장이 멎어 두 시간 넘게 심폐소생을 해서 살아나기도 했고, 신장 투석에 따른 복막염 악화로 중환자실에 실려가기도 했어요. 그러니 얼마나 고맙겠어요? 기증해 주신 분이나 유족들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잘 사는 게, 오래 건강하게 살다가 가는 게 보답하는 길이겠지요. 저 또한 훗날 한 사람이라도 살리는 장기 기증에 참여해 생명 나눔을 실천하고 하늘로 떠나고 싶습니다.”

 

2014년 2월, 뇌사자의 심장을 이식받아 다시 살아난 홍광진(40)씨도 심부전 말기 환자였다. 장기 기증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건강하게 두 아이의 아빠로, 남편으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갈 수 없었을 터다. 하지만 심장 이식 덕에 그는 2년 8개월 동안 건강하게 직장 생활을 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기증자나 유족들께서 기증해 주시지 않았다면, 살아 있을 수 없는 삶이니까, 더 열심히 살고 있다”며 “(장기 기증을) 받아서 살아난 생명이니 건강이 허용하는 한 저도 꼭 장기 기증을 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한다.

 

 

기약할 수 없는 기다림

 

장기 이식을 통한 사랑의 생명 나눔은 더디지만 계속 늘고 있다. 특히 뇌사자 장기 기증은 지난 2006년 141명에서 2015년 501명으로 10년간 3.55배가량 늘었다. 반면 2009년 2월 고 김수환 추기경의 안구 기증으로 일시적으로 급증했던 사후 안구 기증은 2009년에 193명에서 2013년 82명, 2014년 73명, 2015년 60명으로 계속 줄었다.

 

문제는 기증 대기자가 늘고 있는 만큼 뇌사나 사후 기증에 따른 장기 기증자가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국내 장기 이식 대기자는 2000년 2840명에서 2013년 2만 1901명으로 7.7배나 늘어났고, 2014년 2만 151명, 2015년 2만 1979명, 2016년 3월 현재 2만 2645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안구 이식 대기자 또한 2000년 1994명에서 2013년 1687명, 2014년 1695명, 2015년 1822명, 2016년 3월 현재 1874명이나 된다.

 

이에 정부는 뇌사자 발굴에 대한 의료 기관 인센티브 허용(2007년), 뇌사 판정 대상자 관리 기관 지정 기준 완화(2008년), 독립 장기 구득 기관ㆍ뇌사 추정자 신고 의무화ㆍ뇌사 판정 절차 간소화ㆍ유가족 동의 요건 완화(2011년), ‘장기 기증 관리 체계 개선 방향’ 마련(2012년) 등을 통해 뇌사 기증 활성화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 뇌사자 장기 기증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뇌사자 장기 기증은 인구 100만 명당 8.44명에 그쳐, 스페인 35.12명이나 미국 25.99명, 영국 20.77명, 이탈리아 22.23명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부족하다.

 

2009년 장기이식센터를 중점 육성 센터로 지정한 서울성모병원도 상황이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연간 신장 이식은 160건(국내 2위), 간 이식은 60건, 심장 이식은 2건 정도 되지만, 이식 대기자는 신장 이식의 경우 1000여 명, 간 이식 500여 명, 심장 이식 1000여 명이나 된다.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KONOS)의 장기이식정보시스템을 통해 수혜자 선정이 이뤄지기에 이식 절차는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이뤄지지만, 뇌사자나 사후 안구 기증자가 워낙 부족해 이식 대기 기간이 계속 늘고 있다. 몇 년이 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장기 이식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김해정(아셀라)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장기이식운영팀장은 “가족이나 친척을 통한 생체 이식의 부작용도 있기에 뇌사자나 사후 장기 기증이 바람직하지만, 아직 장기 기증은 기증도 부족할뿐더러 배분 절차가 까다롭다”고 말한다. 특히 “뇌사자가 언제 생길지, 또 뇌사자가 생겨나도 조직적합성 검사에서 자신에게 맞을지, 이식 비용은 또 얼마나 될지 걱정하고 불안에 떨면서 기다리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우리나라도 이제는 뇌사자나 사후 장기 기증의 활성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평화신문, 2016년 11월 20일, 오세택 기자]

 

 

③ 장기 기증, 그 참여의 기쁨과 희망

 

 

장기 기증의 또 다른 이름 기쁨

 

처음엔 ‘좋은 일이니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4∼5년 전 장기 기증에 참여했다. 물론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일은 아니었다. 혼자 생각하고 결정한 뒤 장기 기증자로 등록했다. 

