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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사회교리21: 사랑의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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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5-19 ㅣ No.524

[교부들의 사회교리] (21) 사랑의 신도시


가난한 이들이 행복한 사회 만들기

 

 

“고귀한 것은 인간애입니다. 도시 밖으로 조금만 나가서 새로운 도시, 곧 신심의 곳간을 보십시오. 그분의 권고 덕분에 부자들의 넘치는 재산과 저장되어 있는 그 공동 창고는 좀벌레가 얼씬거리지 않으며, 더 이상 도둑의 눈을 기쁘게 하지도 않고, 시기에서 비롯되는 경쟁과 세월에 따른 부패도 비껴갑니다. 거기서는 질병을 종교적 빛으로 바라보고, 재난을 축복으로 여기며, 공감 능력이 시험대에 오릅니다.”(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대 바실리우스 추도사」 63<연설 43>)

 

 

그리스도교 사회활동의 선구자

 

카이사리아의 주교 대 바실리우스(330년경~379년)는 사제 시절부터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라 불렸다. 마흔 살에 주교가 되어 열정적으로 사목을 펼치다가 마흔아홉에 선종했다. 생애는 짧았으나 교회에 불멸의 유산을 남겨 주었다. 자신들의 비참한 운명에 동참해 준 이 착한 목자에게 하느님 백성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위대한’ (大) 바실리우스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대 바실리우스는 평생지기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친동생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와 한마음 한뜻으로 신앙 진리를 지키고 사회정의를 일구었다. 오늘날 터키의 심장부인 카파도키아 지방에서 활동한 이 세 교부를 카파도키아 삼총사라고 일컫기도 한다. 

 

바실리우스는 사회 문제들을 다룬 수많은 강론과 강해를 남겼다. 그 가운데 ‘내 곳간들을 헐어내리라’, ‘부자에 관한 강해’, ‘기근과 가뭄에 행한 강해’, ‘고리대금업자 반박’이 유명하다. 

 

극심한 가뭄으로 민중이 굶어 죽어 가는데도 부자들은 식량 위기 상황을 돈벌이의 기회로 삼아 곡식을 곳간에 쌓아두거나 사재기를 일삼았다. 무거운 세금과 약탈적 대출로 민중의 삶은 피폐해지고 노예로 팔려가기 일쑤였다. 민중의 비참과 고통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인 바실리우스는 부자들의 탐욕과 착취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단죄했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존엄하며, 하느님의 선물인 재화는 더불어 사용할 수 있도록 재분배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외쳤다.

 

 

가난한 이들을 환대하는 마을

 

370년 카이사리아의 주교가 된 바실리우스는 가난한 이들을 환대하는 ‘사랑의 신도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난과 굶주림에 지친 이들을 맞아들이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고 치료하며, 나그네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사랑의 도시가 수도 카이사리아 근교에 탄생했다. 

 

그 중심에는 교회와 수도 공동체가 있었다. 노인을 위한 숙소와 무료급식소, 전염성 환자를 격리 수용하는 병원, 의료진과 간병인들의 숙소 등을 두루 갖춘 이 자립형 도시는 바실리아드라고 불렸다. 바실리우스도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서 그들을 영육으로 돌보았다. 여기 짧게 인용한 교부 문헌은 대 바실리우스가 세상을 떠난 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가 친구에게 바친 추도사의 한 대목이다. 그레고리우스는 바실리아드를 ‘새로운 도시’라 부른다. 

 

가난한 사람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세상의 신도시 뉴타운과는 전혀 다른 진정한 사랑의 신도시였으니, 가난한 떠돌이와 난민을 환대하고, 가난뱅이 병자들을 거저 돌보아 주던 그리스도교 최초의 병원과 쉼터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교 사회 활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대 바실리우스는 우리 교회의 병원 사업과 사회사업에서 꼭 기억해야 할 교회의 스승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5월 19일,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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