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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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가족 여정: 들을 청(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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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12 ㅣ No.968

[가족 여정] 들을 청(聽)

 

 

러시아 출신의 신경정신분석학자 루안 브리젠딘(Louann Brizendine)은 자신의 저서 「여자의 뇌(The Female Brain)」에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자는 하루 평균 약 7천 단어 정도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를 모두 쓰게 되면 만사가 귀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 반면 여자는 남자의 약 세 배 정도 되는 2만 단어를 사용하고, 하루에 2만 단어를 모두 쓰지 못하게 되면 스트레스와 짜증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여자는 한 마디를 백 마디로 말하고, 남자는 백 마디를 한 마디로 말한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말하고 싶은 여자 : 쉬고 싶은 남자

 

이 연구결과를 가정생활에 연결해 보면 이렇습니다.

 

남편은 보통 자신의 직장에서 하루에 쓰게 되는 7천 단어보다 훨씬 많은 말을 한 뒤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온 남편은 일단 조용히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그 반면 아내는 자신의 직장에서 아무리 말을 많이 하더라도 하루에 써야 할 2만 단어의 절반도 쓰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서 살림을 도맡는 전업주부인 경우 더더욱 말할 기회가 적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남편의 눈과 딱 마주치는 순간 이것저것 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결국 남편은 조용히 쉬고 싶은데, 아내는 이것저것 얘기를 하고 싶은 상태가 되고, 이로 말미암아 부부갈등이 생겨나기 쉽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가위바위보를 해서 정할까요? 하루씩 서로가 원하는 것을 번갈아하는 것이 좋을까요? 한쪽이 그냥 포기하고 사는 게 좋을까요?

 

물론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럴 때 가장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모범답안을 하나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경우 남편이 키를 쥐고 다음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저것 얘기하고 싶어 하는 배우자의 눈을 따뜻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아내가 말을 하는 동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끔 다음과 같이 한마디씩 맞장구 쳐 주면 됩니다.

 

“그랬어?”, “그랬구나!”, “아이쿠~ 저런!”, “그래서 어떻게 됐어?”, “하하하, 재밌네!”, “또 하고 싶은 얘기 없어?”

 

모두 합쳐봐야 몇 단어 되지 않음에도, 이 말은 아내의 마음에 큰 지각변동을 일으킵니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정말 배려받는 느낌, 사랑받는 느낌을 받게 되고, 자신이 받은 배려와 사랑을 남편에게 이자를 듬뿍 쳐서 되돌려줄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부부관계는 베풀수록 커지는 사랑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루카 6,31).

 

 

말하기보다 듣기가 훨씬 힘든 일

 

그런데 사실 이게 말이 쉽지 실천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게 뭐 그리 힘들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각각 소모하는 에너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말을 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의 에너지가 무려 두 배 가까이 소모됩니다. 곧,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것이 수많은 말을 쏟아내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훨씬 힘든 이유는 뭘까요?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올려놓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눈이 다른 곳을 보기 쉽습니다. 조금만 딴생각하면 상대방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얘기를 듣다가 지루해지면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싹둑 잘라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느닷없이 농담을 던지거나 엉뚱한 얘기를 하며 대화의 주제를 바꿔놓고 싶어집니다. 또는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 일방적인 충고와 조언을 쏟아붓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면 이런 욕망과 이기심을 모두 내려놓고 온전히 상대방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하기보다 듣기가 훨씬 힘든 겁니다.

 

앞서 남편이 아내의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들어줘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때 아내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남편이 아내의 얘기를 듣는 동안 두 배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쏟아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아울러 자신의 얘기를 귀담아들어준 남편에게 반드시 고맙다는 표현을 해야 합니다.

 

특히 남자들은 결과에 민감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칭찬을 받으면 그 행동이 더 강화됩니다. 곧, 아내가 남편의 듣는 태도에 대해 칭찬할수록 귀담아듣는 행동이 강화된다는 말입니다.

 

남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비난을 받으면 그 행동을 수정하려기보다는 아예 포기해 버립니다. 곧 아내가 남편의 듣는 태도에 대해 비난하면 할수록 남자는 아예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으려고 하기 쉽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야고 1,19).

 

 

聽(들을 청)

 

이 글자는 ‘듣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함축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글자를 자세히 보시면, “하나부터[一], 열까지[十], 눈과[目], 귀와[耳], 마음을 다해[心], 상대방을 왕으로 대하라[王].”는 뜻을 품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듣는 게 힘든 것 같습니다. 내가 왕이 아니라 듣는 상대방을 왕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이 말의 진정한 뜻은, 하나부터 열까지 눈과 귀와 마음을 다해 주님을 임금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주님의 말을 경청하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경청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과 영혼을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입은 하나, 귀는 둘로 만드신 이유는 말하기보다 듣기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랑을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입이 아닌 귀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聽(청)하세요!

 

* 권혁주 라자로 - 한 여인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로서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여정」, 「부부여정」 등의 가족관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11월호, 글 권혁주 · 사진 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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