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교의신학ㅣ교부학

[신학] 행동하는 평신도: 신앙과 이성의 완벽한 조화 토마스 아퀴나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0-28 ㅣ No.593

[외침특강 - 행동하는 평신도] 신앙과 이성의 완벽한 조화 “토마스 아퀴나스”

 

 

2020년 외침특강은 참된 깨달음은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믿음으로 성서, 교의, 영성, 실천신학 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대담을 통해 평신도들이 교회와 세상 안에서 더욱 기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7월에는 가톨릭대학교 인문학부 철학과 교수이며 토마스 아퀴나스를 전공한 박승찬 엘리야 교수를 만나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과감히 받아들여 가톨릭신학을 더욱 풍성히 하고, 체계화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5~1274)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성인처럼 이성적 작업을 통해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모든 좋은 것을 탐구하고 알아들을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진리를 향한 날개, 신앙과 이성

 

*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교회의 가르침이나 교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고 어디까지 탐구해야 하는지 모호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믿고 받드는 신앙과, 개념화하고 사유하는 이성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저는 우선, 현실의 삶에서 이 두 가지 극단을 피하는 일이 중요해 보입니다. 첫 번째 극단은 ‘과도한 이성주의’라고 볼 수 있어요. 근대에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한동안은 인간 이성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했죠.

 

그러나 현대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생각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이 1·2차 세계대전이었죠. 과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좋은 것만 주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지 못했던 잔혹한 행위를 도울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예를 들어 600만의 유대인 학살 같은 경우는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지요.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도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마구 노력했던 결과가 인간의 미래를 위협할 정도가 되었죠. 이 모든 것 안에 과도한 이성주의가 있다고 보여요.

 

이제는 오히려 옛날에 추구했던 많은 행복, 거대한 행복보다는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어요. 우리 신앙인은 이것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넘어서서 나아가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과도한 이성주의’의 또 다른 극단은 무엇일까요

 

‘맹목적 신앙주의’가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볼 수 있었듯이 신천지와 같은 종교의 모습이 있지요. 만일 신앙만을 강조하고 신앙을 믿는 것이라고만 강조한다면 그들의 신앙이 우리보다 훨씬 강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고집하며 사회적인 규칙을 무시할 수 있기에 중요한 이웃사랑의 계명을 어기면서까지 신앙의 절대화 경향을 보여주지요. 자신들의 신앙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적대시하는 행동까지 보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 극단을 피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런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추상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5~1274)라는 인물을 살펴보면서 그 완벽한 조화를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네, 이제 드디어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이름이 등장하네요. 성인은 1880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천사적 박사’라는 칭호까지 받으셨지요. 교회 안에서 이러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은 진리를 향해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진리, 곧 당신 자신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회칙 『신앙과 이성』을 이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성의 요구들과 신앙의 힘’의 가장 고상한 종합을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회칙 78항 참조).

 

교회는 여러 차례의 공의회를 거치며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가장 큰 방향성으로 인정했지요. 앞부분에서 인간 이성의 위험성을 이야기했지만, 이성 또한 하느님이 주신 가장 좋은 선물이지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바로 이러한 종합을 가장 잘 완성한 사람이죠.

 

신자분들께서도 유럽에 성지순례를 가시면 고딕 성당들을 보게 되는데, 고딕 성당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각각 개성이 있으면서도 잘 조화를 이룹니다. 전통적인 고딕 성당들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보아도 각각의 문양이 다릅니다. 문양과 조각상이 비슷한 것 같지만 다 모습이 다르고 전체적으로도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학문적으로 고딕 성당의 완성도에 도달한 것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의심받았던 새로운 사상인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열린 정신으로 뛰어난 체계화를 이루어낸 것이죠. 이것이 바로 그가 천사적 칭호를 받게 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 성인의 신앙과 이성적 탐구의 결정판인 『신학대전』은 어떤 책일까요

 

제가 토마스 성인만큼 좋아하는 분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3~430) 성인입니다. 이분도 신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고 많은 신학 내용을 집대성했죠. 그는 플라톤이라는 철학자의 사상을 이어받았어요.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완전히 다른 것을 받아들입니다. 이제껏 한 번도 교회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받아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받아들여졌고 다시 그리스도교 문화권으로 전파되었는데, 토마스 성인 당시 새로운 철학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죠. 성인은 파리 대학의 젊은 지성인들이 열광하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합니다. 또한, 교부들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까지 다 집대성하여 깨알 같은 라틴어 글씨로 『신학대전』(神學大全, Summa Theologiae)을 완성합니다.

 

요즘, 200쪽 내외의 책으로 약 50권의 분량으로 볼 수 있어요. 49세에 돌아가셨는데 신학대전은 방대한 분량뿐만 아니라 그 균형 잡힌 생각의 깊이에 있어서도 독보적이지요. 이분이 돌아가신 지 오십 년이 채 안 되어서 성인품에 오르셨는데 기적심사를 할 때 공부만 하신 분이라 기적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어떤 한 사람이 “저 책들을 보라! 저 책들 하나하나가 다 기적이다”라는 말로 사람들의 공감을 이루어냈다고 합니다.

