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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한국 가톨릭 미술, 여성 작가들: 권녕숙 리디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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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2-22 ㅣ No.692

[한국 가톨릭 미술, 여성 작가들] 권녕숙 리디아 화백


기도하듯 쌓아올린 작은 붓질… “교회 미술의 출발점은 성경”

 

 

- 권녕숙 화백의 템페라 작품은 그 안의 인물들이 살아있듯 단단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단순한 대상이 아닌 영혼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성모자’, 템페라.

 

 

※ 이번 글 역시 2017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주관한 한국 가톨릭 미술가 동영상 기록 작업을 진행하며 인터뷰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하였다.

 

권녕숙(리디아) 화백은 처음부터 순조롭게 미술학도의 길을 걷지는 못했다.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미술대학 진학을 꿈꿨으나 부모의 반대로 1957년 서울대 문리대 생물학과에 입학했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진로 선택이었다.

 

 

서울대 문리대에서 미대 서양화과로 편입

 

권 화백은 그러나 미술학도의 꿈을 접을 수 없었고 입학한 지 1년 만인 이듬해 1958년 당시 서울대 미대 학장인 장발 선생을 찾아가 편입 시험을 치르고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물론 부모 몰래 벌인 일이었다.

 

권 화백은 본디 식물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처음 진학했던 생물학과에서 식물학을 전공하며 식물 삽화를 그렸던 경험이 이후 작품에도 영향을 미쳐 자신의 판화 작업에 식물 모티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후 권 화백은 1961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63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1965~1969년 에꼴데보자르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무렵에 가톨릭에 입교한 그는 파리 유학시절 모든 역사와 문화 예술이 종교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고, 가톨릭 신자들이 모여있는 아틀리에서 공동으로 작업을 시작하면서 템페라 기법을 배우게 되었다. 조형 예술과 종교화 사이에서의 깊은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아틀리에에서 우리는 마치 수도생활 하듯이 공동의 일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함께 작업하던 두 명 중 한 명은 정교회와 비잔틴 미술에 대한 이해가 깊었는데, 보다 현대화된 그림을 그리고자 프랑스로 유학 온 그리스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비잔틴박물관 관장이었죠. 그는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조형미 예술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어떻게 종교로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큰 그림도 가는 붓으로 머리카락처럼 한 올 한 올 기도를 바치듯 그렸습니다. 저는 그의 그러한 작업 방식에 자극을 받아 템페라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교회 미술은 나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중세 무명의 장인들이 그랬듯이 신앙을 바탕으로 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화는 손끝에서 나오는 것만이 아닌 어떤 큰 힘에 의한 이끌림에 따른, 영적인 신앙심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죠.”

 

권녕숙 화백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빛 자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색유리의 투명성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다물 피정의 집 유리화, 2004년 작.

 

 

종교화는 손끝이 아니라 영적 신앙심에서

 

유럽에서 13년간 작업을 하다 1974년 귀국한 권 화백은 1977년 서울가톨릭미술가협회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펼치고 있고 제6회 가톨릭 미술상 본상을 받았다. 그는 1984년 한국 가톨릭 20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개최되었던 ‘영원의 모습’전 준비를 위한 실무를 맡아 진행하기도 했는데 당시 앙리 마티스, 마크 샤갈, 장 바젠 등 유럽 대가들의 성미술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것은 매우 귀한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권 화백 역시 초기에는 추상화를 많이 그렸으나 교회 미술 작업에 있어서는 신자들과의 소통,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종교 미술을 한다는 것은 선교사의 역할과 같다고 하면서 성당이 미술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권 화백의 작품에는 한국인의 모습을 한 성모님과 아기 예수가 등장하곤 한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이목구비를 한 작품 속 인물들은 그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정감 있는 모습으로 따뜻하게 다가온다.

 

권 화백은 종교화에서도 시대 흐름에 맞춰 인물을 그리는 것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를 위해 권 화백 자신도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끊임없이 인체 크로키를 반복한다. 그는 크로키는 사물을 파악하는 방법이라고 하면서 사진을 찍어 오버랩시켜놓는 것이 아닌 작가의 눈으로 파악한 대상을 그려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권녕숙 화백은 판화, 템페라, 유화 등 평면 작업 외에도 국내 성당 여러 곳에 스테인드글라스 작업도 선을 보였다. 천주섭리회 수녀원과 강원도 인제의 다물 피정의 집 성당 스테인드글라스가 대표작이다. 그는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 있어서는 부분적으로 구상적 표현을 쓰면서도 빛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크게는 추상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성화 작업에 있어서는 신자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구상적인 표현을 선호하지만, 스테인드글라스는 빛 자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색유리의 투명성을 살리고자 했다. 그래서 글라스 페인팅도 최대한 절제해서 작품을 완성해간다. 권 화백은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본질을 파악해 그에 맞는 표현을 작품에 적절히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권녕숙 화백은 “교회 미술은 나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중세 무명의 장인들이 그랬듯이 신앙을 바탕으로 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승천’, 1978, 목판화.

 

 

자신의 고유한 색은 성경에서 시작돼야

 

구상이든 추상이든, 평면 작업이든 스테인드글라스든 권 화백에게 있어 교회 미술의 출발점은 늘 성경 말씀이다. 아울러 그는 이전 세대의 미술가들이 남긴 교회 미술 작품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교회 미술을 하려면 과거의 교회 미술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 그렸을지 알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미술을 하는 이들은 늘 곁에 성경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질 때 렘브란트나 뒤러와 같은 대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면서 나는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권 화백은 이렇게 성경과 교회 미술사에 대한 연구, 대상을 파악하는 통찰력과 그 시선으로 파악한 것들을 다시 손으로 구현해내는 일련의 과정들을 마치 수도자와도 같이 계속해서 반복해 나간다. 그에게 예술이란 작품을 보는 이에게 어떤 감흥을 줄 수 있어야 하기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조형 언어를 구사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성경 말씀을 체화하고 자신의 내면을 통찰할 수 있도록 늘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있다.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진정한 교회 미술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고유한 색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성경’ 말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듯이 쌓아올린 작은 붓질들로 완성된 권녕숙 화백의 작은 템페라 작품을 마주하면 그 안의 인물들이 살아있듯 단단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단순한 대상이 아닌 영혼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작품 속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성경 말씀의 울림과 과거 거장들의 흔적을 생각하며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장미창에 표현된 ‘거인 어깨 위의 난쟁이’를 떠올리게 된다. 그의 작품에서는 미래로 향하는 과거가 담겨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2월 25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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