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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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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청소년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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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15 ㅣ No.60

[가톨릭청소년 성교육] (1) 미디어 리터러시가 필요한 시대

 

 

‘미디어 시대’, 청소년들의 성(性)적 가치관 또한 일상에서 보는 매체들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 매체들은 이미 왜곡된 소비주의와 자본주의 등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된 경우가 부지기수다. 청소년들을 위한 가톨릭적 성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특별히 다양한 매체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올바로 이해하고 식별하는데 도움을 주는 ‘미디어 리터러시’ 과정을 성교육에 포함해야 하는 대표적인 이유다. 5월 청소년의 달을 맞아, 이번 호부터 4회에 걸쳐 올바른 미디어 리터러시를 통한 ‘가톨릭 청소년 성교육’에 관한 제언을 소개한다. 필자인 이광호 소장은 이러한 흐름을 거슬러 교회 안팎에 ‘생명의 문화’를 확산하는 노력의 하나로, ‘미디어 시대의 성교육’ 기초 및 심화 과정을 비롯한 다양한 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가톨릭 성교육은 ‘생명’, ‘책임’, ‘인격’, ‘절제’, ‘정결’ 5가지 주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를 알려주려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야만 한다. 상업적 매스미디어가 이 5개 주제에 대해서 교묘한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상업적 영상물들은 성적 결합이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자연법적 사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성에는 마치 즐거움과 로맨스만 있는 것처럼 속이는 것이다. 성이 생명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니, 성과 사랑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남녀 사이의 인격적 관계, 상업적 매스미디어들은 이 또한 상당히 왜곡해 보여준다. 인격적이지 않은 폭력적 관계를 낭만적인 사랑인 것 마냥 묘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디어가 성과 관련하여 ‘생명’과 ‘책임’은 아예 안 보여주고, ‘인격’은 상당히 왜곡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와 소비주의가 결합된 미디어는 ‘절제’하면 안 된다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심어주고 있다. 욕망이 생기면 곧바로 소비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절제는 구시대적 ‘억압’이라고 강조한다.‘정결’은 과거의 악습이라고 말하면서 버려야할 가치라고 폄하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를 시켜야만 자본이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쾌락 일변도의 성의식이 강하고 빠르게 확산되면서 이른바 ‘성을 즐기되 임신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는 상황이다. 그 결과 피임 산업은 크게 성장했고 10대 청소년들의 성관계를 조장하는 듯한 광고까지 등장하는 실정이 되어버렸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해석’과 ‘행동’을 요구하는 시대의 징표다. 선한 영을 선택하고 악한 영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식별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 반드시 요구된다. 특히 음란의 영이 소비주의와 그 광고 매체를 활용해 정교하게 거짓말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죽음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 미디어 리터러시란?

다양한 매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으로,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가톨릭신문, 2016년 5월 8일, 이광호(베네딕토,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겸 생명문화연구가)]

 

 

[가톨릭청소년 성교육] (2) 영적 존재에게 필요한 성교육

 

 

그것은 인간을 바라보는 깊이다. 가톨릭 성교육은 인간을 영적 존재로 바라보는 반면, 세상의 성교육은 인간을 생물학적 존재로만 파악하거나 좀 더 나아가서 심리적 존재로만 이해한다. 그리고 각각의 성교육은 인간을 이해하는 깊이 수준만큼의 내용을 청소년들에게 제공하는데, 생물학적·심리학적 성교육은 이점에서 많은 한계를 가지면서 청소년을 오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사춘기가 되어서 성적 욕구가 생기고 또 이성교제를 시작했다. 스킨십 진도가 나가면서 성관계를 하고 싶은 욕망이 커졌지만, 임신이 문제다. 그러나 콘돔과 피임약으로 임신을 막을 수 있으니 성관계를 해도 좋다. 성적 자극이 왔을 때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생물학적 성교육, 즉 인간을 동물과 같은 층위로 보는 교육인데, 피임 산업과 그 후원을 받는 피임 교육이 이 위치에 있다. 

