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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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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복음으로 세상보기: 따뜻하고 아늑하고 편안한 곳!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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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05 ㅣ No.1510

[복음으로 세상보기] 따뜻하고 아늑하고 편안한 곳! 우리 집!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같이 가족을 생각하고 가정을 소중히 여기자는 의미로 기념일도 많고 행사도 많습니다. 이렇듯 가정과 가족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풍성한 날들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한편으로는 외롭고 쓸쓸하고 가슴 아픈 일들이 여전히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가정의 행복에는 여러 조건이 있습니다. 가족들의 건강, 적정한 수입, 화목한 관계, 그리고 그 모든 가족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고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곳인 집입니다. 영어로 House는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주택을 의미하고, Home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해가는 경험을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집에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환경에 머무른다는 뜻입니다.

 

그런 집이 없다는 것!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아동들에게 집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주거빈곤아동’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하 옥탑방이나 주택 외의 거처(고시텔, 쪽방,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에 사는 19세 이하의 아동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우리 전체 아동의 9.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집이 편한 곳이 아닙니다. 친구를 데려올 수도 없습니다. 불안한 환경은 마음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성장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이런 환경에 놓인 것을 내버려 두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요? 국민들을, 특히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을 불안과 고통에 방치하는 국가가 올바른 국가일까요?

 

국민들이 행복한 집에서 살 권리를 ‘주거권’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헌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제35조를 보면 “①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②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 ③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국민들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국가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쾌적한 주거환경을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쾌적한 주택에서 사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며, 이를 마련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인 것입니다. 국민은 국가에 대하여 쾌적한 주거를 개발하고 공급할 주택정책의 수립을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쾌적한 주택에서 사는 것은 국민의 권리

 

주택은 그 주변 환경에 따라 인간의 건강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가는 주택에 대하여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주택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독립적이고 사생활이 보장된 견고하고 안전한 구조의 주택이어야 합니다. 보건·위생상 필요한 설비가 구비되어야 하고 고령자와 신체부자유자와 어린이 등의 안전을 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경제와 문화수준에 적합한 일정한 넓이의 주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사는 집이 안전하고 가족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곳이어야지 가정생활의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권이라고 칭하는 여러 가지 기본권은 대부분 생존권적 기본권의 범주에 속합니다. 예컨대 평화적 생존권, 건강권, 일조권 등이 새로운 의미의 생존권적 기본권입니다. 주거권도 이에 해당합니다. 주거권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해있는 개개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적정한 주거환경이나 최저한도의 주거 또는 주택을 요구할 권리가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우리 헌법에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주거권은 아직 실정법상으로 명시된 용어는 아닙니다. 헌법은 물론, 개별법령에도 주거권이라는 용어는 쓰이지 않고 있습니다. 주거권이라는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은 경제 성장에 따른 도시재개발사업이 이루어지면서 도시영세민의 주거대책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을 배경으로 1980대부터 철거민들을 중심으로 주장하면서부터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 건강, 효율, 안락함을 주거의 기본적인 조건으로 제시하여 일정한 기준 이상의 주거보장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또 최저주거기준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확보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① 가족이 거주하기에 충분한 면적과 방의 확보 ② 가구원의 독립적인 사생활 유지 ③ 부부와 자녀, 이성형제간 침실 공간 분리 등 가족구성원간의 적절한 방의 사용이 가능해야 함 ④ 상하수도 시설 ⑤ 목욕시설 ⑥ 화장실 ⑦ 부엌과 식당 ⑧ 기후에 따른 난방 혹은 냉방설비 ⑨ 환기 ⑩ 채광 ⑪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주변 환경, 경찰서비스, 소방서비스 등 사회서비스 확보

 

 

개헌안에 주거권이 기본권으로 자리 잡기를 소망해

각국의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도 주거정책의 목표를 일정 수준 이상 양질의 주거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일정 수준 이상의 주거를 향유하도록 하는 것을 삼고 있으며, 그 기준으로 최저주거기준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주택법 제5조와 동법시행령 제7조에 의거하여 최저주거기준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특히 주거 빈곤에 처해있는 국민들이 최저주거기준에 해당되는 혜택을 누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주거정책을 개선하여 삶의 자리를 보장하자는 종교계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주거권이 헌법에 명시되어 최저주거기준에 준하는 주택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6월 지방선거와 맞물리게 될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헌법을 새롭게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정치권에서 국민들 사이에서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주거정책을 고민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개헌안에 주거권이 기본권으로 자리 잡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이에 따라 정책토론회 등을 통한 정책 제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행복하게 하는 것을 의무로 여길 때 국민들은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약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요한 14,1-4) 예수님의 뜻은 우리네 모두를 아버지의 집에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말입니다. 설사 아버지 집을 떠나 방탕의 길을 갔다 하더라도 고개를 숙이고 돌아오는 둘째 아들을 외면하지 않고 뛰어나가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루카 15,20)

 

우리 모두에게는, 특별히 가진 것이 없어 절망적인 사람에게는 더욱 그런 집이 필요합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러 다시 생기를 찾아 주는 곳! 분노와 적개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다가도 머물면 그 모든 것이 녹아들어 사랑의 눈으로 다시금 세상을 찾는 힘을 주는 터전이 필요합니다.

 

5월 가정의 달이 모두 쉬어갈 수 있는 가정이, 편안하고 안락한 적절한 집이 아이들과 노약자들과 거동이 불편한 이들과 마음으로 몸으로 지친 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련되기를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5월호, 나승구 F. 하비에르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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