 

 

* 성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부분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첫째,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가 영원히 존재해왔다고 생각했지요.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요? 그러나 교회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가르쳐 왔습니다. 영원히 세계가 존재한다면 특별히 창조주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생각은 위험한 것이지요.

 

둘째,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가 죽음으로 분리되면 육체는 소멸하고, 영혼은 우주적 지성으로 돌아가 버린다고 했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따르면 하느님이 천국에서 심판하려고 했을 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어요. 최후 심판장이 텅 비어버리게 된다는 것이죠.

 

셋째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법칙은 절대로 틀릴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기적도 인정되지 않고 신의 섭리도 불가능해지죠.

 

당시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교리와 맞지 않는다고 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척했어요. 그러나 성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시대의 징표로 보고 잘 연구하여 교리와 맞지 않는 부분은 과감하게 수정하는 작업을 했어요.

 

이러한 연구로 교회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갈 수 있는 풍성한 토대를 마련해 주었지요.

 

 

하느님을 뵙기까지

 

* 신앙과 이성의 조화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삼위일체 교리인 것 같아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니 그냥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 어디까지가 이성적 탐구의 영역이고 어디까지 믿음의 영역일까요

 

캔터베리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라는 성인은 “이성만으로 모든 진리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며 이성을 버리고 신앙만으로 진리에 도달하려는 사람은 태만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삼위일체론 책을 썼고 이성으로 삼위일체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입장이 조금 달랐어요. 우리가 이성을 가지고 신앙에 깊이 다가갈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했어요. 육화, 부활, 심판 등의 핵심적인 진리는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고 했지요.

 

성인은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의 근거에 대해, 신앙으로부터 출발하여 이성적으로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은총은 자연 본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한다”라고 했지요. 이성적 탐구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고 부족한 것은 하느님께서 완성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지요.

 

 

* 토마스 성인은 신앙에서 출발해서 끊임없는 이성적 탐구과정을 거치며 많은 저술도 했는데 이를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무엇일까요

 

성인은 1274년에 돌아가셨는데 1273년 12월 6일 미사를 드리다가 성체를 든 상태에서 그냥 화석처럼 굳어버렸어요. 가끔 명상에 잠기다가 내려왔는데 그날은 20~30분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았지요. 다른 신부님이 올라가서 성인을 방에 모셔드렸는데 그때부터 그렇게 바빠도 연구하고 집필하던 그가 그날부터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지요. 그래서 신학대전은 미완성입니다.

 

신학대전을 완성해 달라는 비서에게 “내가 그날 본 환시에 비하면 내가 쓴 책은 지푸라기와 같이 여겨진다는 말이네”하고 말했죠. 토마스 성인이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나 똑같이 이야기했는데 우리는 하느님 품 안에서 완벽하게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이죠.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당신 품 안에서 지복직관(至福直觀 ; beatífic vísion), 성경적으로 말하면 ‘하느님이 인간과 얼굴을 맞대고 바라보는’(1코린 13,12), 그 완전한 행복을 위해 인간은 창조되었다는 것이죠.

 

성인은 『신학대전』 1부에서 창조의 원천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해 다루고 2부에서는 신에게 되돌아가기 위한 인간의 행위와 윤리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3부에서는 하느님께 돌아가는 모범으로 그리스도가 보여준 구체적 길을 제시합니다. 궁극적인 행복인 하느님께 가는 길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오류에 빠지는데, 성인은 진지하게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도와주겠다는 의도입니다. 정말로 진지하게 탐구하는 이는 나의 책을 통해서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고 했죠.

 

 

*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지녔던 신앙과 이성의 조화로운 모습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토마스 성인은 정말 모든 사상에 열려있었어요. 프란치스코 교황도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야말로 신앙인은 건방지지 않으며 오히려 진리는 겸손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신앙의 빛』, 34항 참조). 평생에 걸친 토론 중에서도 항상 평온하고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고, 상대방과 토론할 때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단어와 영역을 선택했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두 스승,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바라보면 창세기의 야곱이 생각납니다.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강가에서 하느님의 천사와 몸싸움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정강이뼈를 걷어차이면서 새로운 이름을 얻었는데 이는 지성적으로도 끊임없이 포기하지 말고 질문하며 공부해 보라는 의미로 보입니다(창세 32장 참조).

 

교회 안의 많은 평신도 전문가들도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교리의 핵심의미를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의사는 새로운 생명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중요한 의견을 내 놓을 수 있겠지요. 미디어나 환경문제에서도 평신도 전문가들의 다양한 조언은 교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체크체크] “토마스 아퀴나스”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5~1274)는 20살에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평생을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이루는 연구를 하며 ‘은총은 자연 본성을 완성한다’라는 믿음으로, 새롭게 발견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그리스도교 전통과 종합했다.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신학대전』을 저술했다.

 

* 박승찬 엘리야 -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중세 철학 전공)를 받았다. 가톨릭대학교 인문학부 철학과 교수이며, 한국중세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가톨릭철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강의는 SBS와 대학교육협의회에서 주관한 ‘대학 100대 명강의’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저서로 『서양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 수용사』, 『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 1,2권』 등이 있다. 역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 등이 있다.

 

[외침, 2020년 7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대담 · 글 도희주 기자]



1,69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