 

“남녀는 성심리와 성행동에 큰 차이를 보인다. 이 차이를 서로 잘 이해해야만 오해 없이 성적 만족을 누릴 수 있다. 성관계는 강요되어서는 안 되지만, 남녀가 합의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기도 하다. 성적 쾌락을 통한 행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심리적 입장의 성교육이며, 많은 성교육이 이 입장을 견지하면서 피임 교육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성교육의 한계는 무엇일까? 성이 인간의 삶과 결합되어 있는 큰 그림은 감추어 놓고 극히 일부만 보여주면서, 성적 쾌락을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로만 인식시킨다는 점이다. 자극적인 문화 환경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이 이런 성교육을 받게 되면 성관계를 재미있는 놀이로 여기게 되고, 성관계 문턱을 쉽게 넘는다.

 

이처럼 성관계를 쉽게 맺게 될 때 어떤 문제가 생길까? 

 

단순히 낙태만이 문제가 아니다. 호기심에 이끌려서 맺은 성관계는 영혼 안에 악을 불러들이고, 이 악은 두 사람의 영혼에 큰 상처를 입히면서 후손에까지 이어진다. 낙태나 영아유기 등을 하게 되면 이 상처는 더 깊어진다. 이런 일들은 사람이 자신이 영적 존재임을 망각하고 그래서 스스로를 본능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또 성과 관련된 영적 원리를 알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누군가가 교묘하게 속인 것이다. 

 

가톨릭 성교육은 영적 존재인 인간에게 성에 포함된 영혼에까지 미치는 심대한 책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성과 인생이 결합되어 있는 큰 그림을 현세만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까지 깊이 있게 인식시켜서 인간이 동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숨결(영)을 품고 있는 영적 존재임을 자각시키고, 하느님 자녀로서의 품위와 특권을 회복시키는 교육이다. 이것이 가톨릭교회가 모든 신자와 세상에 제공해야 하는 성교육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5월 15일, 이광호(베네딕토 ·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겸 생명문화연구가)]

 

 

[가톨릭청소년 성교육] (3) 악한 영의 움직임을 거부하는 성교육

 

 

가톨릭교회가 영적 차원의 성교육을 체계적이고 정밀하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기쁨」에서 당부한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 

 

“하느님 나라의 열매가 될 수 있는 것과 하느님 계획에 어긋나는 것을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선한 영과 악한 영의 움직임을 알아보고 식별하는 것만이 아니라, 선한 영의 움직임을 선택하고 악한 영의 움직임을 거부하는 것도 결정적으로 포함됩니다.”

 

성교육과 관련하여 악한 영의 움직임을 알아보고 식별하고 거부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는 친부모로부터 버려져 입양된 사람이다. 그의 생부모는 모두 지식인 엘리트였지만, 혼인과 가정 등의 장기적인 인생 계획이나 책임과는 무관하게 성관계를 맺었고, 잡스를 임신했다. 생부는 잡스를 버렸고, 생모는 임신 중에 입양을 결정했다. 생모는 임신 기간 내내 낙태를 고민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태중의 잡스에게도 그 고통이 그대로 전달되어 영혼과 무의식에 큰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이렇게 태어나자마자 생부모에게 버려진 잡스는 자신이 받았던 그 상처를 똑같이 반복한다. 생부가 자신을 버린 그 똑같은 나이(23세)에 잡스도 혼인과 무관한 관계에서 딸을 낳고는 버렸던 것이다. 나중에는 딸에 대한 책임을 지지만 딸의 존재를 인정하지고 않았고, 엄청난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양육비도 교육비도 주지 않았다. 이 딸도 태중부터 청소년 시절까지 아버지 내면에 있던 그 상처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다. 

 

태중에서부터 버려졌다는 분노와 복수심이 그의 삶 상당 부분을 설명해준다. 딸에게만 그 상처를 반복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설립한 회사 애플에서 밀쳐내진 후 그 분노 에너지로 재기하고 애플에 재입성하여 복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업 면에서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마음 속 가득한 분노와 복수심이 그를 상하게 했고 그는 결국 암으로 단명했다. 

