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별별 이야기: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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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14 ㅣ No.1006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2)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미국 이공계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바오로가 찾아왔다. 방학 중 한국을 방문한 바오로는 외국 생활에서 느끼는 외로움,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만일 유학생활에 실패하고 졸업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과 실제로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예기불안을 체험하고 있었다. 잠은 오지 않고 속은 점점 타들어 가고 있었으며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한 과목 낙제점을 받은 상황이었다.

 

바오로는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학과를 신청했다가 한두 번 강의를 들어본 후 과목을 취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과목을 이수할 자신감이 없었을 뿐 아니라 천재로 소문난 중국·인도계 학생들이 대다수여서 상대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는커녕 과목을 통과하기도 힘들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과목 취소를 할 수 있는 마감일을 1주일 남기고 이 판단을 했으니 1주일 안에 곧바로 취소 신청을 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게으름을 피우다 마감일을 놓쳤고 할 수 없이 끌려가다시피 과목을 이수하다 결국 예상한 대로 낙제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점도 이상하고 자신이 왜 이런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바오로는 자존감이 너무도 빈약한 상태였다. 바오로는 자신을 스스로 생각하며 느끼는 감정이 극단적으로 부정적이었으며 어떤 일을 해도 자신은 잘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자괴감을 지니고 있었다. 즉 자존감을 구성하는 요소 중 자기개념과 자기효능감이 너무 부족한 상황에서 유학이라는 견디기 힘든 과정을 시작했던 것이다. 가족 모두 명문가 출신이라 자신도 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유학생활에 성공해야만 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은 너무 부족하고 자신감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시간이 갈수록 심리적 압박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게다가 낙제를 받은 상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충분히 불행을 막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고 합리적 판단을 내렸음에도 상황에 끌려다니며 자신을 불행으로 몰아갔다. 본인은 이 상황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인간의 뇌는 반복된 생각이나 신념을 통해 사고나 신념패턴을 만들고 실제로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그 패턴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이끌어간다. 의식적으로는 기도가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반복된 사고나 믿음체계에서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메시지가 이미 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며 교회가 피임이나 시험관 시술 같은 현대 과학 기술을 우려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자녀를 몇 명 낳을 것인지를 결정하고,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은 생명을 인공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가운데 무의식적으로 생명 경시사상에 젖어들게 되어있다. 가족 형편이 어렵다고 아버지가 가족 모두를 동반자살로 몰아가는 사건 역시 생명 자체가 신성한 것, 즉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가치체계가 무의식 안에 없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바오로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무가치하고 능력 없는 인간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 믿음이 결국 의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바보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성적으로는 마감일에 맞춰 수강 취소를 하면 되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이 무능력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역동에 걸려 행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무기력이 반복되고 학습된 무기력은 재차 강화되면서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우울증 과정(depression process)으로 진행된다.

 

바오로는 우울증에 관한 심리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신앙 안에서 의식적으로만 믿고 있었던 생명의 소중함과 존재 자체의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신념체계 안에 넣어줄 수 있는 반복된 암시기법도 필요하게 되었다. 실로 의식은 교육되지만, 무의식은 교육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의식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다음 주에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2월 23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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