 

하지만 막상 자녀들은 “엄마가 우리한테 아무 말 없이 장기 기증을 약속했다”며 유영희(가타리나, 71, 서울대교구 한강본당)씨에게 서운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런데 얼마전, 유씨를 비롯해 장기 기증자 유족과 수혜자, 등록자가 모두 함께하는 생명의 소리 합창단 정기 공연을 관람한 것을 계기로 자녀들이 생각을 바꿔 자신들도 장기 기증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이들이 자신도 장기 기증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걸 들으며 기뻤어요. 막연하게 참여했던 장기 기증을 계기로 들어가게 된 생명의 소리 합창단에서 기증자 유족, 수혜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장기 기증에 대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바뀌었어요. ‘대체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준다고나 할까요?”

 

대학원생인 이정석(대건 안드레아, 27)씨는 헌혈을 하다가 장기 기증에까지 관심을 두게 돼 등록한 경우다. 고교 때 헌혈을 했다가 비만으로 간 수치, 곧 간 손상을 나타내는 효소의 수치가 다른 사람들보다 3배나 높게 나와 그 뒤로 헌혈도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살을 빼고 나서 보건소에서 헌혈해도 괜찮다는 진단서를 받아 꾸준히 헌혈해 온 게 장기 기증자로 등록하는 계기가 됐다. 

 

헌혈 횟수가 76회나 되는 이씨는 “저도 그렇지만 원래부터 가족들이 봉사나 생명 나눔, 사회 공헌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며 “그래서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띠앗누리 봉사도 하고 인근 적십자사에서 헌혈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장기 기증자 희망 등록도 했고, 장기 기증에 대한 생각도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 바꿔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예전엔 ‘장기매매’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면, 최근엔 ‘생명 나눔’에 참여한다는 의식이 더 높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보건소, 시민단체. 종교기관들의 장기 기증운동 덕분이다. 

 

장기 기증을 홍보하고 등록하는 캠페인 부스에 가 보면,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걸 확연히 알 수 있다. 

 

“그간 (장기 기증 등록)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등록하고 가야겠다”면서 자발적으로 장기 기증에 참여하는 시민이 늘었다. 

 

덕분에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등록된 장기 기증 희망 등록자 누적 현황을 보면, 124만 9521명에 이른다. 이중 한마음한몸장기기증센터를 통해 등록한 장기 기증 희망자도 14만 798명이나 포함돼 있다. 중복 등록자도 없지 않지만, 예전에 비해 인식 자체가 바뀐 것은 확실하다. 

 

이런 분위기는 대학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해마다 조혈모세포 기증 캠페인을 벌여 오던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는 지난해부터 한마음한몸장기기증센터와 함께 장기 기증 캠페인도 펼치는데, 대학가 참여도가 점차 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소재 7개 대학에서 8차례 캠페인이 진행돼 97명이 장기 기증 희망 등록을 했는데, 올해는 벌써 12개 대학에서 17차례 캠페인이 열려 지난해의 2.5배가 넘는 257명이 장기 기증을 약속했다.

 

어르신이나 대학생뿐 아니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생명 나눔 교육도 이뤄져 호응이 높다. 3년째 한마음한몸장기기증센터 주관으로 성남중학교에서 이뤄지는 생명윤리 교육은 그간 나쁜 것, 혹은 무서운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장기 기증을 아름다운 것, 의미 있는 것으로 보도록 가치관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장기기증센터 정현수(요한 보스코) 소장은 “어릴 때부터 생명 나눔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어야 나중에 장기 기증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에 젊은이들과 학생들로 교육 범위를 넓히고 있다”며 “장기 기증 희망자 모집뿐 아니라 생명 나눔에 대한 인식 전환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톨릭평화신문, 2016년 11월 27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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