 

문제의 뿌리는 잡스 생부모의 책임이 결여된 혼인과 무관한 성관계에 있었고, 이 죄와 상처에 악한 영이 개입하여 버림받고 분노하고 복수하는 죄의 굴레를 잡스와 그 자녀들에게 씌워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임 없는 성관계가 당사자만이 아니라, 자녀와 손자 세대까지 똑같은 패턴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성과 연관되어 있는 ‘악한 영의 움직임’이다.

 

그런데 이 시대는 책임 없이 즐거운 놀이처럼 성관계를 하라고 청소년들을 부추긴다. 악한 영이 미디어와 문화를 통해서 아이들을 휘어잡고 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유혹에 이끌려서 죄의 굴레를 쓰고 있다. 이런 악한 영의 움직임을 확인·식별하고 거부하는 것이 가톨릭 성교육이다. 이 교육이 가능하려면 성령의 빛과 함께 그 빛의 인도를 받는 지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톨릭신문, 2016년 5월 22일, 이광호(베네딕토 ·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겸 생명문화연구가)]

 

 

[가톨릭청소년 성교육] (4 · 끝) 성교육과 영적 싸움

 

 

하느님은 인간을 성적 존재인 남녀로 창조하셨고, 남녀가 결합해 새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이는 천사들에게는 허락되지 않고, 인간에게만 베풀어진 특은이다. 성적 결합과 생명의 잉태·출산은 표면적으로는 생물학적 현상으로 보이지만 영육의 복합체인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영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적대자이자 인간을 증오하는 영적 존재인 사탄은 성에 집요하게 개입해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고 하느님의 영을 품고 있는 인간 생명을 죽이려고 한다. 원죄가 성과 관련된 사탄의 거짓말에 아담과 하와가 속아 넘어간 결과임을 생각해보면, 사탄이 인간을 파멸시키려고 성에 개입한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태초의 남녀는 열매를 따먹자 눈이 열려 자신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을 느꼈다.(창세기 3,7) 왜 갑자기 수치심을 느꼈을까?

 

욕망의 눈이 열리면서 서로의 몸을 쾌락의 도구로 보았기 때문이다. 사탄의 유혹에 자신의 의지를 넘김으로써, 음란의 영이 아담과 하와의 영 안으로 들어와 결합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속임과 넘어감으로 인해 음란의 영이 확산되는 현상은 현대 사회에 더욱더 강화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인 인간 남녀에게 성교육이 필요한 근본적이면서 영적인 이유다. 또한 교회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 차원의 성교육을 선포해야 하는 이유다.

 

필자는 지난 7년 동안 소비주의와 상업적 미디어라는 표층 현상에 치중하여 성교육 연구를 진행해오면서, 지성적이고 사회적 차원의 대안을 마련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보니 지성의 눈만으로는 볼 수 없는 성교육의 영적 차원을 간과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을 움직인다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악한 영들이 하는 일을 인간의 지성으로만 대항하여 막고 이기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어리석음이자 오만이었고, 악한 영들이 이 두 통로를 통해서 쏟아 부은 공격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영적인 대상은 영적으로 다루어야 하는데, 머리로 다루려고 했기 때문에 당한 손상이었던 것이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성교육은 인간의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치열하고 처절한 영적 싸움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됐다. 

 

이 시대는 ‘성적 자유’를 인간 해방으로 포장하여 선전하고 많은 청소년들을 그리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는 임신 낙태 영아유기 영아살해만이 아니라, 같은 죄를 반복하게 하는 죄성을 자손에게 전수시켜 대를 이어 인간을 속박하고 불행하게 하는 교묘하고 사악한 속임수다. 여기에는 ‘성적 자유’가 아니라, ‘음란’이라는 정확한 이름표를 붙여주고 청소년들이 이를 경계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 교육은 이 시대에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수님도 더러운 영들을 내쫓으시면서 그들과 싸우셨다. 가톨릭 성교육도 예수님처럼 음란의 영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그런 싸움이 활발하게 일어나야만 청소년들이 해방과 치유의 기쁨을 경험하게 되고 교회가 건강하게 재탄생할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5월 29일, 이광호(베네딕토 ·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겸 생명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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