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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성경] 히브리어 산책: 일곱째 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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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09 ㅣ No.3568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일곱째 자인


갈등과 대립 깨고 세상 바꾸는 권능과 신비

 

 

히브리어의 일곱 번째 글자는 자인이다.

 

 

대결과 변혁

 

자인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수평선 두 개를 급히 그은 것이다. 윗선과 아랫선이 떨어져 있거나, 이따금 짧은 수직선으로 잇기도 했다(원시나이 문자). 이 형태는 다양하게 해석된다. 전통적으로 히브리어 ‘자인’이 ‘무기’라는 뜻을 지녔다고 보기 때문에, 두 수평선을 대개 ‘대치하는 집단이나 개인’으로 해석한다. 또는 두 수평선을 ‘칼로 날카롭게 벤 자국’이나 ‘화살’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해석이든 갈등과 대립상황을 의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인은 대결과 변혁의 기운을 담은 글자다.

 

- 자인의 고대형태. 자인의 가장 오래된 형태로 수평선 두 개를 날렵히 그은 모습이다. 이따금 두 수평선을 짧은 수직선으로 이은 모습도 있다.

 

 

차면 기운다

 

자인은 크게 두 가지 계열로 발전한다. 첫째는 에트루리아어 계열이다. 두 수평선과 수직선이 거의 같은 길이로 발전하여, 마치 현대 알파벳의 아이(I)와 비슷하게 보인다. 결국 이 글자는 그리스어의 제타(Z)로 진화하고 현대 서유럽 알파벳 가운데 Z의 조상이 된다.

 

둘째는 아람어 계열이다. 수직선이 등장하지 않고 윗선이 짧아지며 아랫선이 길게 수직으로 선다. 결과적으로 무척 날렵한 형태로 발전하는데, 마치 화살이나 창처럼 보인다. 이런 형태는 현대 히브리어 문자로 이어진다. 고대 우가릿어 쐐기문자도 비슷하다. 아람어, 히브리어, 우가릿어 등 둘째 형태에서는 ‘대치하는 두 집단(또는 개인)’ 또는 ‘적대적 집단이 사용하는 무기’라는 의미가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 자인 발전. 에트루리아어 계열에서 자인은 두 수평선과 수직선이 거의 같은 길이로 발전하여 점차 그리스어 제타(Z)로 진화한다. 한편 아람어 계열(초록색)에서는 아랫선이 수직으로 길어져서 마치 창이나 화살과 같은 날렵한 모양이 되었다. 우가릿어 쐐기문자(붉은색)도 아람어 계열에 속한다.

 

 

히브리어 글자는 저마다 숫자의 의미가 있다. 자인은 ‘일곱’을 의미한다. 일곱은 완전수로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날의 숫자이기도 하다. 충만함과 완전의 숫자인 ‘7’을 의미하는 자인이 동시에 대결과 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은, ‘무엇이든 차면 곧 기운다’는 동양의 지혜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주님의 권능

 

자인으로 시작하는 ‘즈로아’라는 낱말은 이런 대결과 변혁의 상황에서 자주 등장한다. 즈로아는 본디 ‘팔’을 의미했다. ‘즈로아(팔)를 뻗다’는 ‘돕다’는 의미인데(시편 83,9), 우리말이나 영어에서도 ‘손을 내주다’(give a hand to)는 ‘돕다’는 의미이므로, 이런 표현에서도 역시 동서양이 보편적으로 잘 통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팔을 뻗으시어 인간 역사에 개입하신 사건이 이집트 탈출 사건이다. 가난한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역사에 개입하시어 당신의 크신 자비를 실천하신 이 사건에서 즈로아는 주님의 권능을 대표하는 말로 쓰였다.

 

- 즈로아. 자인으로 시작하는 즈로아는 본디 ‘팔’을 의미하지만, 그보다는 ‘힘’, ‘권능’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 역사에 개입하시어 이집트 탈출 사건을 주도하신 하느님의 권능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말이기도 하다.

 

 

일찍이 하느님께서는 “나는 주님이다. 나는 이집트의 강제 노동에서 너희를 빼내고, 그 종살이에서 너희를 구해 내겠다. 즈로아를(팔을) 뻗어 큰 심판을 내려서 너희를 구원하겠다”(탈출 6,6)고 당신의 의지를 밝히셨다. 이에 호응하듯, 갈대바다의 기적사건 직후에 모세는 “당신 즈로아(팔)의 위력을” 찬미했다(탈출 15,16).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집트 탈출 사건에서 하느님의 즈로아(팔, 권능)가 온 세상에 떨쳤음을 잊지 말라고 후손들에게 거듭하여 신신당부한다(신명 4,34; 5,15; 7,19; 9,29; 11,2; 26,8).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즈로아가 미래에 펼칠 날을 꿈꾼다. 그는 하느님께서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이기에 ‘당신의 즈로아(팔)에 우리가 희망을 걸리라’고 노래한다(이사 51,5). 결국 예언자는 예전처럼 하느님께서 “모든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한 즈로아를(팔을) 걷어”붙이실(이사 52,10) 그 날을 기다리며, “깨어나소서, 깨어나소서, 힘을 입으소서, 주님의 즈로아(팔)이시여”(이사 51,9)라고 기도한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이 세상의 가장 큰 권능께서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드러나시어 세상을 바꾸시는 신비를 묵상한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월 8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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